작은 틈새 메우기

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 10

by 립나




소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자신의 입술 새로 나오는 말들이 속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터라 익숙하고 또 생경하게 들렸다.



“제가 진짜 아무렇지 않아 보였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저 사실 전혀 안 괜찮거든요. 이상할 정도로요.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요.”



성준이 눈을 깜박이며 소윤의 눈을 들여다봤다. 소윤은 한껏 날카로워진 자신의 불안과 질투가 성준에게 그대로 전해질까 봐 급히 시선을 돌렸다. 성준의 입매가 단단히 굳었다.



“사실 저 김대리님 엄청 의식해요. 대리님이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신경 쓰이고, 이번에 같이 출장 가는 것도 맘에 걸렸어요. 그랬는데 어제 하루 종일 별 연락도 없다가 막상 밤에 전화 거니까 김대리님이 받아서… 저 진짜 너무 화나서 힘들었어요.”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아까부터 성준의 눈에서 일렁이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속삭이듯 묻는 말이 소윤의 자존심을 얇게 베어냈다.



“대리님 지치게 할까 봐요.”


“그 대신 소윤 씨가 지쳤잖아요.”


“... 대리님이 저 안 좋아하게 되는 것보단 나아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성준의 눈물은 소윤의 마음을 떨리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 눈물이 자신에 대한 실망의 눈물일까 봐 마음이 무거웠다. 이해심 많고 어른스러운 연인이 되고 싶었던 것뿐인데 역시 꾸며낸 모습은 균열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소윤이 잡고 있던 성준의 손을 놓았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아낸 성준이 천천히 소윤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왜 울어요. 실망했어요?”



전혀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소윤은 숙제처럼 물었다. 자신의 어깨를 꽉 끌어안고 있는 성준의 팔에 작은 희망을 기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윤의 질문에 성준이 몸에 힘을 주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요. 안심돼서요. 긴장 풀려서…”



떨리는 성준의 목소리가 전혀 차갑지 않아서 소윤은 웅크렸던 어깨에 힘을 빼고 좀 더 편하게 몸을 기댔다.



“저 지칠 일 없어요.”


“.......”


“소윤 씨 안 좋아하게 되는 일은 더 없어요.”


“네.”


“진짜로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다 얘기해도 돼요. 혼자 속상해하지 말아요.”


“... 네.”



소윤은 성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쿡 박았다. 눈물이 새어 나와서 가리려고 그런 건데 성준은 그런 소윤이 답답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꾸깃꾸깃 어깨를 구부려서 소윤이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했다.



“소윤 씨. 제가 진짜 많이 좋아해요.”


“알아요…”


“.......”


“저도 대리님 많이 좋아해요.”


“무슨 대리님이요.”


“박 대리님이요.”


“.......”


“성준 씨 좋아한다고요…”



소윤이 겨우 목소리를 짜내서 대답하자 성준이 작게 웃었다. 소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비비적거리던 성준이 갑자기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윤주임 싫어요.”


“네?”


“자기가 뭔데 소윤 씨한테 떡을 준다고 그래요.”


“아, 그러게요.”


“소윤 씨 일 시키는 것도 싫어요.”


“회사 사람인데 어떡해요.”


“그래도 싫어요.”



여전히 낮은 목소리에 단호한 말투였지만 소윤이 듣기에는 어리광 가득한 투정이었다. 아까 울음의 여운이 남았는지 작게 훌쩍이는 성준이 사랑스러웠다. 역시 자신 때문에 감정이 뒤흔들리는 성준은 벅찰 만큼 예뻤다.








차례로 씻고 나온 두 사람은 침대 헤드에 등을 대고 서로 기대 있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돌아와 아침부터 일을 치른 성준이 피곤할 것 같아서 눈을 좀 붙이라고 했지만 성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소윤의 어깨를 둘러 안은 성준이 소윤의 손과 팔목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대뜸 소윤이 말을 꺼내왔다.



“제 표현이 좀 부족했어요?”



소윤의 의기소침한 말투가 귀여워 성준이 키득거렸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소윤 씨는 그냥 침착했던 건데 제가 괜히 불안해서 그런 거죠.”



성준이 머쓱한 듯 소윤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침착… 근데 저 저번에 막 화도 냈었는데.”


“언제요?”


“전에 그 동기 분들 만난 날…”


“아, 그때는.”



성준이 잠시 말을 망설였다. 소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 같은 성준이 소윤을 좀 더 바짝 끌어안았다.



“그때는 기분 안 좋은 게 저 때문인지 바람떡 때문인지 모르겠어서...”


“네?”


“바람떡 때문인 줄 알았어요.”


“어이없네.”


“미안해요.”


“너무하네. 진짜…”



소윤은 입으로는 구시렁거렸지만 얌전히 품에 안겨있었다. 1년이 넘게 만나 오면서 언성 높여 싸운 적이 없어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작은 틈새는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깨달은 게 많았다. 변함없는 애정을 기대하는 건 저뿐이 아니고, 상대의 애정을 확인할 때 안심이 되는 것도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소윤은 제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는 성준의 손에 깍지를 꼈다.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단단히 잡아 오는 성준의 손이 따뜻했다. 서서히 잠이 몰려와서 느릿느릿 눈을 깜빡였다. 졸려하는 소윤을 눈치챈 성준이 소윤의 허리를 들어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자신의 볼을 살며시 쓰다듬는 성준의 손길을 느끼며 소윤은 맘 편히 잠에 들었다. 이내 성준의 눈꺼풀까지 감기자 방 안에는 주말 낮의 따사로운 햇살만이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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