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때의 일이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 가장자리를 크게 빙 둘러 몇 바퀴씩 걷다가 집에 돌아갔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열두 살은 원래 그런 나이니까.
그날도 시선을 바닥에 묶어둔 채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후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웬 여자아이의 발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둥그런 얼굴에 안경을 쓴 그 아이의 생김새가 낯설었다. 우리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나였다.
“누구 기다려?”
내 말에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엄마. 우리 엄마, 여기 선생님이야.”
나는 물었다.
“너도 우리 학교 다녀?”
그 아이가 대답했다.
“응, 전학 왔어.”
“멋지다.”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멋지다고 답했다. 내 말을 들은 그 친구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난 엄마와 함께 매일 학교에 온다는 그 아이의 일상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침마다 엄마와 헤어져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일 없이 매번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어딘가에 혼자 정신을 빼앗겨 집에 늦게 오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나는 혼자서 계속 걸을까 하다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같이 걸을래?”
그렇게 우리는 같이 걸었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다음 날의 다음 날도,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아이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텅 빈 운동장을 나란히 서서 걸었다. 그렇게 걸으며 우리는 각자에게 일어났던 그 날의 일들과 그보다 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한데 긁어모아 서로 나누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면 그 아이의 엄마가 학교 현관에서 그 아이를 불렀고, 그 친구는 내일 보자며 엄마 차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그렇게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까지도 좋았다. 매번 혼자 집으로 향하는 길은 가끔 외로웠지만 괜찮다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만큼 나는 그 친구와의 시간이 참 좋았다.
그 친구와 두 번의 계절을 채 보내기도 전, 그 친구의 전학 소식을 다른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다. 나는 쉬는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그 친구의 반으로 달려갔다. 그게 정말이냐며 묻는 나를 향해 그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바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아이의 반 친구들보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깊게 울었다. 그 친구도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남겨지는 쪽은 나였으니 내가 더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 친구가 그렇게 전학을 가버린 뒤, 나는 더는 운동장을 걷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 공간은 더는 원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는 날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때면, 매번은 아니어도 꽤 자주 그 친구를 떠올렸다. 그렇게 나는 열네 살이 되고, 열다섯 살이 되고, 열여덟 살이 되었다.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나는 문과가 되었다.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이과에 간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반이 다르니 복도가 달랐고, 공간이 다르니 말을 나눌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이과반으로 간 친구 중 친했던 아이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종종 우리 반으로 놀러 왔다.
그때는 서로가 배우는 과목이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대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라 그 친구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수학 과목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일주일에 수학 시간이 문과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수학 선생님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 이과 친구들은 새로 온 국사 선생님을 모른다는 이야기, 수학 선생님들은 첫사랑 이야기를 절대 해 주지 않는데 국사 선생님은 해 줬다니 좋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하필이면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에 어떤 전학생이 왔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원래 친구들은 우리 반에 모이곤 했는데 그날은 친구의 생일이어서 선물을 전해주러 이과반에 들렀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친구를 찾았다. 그때였다. 먼 시간에만 있던 아주 낯익은 얼굴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스치는 찰나에도 내가 그 아이를 단번에 알아볼 만큼 그 친구는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열여덟 살이 되어있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그 아이의 앞에 섰다. 그 친구가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그리 변한 것이 없어 아주 어릴 적에 만난 친척 어르신들조차 금방 나를 알아보는데도, 그 친구는 멀뚱거리며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는 어서 빨리 그이의 기억을 되살려 함께 손을 마주 잡고 폴짝거리며 반갑다 인사 나누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누구야, 나야 나. 누구. 기억 안 나? 우리 어디 초등학교 같이 다녔잖아. 5학년 때.”
안타까워 발을 동동거리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내 말이 끝난 뒤에도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건조하게 한 마디를 꺼냈다.
“아, 기억나네. 내가 전학을 많이 다녀서.”
기억난다는 말끝에 걸린 그 친구 표정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영 달랐다. 함께 운동장을 거닐었던 기억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하지만 그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의 무게가 우리는 너무 달랐던 것인지, 그 친구의 표정은 건조했고 나는 그게 너무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냥 지나가다가, 반가워서. 그래 그럼 간다!”
나의 평생은 고작해야 열여덟 해였지만 나는 그 순간 내 인생의 아주 커다란 시간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내가 그리워하는 꼭 그만큼, 그 친구도 어디에선가 똑같이 나를 그리워해 줄 것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무너져 내렸다.
열여덟, 그렇게 나는 한동안 친구를 사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다시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었으며, 사람 마음의 무게란 서로 같을 때보다 다를 때가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토록 아팠던 그 날의 기억도 일부러 떠올려 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날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아이가 야속할지언정 그 아이를 기억하며 홀로 그리워했던 나의 시간과 추억을 다그치지는 말자 여길 만큼, 그만큼 나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