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나의, 우리의 은옥 아줌마

by 안녕마나

나는 멍하니 박춘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그레해진 귓불 주변을 보니 취기가 오른 것이 분명한데 눈빛은 늘 그랬듯 흔들림이 없다. 그때 거기 있던 그놈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그가 그토록 얼굴을 심각하게 할 만큼 중요한지 나로서는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이유가 박춘수에게는 결코 가벼운 일일 수 없으며,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게도 가벼울 수 없으리라는 예감뿐이었다.

“그런데 제가...왜요?”

박춘수에게 이유를 듣고자 물은 것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왜 내가 그것을 알아봐 줄 것이라 박춘수가 생각하는지 혹은 나를 믿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박춘수의 낯빛이 쓸쓸해졌다. 사람이 상대로부터 ‘내가 왜’라는 류의 질문을 받고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내 경험상 대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상대의 말을 거절로 생각했거나 그게 아니면 믿었던 이에게 실망해 본 적 있거나. 박춘수는 어느 쪽일까. 그때였다. 박춘수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글쎄다. 덕구 너가 그랬잖아. 이 늦은 시간에 만두를 사 들고 내게 찾아와서는 그 남자를 또 봤다고. 너도 그 남자가 마음에 걸리는 거 아닌가. 그게 궁금하네. 너는 왜 그 놈이 신경 쓰이는지.”

생각지 못하게 그는 나의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쳤다. 단순히 말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내뱉는 단어마다 무게추가 달린 것처럼 무겁고 분명하다. 그렇다. 나는 왜 그 남자가 신경 쓰이는 거지.

“덕구 너도 니 삶이 있으니까... 내가 하란다고 덥석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 혹여, 너한테도 나처럼 그럴만한 이유가 생기거든 그때 대답해도 된다. 만두 잘 먹을게. 안 그래도 맥주 안주도 없고 저녁도 못 먹어서 배고팠는데, 먹다 죽지는 않겠다. 들어가 봐.”

이번에는 박춘수로부터 무슨 답이라도 듣고 말겠다던 애초의 다짐과 달리 나는 되려 그가 던진 무거운 질문을 하나 받아들고 그의 집을 나왔다. 나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복도 난간에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불빛이 반짝이는 이 작은 시골 도시. 어른들은 종종 예나 지금이나 개발이 안 되어 문제라고 했고, 나도 서울에 올라가기 전까진 그 변함없는 한결같음이 참 싫었다. 그런데 그렇게 투덜대는 어른들도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고 서울에서 돌아온 나는 내가 떠난 사이에도 변함없었던 이곳이 반갑고 좋다.

불빛을 보고 서 있자니 우왕좌왕 대던 생각이 어린 시절을 향해 간다. 왜 그 낯선 사내를 신경 쓰냐는 박춘수의 질문은 틀렸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은옥 아주머니다.

가게가 즐비한 시장에 홀로 가게를 꾸리는 건 하필 우리 엄마뿐이었다. 대개는 남편과 함께하거나 장성한 자식들과 함께 가게를 꾸렸는데 엄마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나는 너무 어렸다.

엄마는 어린애는 귀도 없고 생각도 없다고 여겼는지 내 앞에서 종종 신세 한탄을 했는데, 나는 가끔 엄마 신세를 망친 이가 나인 것 같아 이불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울곤 했다.

그러다 시장 한켠에 만둣집이 들어섰다. 엄마는 나에게 만두를 사준다며 데리고 가 내가 만두를 먹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에게 은근히 이것저것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심심찮게 점심으로 만두를 먹었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만둣집 아주머니와 우리 둘은 만두가 아닌 다른 음식으로 함께 점심을 먹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가 물건을 떼러 도매상에 갈 때면 나는 만둣집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고, 아주머니는 자기에게도 나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꽤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주 가끔 아주머니도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아주머니라 부르지 말고 은옥 이모라고 부르라 했지만 그렇게 부르면 어쩐지 고운 은옥 아주머니가 어떤 남자와 결혼해서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도 아주머니라 고집스레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은옥 아주머니는 그런 내게 내심 서운했을 텐데 이렇다 할 내색 한번 없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꼭 이모가 아닌 아주머니라 불렀던 이유를 말해야겠다.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생이 되고 옆 도시로 대학을 다니면서 더러 엄마와 은옥 아주머니네 가게 일을 돕기는 했지만, 예전만큼 살갑게 대하지는 못했다.

밥 먹고 가라는 은옥 아주머니의 말을 괜찮다며 뿌리치기도 여러 차례였고 서울로 돈 벌러 간다는 내 말에 이럴 땐 뭘 사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 손에 돈을 쥐여줄 때도 어쩐지 내가 너무 못난 사람 같아 눈 한번 제대로 안 맞추고 서둘러 가게 문을 나섰었다.

먼 시간을 지나 서울에서 홍영으로 다시 내려왔을 땐 은옥 아주머니가 대로변 상가건물로 자리를 옮긴 뒤였고 엄마와 별다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둘의 사이는 소원해져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서로에게 내주었던 우리는 어느새 각자의 방향으로 다르게 걷고 있었다.



“이 쬐깐한 도시에서 무슨 행사가 이리 많나.”

편집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양복 재킷을 벗더니 내동댕이치듯 소파 위로 아무렇게나 던지며 말했다. 편집장을 뒤따라 들어선 나는 김 실장에게 다녀왔다는 눈인사를 건네고 내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는데 편집장이 나를 불렀다.

“이 대리, 이리 와서 좀 앉아봐.”

“네.”

나는 대답과 함께 카메라 가방을 내 자리에 내려두고는 그가 앉은 소파 맞은편에 가 앉았다. 그가 더운지 신경질적으로 부채질을 해 대자 김 실장이 한마디 했다.

“편집장님, 그러지 말고 우리도 에어컨 좀 들여요. 요즘 에어컨 없는 사무실이 어디 있어요. 이제 식구도 늘었는데. 아유 진짜.”

김 실장의 말에 부채질을 하던 손을 거두고 편집장이 대꾸했다.

“이 코딱지만한 사무실에 무슨 에어컨이야. 사무실 입구 열어두면 맞바람 쳐서 괜찮아.”

“아유 진짜, 그럼 코딱지만 한 에어컨 두면 되잖아요! 두 사람은 맨날 밖으로 도니까 모르지만 여기 한낮에 있으면 진짜 덥단 말이에요!”

김 실장이 날을 잡았는지 지지 않고 편집장에게 대거리했다. 편집장은 그런 김 실장을 잠시 바라보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부채를 건네며 말했다.

“너무 더울 땐 옆에 부동산 가 있어. 나중에 돈 좀 더 벌면 에어컨 생각해 보자. 원래 이 자연 바람이 몸에 좋은 거야. 동병하치라는 말 몰라? 더위를 잘 나야, 겨울에 아프지 않다고.”

“아우, 몰라요!”

김 실장이 단단히 화가 났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편집장의 표정을 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사무실을 나서는 김 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괜찮아, 작년 여름에도 저랬어. 허허. 저러다 말아. 여기 에어컨이 없어야 김 실장도 그 핑계로 부동산에 놀러 가고 그러지. 혼자서 한낮에 심심해서 어째. 지 생각해서 그런 줄은 모르고 말야, 사람이.”

편집장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돈 아끼려는 핑계인지 알 수가 없어 그를 멀뚱히 바라보는데 그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1면에 말이야, 행사 소식이 있으면 도시가 활력있어 보여서 좋아. 가서 높은 양반들한테 인사 건네고 그러는 건 귀찮은데 막상 소식지 나온 것 보면 괜찮아.

니가 복덩인갑다. 어떨 땐 1면에 실을만한 소식이 없거나, 안 좋은 소식이 실릴 때도 있는데 그러면 기분이 영 그래. 괜히 인쇄된 소식지 보면 부정 타는 것 마냥. 그런데 너가 온 뒤로는 행사 소식만 있다. 허허.”

잡담을 하자고 부른 건 아닌 것 같은데 편집장은 그렇게 말을 건네더니 김 실장이 나선 사무실 미닫이문 밖을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았다. 거무스름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가에 주름이 제법 많다. 생각이 깊어지는지 눈빛이 고요해진다. 그가 여전히 밖을 바라본 채로 내게 물었다.

“그때 그 남자가 같은 아파트 산다고 했지?”

별안간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답을 못하고 그의 옆모습만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다시 물었다.

“그때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할 때 질문했던 그 남자 말야. 박춘수.”

편집장 입에서 박춘수의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다. 행여 그 표정을 편집장에 들킬까봐 나는 얼른 표정을 가다듬으며 되물었다.

“아, 그 질문했던 남자요? 네네. 같은 아파트요.”

편집장은 내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다시 사무실 문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별다른 건 없어? 눈에 띠는?”

편집장은 가볍게 지나가는 투로 물으려 목소리를 매만졌지만 그의 물음이 가볍지 않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네, 뭐. 별거 없는데요.”

문득 박춘수의 말이 생각났다. 모호할수록 강자에게 유리하고 구체적일수록 약자에게 유리하다. 박춘수에 대한 정보 면에서 지금, 이 순간 강자는 편집장이 아니라 나다. 모호할수록 내게 유리하다.

“그래?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이 좀 특이한 것 같아서. 외지인인 것 같은데. 뭐, 오다가다 만나면 왜 홍영에 왔냐고 물어봐봐.”

그는 여전히 사무실 밖을 바라본 채로 내게 말했다. 가볍게 하려 애쓰는 목소리도 여전했다.

“왜요?”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편집장이 대답했다.

“그냥. 무직이라는데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왔나, 궁금해서.”

박춘수가 무직이라는 편집장의 말에 생각이 멈췄다. 박춘수가 무직이라니, 그건 어떻게 안 거지. 무직인 것 같다는 추정도 아니고 그는 분명 ‘무직이라던데’라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처럼 말했다. 박춘수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닐 테고 박춘수가 누군가에게 무직이라며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을 텐데 편집장이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나는 조심스레 밝은 목소리로 편집장에게 물었다.

“아, 무직이래요? 그날 양복입은 것 보니까 돈 좀 있어보이던데.”

내 말에 편집장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본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 나른했던 깊은 눈은 어디 가고, 또렷해진 눈빛으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아니. 내 생각이야. 그냥 무직인 것 같아서. 니 말이 맞다. 돈 좀 있어보이던데, 사업 하나? 여기 홍영에서 뭐 볼 게 있다고? 사업하면 내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멀끔하게 생긴 외지인이라서 내가 좀 관심이 가더라고. 허허”

쏟아내듯 말을 퍼부은 편집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켜 보이며 내게 말했다.

“얼른 아까 그 행사 기사만 마무리하고 너도 퇴근해라. 김 실장한테 들어오라고 하고.”

편집장은 내 대답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어색하게 기지개를 켜 보이며 사무실 한켠에 있는 작은 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편집장이 박춘수를 본 것은 기껏해야 그 행사장에서가 전부였다. 이후에도 박춘수와 연락을 주고 받거나 마주칠 일이 있었다면 굳이 내게 그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행사장에서 박춘수의 모습은 누가 봐도 돈 좀 있어 보이는 말끔한 양복 차림의 사내였다. 그런 그를 무직이라고 생각했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분명 누군가에게서 듣고 하는 말이다. 박춘수를 알지만 잘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그리고 박춘수가 여기에서 무얼 하는지 알아야 하는 사람으로부터.


기사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김 실장에게 넘긴 뒤, 다음 일정을 정리하느라 여기저기 몇 차례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사무실을 나섰다. 얼마 전 엄마가 내가 꺼낸 은옥 아주머니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는지 자기가 무심했다며 나더러 만둣집에 같이 찾아가 보자고 그랬었다.

이야기가 나온 후로 몇 차례 은옥 아줌마네 가려고 엄마와 시간을 잡긴 했었는데 막상 가자고 하면 엄마가 망설여지는지 차일피일 미룬 것이 벌써 네 번째는 된 것 같다.

오늘에서야 결심이 섰는지 엄마가 먼저 내게 연락해서는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같이 출발하면 시간이 늦을 것 같다. 엄마에게 그냥 만둣집 근처에서 보자고 연락해야겠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는데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다.

[은옥이네 만둣집에서 보자. 엄마 먼저 가 있을게.]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만둣집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 돌아온 이후 은옥 아주머니에게 이렇다 할 인사도 못 했다. 가는 걸음에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뭘 사야 하나 망설이는데 점원이 곁에 선다.

“뭘 찾으세요?”

“아, 저 선물할 건데. 50대 여자분인데.”

“아, 어머님이세요? 피부타입 아세요?”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럼 선물이라고 하셨으니까 아이크림 어떠세요? 아이크림은 따로 피부타입 많이 안 타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했다. 점원이 웃더니 쇼케이스 아래편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선물인데 크기가 너무 작다. 나는 다른 무언가를 더 샀으면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문득 은옥 아주머니 손이 떠올랐다.

아주머니의 손은 고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여 투박했다. 누군가 손을 쳐다보면 살며시 손을 말아쥐며 숨기곤 했다. 언젠가 엄마가 핸드크림을 하나 샀더니 하나 더 줬다며 은옥 아주머니에게 건넨 일이 있는데 만두 빚는 사람이 핸드크림은 쓸 수 없다며 물린 일이 있다. 나는 계산대로 향하는 점원을 불러 세워 물었다.

“저기, 핸드크림 말고. 손에다가 하는 팩도 있어요?”

점원이 웃더니 내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세심하시다. 보통 아드님들이 엄마 선물한다고 핸드크림까지는 많이 사 가는데, 팩까진 안 물으시거든요. 있어요. 이거 자기 전에 한팩씩 쓰시라고 하시면 돼요. 이건 장갑 같은건데 이거 바르고 이 일회용 장갑 끼시면 돼요. 같이 드릴까요?”

“네, 같이 주세요. 포장해 주세요.”

나는 엄마 것도 하나 살까 싶다가도 은옥 아주머니 것이라고 하면 엄마도 입만 몇 번 삐죽대다 결국은 잘했다고 할 것이기에 다음으로 미뤘다. 계산을 치르니 점원이 쇼핑백을 건네며 말했다.

“좋은 선물 되세요!”


그렇게 선물을 들고 가니 마음이 설렜다. 그 동안 너무 무심했다 싶기도 하고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박춘수 얼굴이 떠올랐다. 박춘수가 늦은 시각 배고프다고 해서 오랜만에 들른 만둣집이었고, 박춘수가 왜 그 남자에게 신경 쓰냐고 물은 덕에 아주머니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새삼 떠올렸다.

그와 거리를 두어야지 싶은데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문득 내게 박춘수가 홍영에 왜 왔는지 한번 물어보라던 편집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은옥 아주머니에게 향하는 길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머리를 몇 번 도리질하고는 서둘러 만둣집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오늘따라 거리 분위기가 조용하다. 홍영이라는 곳은 서울과 달라서 저녁밥 때가 지나면 무섭게 조용해지는 곳이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유난하다.

가게들은 일제히 장사를 일찍 접었는지 문을 연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만둣집에 거의 다다랐는데 만둣집도 문을 닫았다. 엄마와 먼저 어디로 자리를 옮겼는지 엄마도 보이질 않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저편에 담배를 피우며 서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편집장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만둣집 찾아왔어요?”

“아, 네. 그냥.”

내가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가 나를 다시 묻는다.

“가족이요?”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가족이라는 게 무얼까. 피가 섞여야만 가족인가 아니면 시간이 섞이면 가족인가.

어릴 적 나를 위해 공룡만두를 빚던 은옥 아주머니의 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 사내는 내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내게 몇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구급차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언니인가 친구인가. 아무튼 어떤 아줌마가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서는 길바닥으로 뛰쳐나와서는 아이고. 아주 놀라 죽은 표정으로 사람이 죽었다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겨우 짜내서 소리를 지르는데 다들 놀라서 달려 나와봤다고. 누가 구급차를 불러서 그거 타고 갔는데. 뭐, 보니까 늦었더만. 에효, 참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대체.”

남자가 다시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입 밖으로 기어나오는 말들을 그대로 뱉었다.

“그게 무슨...누가...”

내 표정에 당황했는지 그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빨고는 길게 내뱉더니 꽁초를 바닥으로 버리고는 뒷꿈치로 비벼끄며 말했다.

“가게 주인 여자가 가족은 없다고 들었는데, 가족 아니죠? 그 만둣집 주인 여자요. 그 여자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들려 가는 거 보니까 뭐, 늦은 것 같더라고, 에잇. 혹시 아는 사람이면 홍영제일병원으로 가 봐요. 갈 데가 거기 밖에 없지 뭐.”

언제 놓쳤는지 쇼핑백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은옥 아주머니에게 주려던 선물상자가 두어 번 나뒹굴더니 뒤집힌 채로 보도블록 위에 멈춰 섰다.

(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