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외전 - 1
소윤씨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단번에 이상함을 느꼈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정말 이상한 순간이었다. 새로 온 인턴이라고 인사하며 밝게 웃는 소윤씨는 마치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서만 실크에 휘감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이상함이 정확히 어떤 것 때문인지 알고 싶었다. 소윤씨가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런 상대적인 차이에 대한 게 아니었다. 소윤씨는 절대적으로 달랐다. 소윤씨가 예뻐서 관심이 간 거라고 한다면 난 평생 예쁜 사람을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거나 다름없었다. 내가 살면서 저 사람 예쁘다, 멋지다 했던 것과는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계속 소윤씨 주변을 맴돌았다.
넥타이가 잘 어울린다는 소윤씨의 말에 매일 아침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서 넥타이를 고르고 와이셔츠를 다렸다. 소윤씨가 평소 좋아하던 차가 아닌 커피를 마신다며 나도 모르게 아는 척을 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무심코 티 내고, 식사도 못 하고 야근하는 소윤씨를 볼 때면 부담스러워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샌드위치를 건넸다. 회사 사람인 나의 그런 행동이 소윤씨를 불편하게 할까 봐 초조했지만 소윤씨는 다정하게도 매번 이해해주었다. 내 빳빳한 와이셔츠 소매를 보고는 대리님은 참 깔끔하시다며 칭찬해주었고, 나의 음침했던 관찰과 부담스러운 호의도 섬세하고 다정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난 결국 소윤씨 자체가 특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윤씨가 인턴으로서 마지막 출근을 하기 전날, 나는 하루 종일 심장을 토할 것처럼 긴장했다. 그날 소윤씨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게 처음이라서 모든 게 어렵고 걱정이 됐다. 소윤씨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은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러니 다신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고백으로 소윤씨가 회사를 다니면서 불편해질까 봐 그게 무서웠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못하게 되는 것과, 소윤씨가 그 번쩍거리는 특별함을 가지고 다른 팀으로 가게 되는 것은 더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이 그 특별함을 눈치채고 나보다 빨리 다가가려 할까 봐 너무나도 초조했다.
마지막 야근을 하는 소윤씨를 기다리면서, 난 몇 번이나 그대로 차를 출발시키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상급자인데 소윤씨에게 거절 못할 상황을 건네는 건 아닌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기어 위에서 손을 움찔거리고 있을 때쯤 건물 입구에서 소윤씨가 나왔다. 커다란 쇼핑백에 짐을 챙겨 들고 나오는 소윤씨의 모습을 보고, 난 지금까지 내가 했던 고민들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들인지 깨달았다. 나는 이 마음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윤씨의 집 앞에서 내가 생각해도 볼품없이 고백했다. 나는 처참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구제해주었던 소윤씨의 눈물 날 만큼 다정하고 따뜻했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마워요, 대리님. 저 너무 좋아해요. 꽃도, 떡케이크도, 대리님도요.”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한 날들이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퇴근 후에 만난 소윤씨가 내 볼을 한번 쓸어주면 모든 게 괜찮아졌다. 언제나처럼 나의 연애사를 걱정하는 동기들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동기들은 알파고가 연애를 한다며 놀란 얼굴로 나를 놀렸다. 지금 내 별명은 알파고고, 대학 시절에는 계산기였다. 내가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독 건조한 편이긴 했다. 난 그런 내 성향이 불편했던 적이 없고, 오히려 열렬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과잉된 표현이 불편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소윤씨를 만나고 나서 난 그때의 내가 부러울 정도로 감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터질 것처럼 커져가는 나의 열렬한 마음이 과잉된 표현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소윤씨를 내 동기들에게 소개했을 때 난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모두에게 소윤씨는 내 사람이라고 널리 알리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도 소윤씨를 못 보게 하고 싶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소윤씨를 겁먹게 할까 봐 나는 또 뻣뻣한 얼굴을 꾸며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소윤씨는 인턴 때의 모습처럼 빛났다. 모두가 당연하게도 소윤씨를 좋아했다. 분위기에 들뜬 동기가 나를 좋아했던 직원에 관한 말실수를 했을 때도 소윤씨는 내가 인기 많은 걸 안다고 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나는 그런 소윤씨의 여유로움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야속했다. 소윤씨는 현명했고, 소윤씨를 향한 나의 마음에 의심할 구석은 조금도 없다는 걸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나는 소윤씨가 나와 가까운 동기들과 대화하는 것마저도 질투 나고 싫은데 소윤씨는 뭐든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나는 자꾸만 소윤씨에게 좀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날 나의 실수로 소윤씨가 그간 보지 못한 차가운 얼굴을 했다. 나는 소윤씨가 집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소윤씨의 딱딱한 모습이 나를 너무나 괴롭게 했다. 소윤씨가 앞으로 나에게 웃어주지 않을까 봐, 더이상 전처럼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가끔 사소한 걸로 귀엽게 토라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소윤씨는 정말 화가 나 보였고 많은 걸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날 더 불안하게 했다. 그 생각의 끝이 더이상 나와 함께하지 않는 것일까 봐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윤씨를 만나기 전에도 분명 나는 숨을 쉬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소윤씨의 다정함이 없으면 늘 꽉 막힌 숨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소윤씨가 다음날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새벽같이 회사에 나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소윤씨와 갔던 떡집에 소윤씨가 좋아하는 호박 인절미를 사러 갔다. 떡고물이 묻은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부드럽게 눈웃음 짓던 소윤씨가 눈앞에 선했다. 눈송이가 내려앉은 동백꽃 같은 그 입술이 너무 그리웠다.
소윤씨가 집에 없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나는 현관 앞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복도 끝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렸다. 소윤씨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고, 주말 아침에 외출했다는 게 어떤 심경의 변화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소윤씨는 나를 발견하고 난감한 얼굴을 했다. 나는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미련하게 큰 마음을 숨기지 못해서 소윤씨가 눈치챌까 봐, 그게 소윤씨를 질리게 만들까 봐 늘 걱정이었다. 소윤씨는 집에 들어와서도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정말로 소윤씨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결국 넘친다는 걸 알면서도 소윤씨의 손을 붙들고 울었다. 소윤씨는 그런 나를 또 안아주었다. 다정한 소윤씨는 그 전날의 내 실수도, 말없이 불쑥 찾아온 내 무례도 모두 용서해주었다. 따뜻하게 내 볼을 쓸어주고 뜨겁게 입 맞춰주었다. 나는 절대로 소윤씨를 놓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