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때 거기' 있던 그놈이 '지금 여기' 있다.

by 안녕마나

“어디 다녀오는데 표정이 그래?”


엄마가 현관문에 들어서는 나를 보며 물었다. 자세히 보니 걱정한 얼굴이다. 말없이 외박한 것도 아니고 내가 어린 애도 아니건만 엄마는 요즘 들어 저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내가 못난 것 같아 싫은데도.


“생각 좀 하느라. 자.”


그렇게 대꾸하면 엄마가 밤새 생각이 많아질 것을 알면서도 난 그렇게 퉁명스럽게 한 마디 건네고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닫아놓고 나간 탓인지 방 공기가 덥고 답답했다. 나는 창문부터 활짝 열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바닥에 널브러지듯 드러누웠다.


은옥 아주머니의 굳은 얼굴과 아주머니와는 어쩐지 이질적인 그 낯선 남자, 그리고 박춘수의 알 수 없는 말과 차가운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치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엉킨 것처럼 그들 각자의 표정에는 이유가 있고 어리둥절한 이는 나뿐인 듯싶다.


어쩌다 보니 소식지 사무실에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이다 – 출근이라기엔 곧 남들 퇴근 시간이지만. 사무실 문을 드르륵 열자 김 실장과 편집장 두 사람 모두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기다리고 있던 눈치 같은데 두 사람이 함께 나를 기다릴 일이 무엇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다. 문지방도 못 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편집장이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가 앉은 소파로 가, 맞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편집장은 실실 웃으며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내 앞으로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수정 근로계약서야. 한번 봐봐. 흐흐흐”


들여다보니 아르바이트 계약서가 아니라 1년 계약의 근로계약서였다. 내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자 곁에 있던 김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덕구 대리님, 잘 부탁드려요. 하하하하”


김 실장의 말에 편집장이 잠시 웃는가 싶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딸만 둘이 있는데, 큰딸이야 서울 살고, 둘째는 서울 언니네에서 있다가 지 언니 결혼하면서 다시 홍영으로 내려와 여태 취업 준비거든. 그래서 내가 몇 번이고 월급 두둑하게 줄 테니까 소식지 일 좀 하라는 데도 죽어도 싫대. 그래서 마침 덕구 니가 우리 둘째 딸이랑 동갑이라 내가 그 녀석한테 니 이야기 좀 했지. 알바로 들어온 놈인데 근로계약서까지 써 달라고 하더니 일도 성실하게 잘한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 그 녀석도 자극 좀 받아서 한다고 나설 줄 알았거든? 아니 그랬더니 지가 한다는 말은 않고, 대뜸 너 같은 놈 없으니까 잘 잡으라는 거야. 그런데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고년 말이 맞는 것 같더라고 허허. 걔가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도 그렇게 맞는 말을 할 때가 꽤 있거든. 솔직히 내가 정규직까지는 엄두가 안 나고, 그건 사무실 사정이 더 좋아지면 생각해 보자, 잘 부탁한다 이 대리 허허.”


서울살이를 접고 홍영으로 내려오던 날, 버스 안에서 낮게 중얼거린 말이 있었다. ‘이제 좋은 일만 일어날 거다. 나쁜 일은 이미 충분히 일어났으니까.’ 그때 내 마음이 너무 간절했는지 그렇게 작게 이야기했는데도 누군가 듣긴 들었나 보다. 오늘은 우리 순미 씨 좋아하는 장어구이 사 들고 들어가야겠다. 엄마몫 2인분, 나 1인분 이렇게 3인분 장어구이에 초밥까지 서비스로 두둑하게 받아들고 가게 문을 기분 좋게 나섰다. 집으로 향하려고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은옥 아주머니 만둣집이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오늘 좋은 일도 박춘수의 공이 큰데 그냥 넘어가자니 영 마음에 걸렸다. 장어구이 1인분을 나눠줄까 하다가 그건 우리 순미 씨 몫이니, 박춘수 장어구이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엔 만두나 사 들고 가자 싶어 은옥 아주머니네 가게로 향했다. 다행히 저기 보이는 만둣집 앞으로 한가득 뽀얀 김이 자욱했다. 나는 서둘러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도블록까지 뒤덮은 김을 헤치고 가게 앞에 서니 아주머니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 덕구네. 자주 보니 반갑다.”


“네, 안녕하세요. 고기, 김치, 새우만두 1인분씩 주세요.”


급히 주문을 넣고는 그제야 아주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인사를 건네던 반가운 목소리와 달리 아주머니는 전혀 안녕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고운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푸석해 보였고 군데군데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 휑한 곳이 한둘이 아니라, 머릿수건으로도 잘 가려지지 않았다.


“여기 있다. 엄마는 잘 계시지?”


아주머니가 만두를 건네며 내게 물었다. 나도 웃으며 카드를 건네려는데 그때 봤던 그 낯선 사내가 가게 뒤편에서 우리쪽으로 걸어나오더니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내가 할게. 얼마 결제하면 되지?”


아주머니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내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내 카드를 얼른 받아들고는 자기가 서둘러 결제하고서 카드를 도로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맛있게 먹어. 엄마께 안부 전해드리고.”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충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아주머니와 그 낯선 남자를 한 차례씩 번갈아 바라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머, 무슨 좋은 일 있어? 웬 장어구이? 오호호호, 좋다. 3인분이나 샀어?”


엄마 얼굴이 오랜만에 발그레하게 흥이 올랐다. 엄마는 요리에 쓰는 청주를 내오더니 나와 엄마 앞에 한잔 씩 따라두며 침을 삼켰다.


“별거 아니고. 소식지 거기에서 나 1년 동안 일하라고 계약서 줬어. 급여가 나쁘지 않아. 서울에서보다 나아. 그래서 내가 순미 씨한테 쏜다.”


내 말에 엄마가 까르르 웃는다. 엄마는 이미 장어구이를 한 점 입에 집어넣고는 부지런히 오물거리고 있었다. 순미 씨 웃게 하는 게 이리 쉽다는 사실에 어쩐지 서글퍼져서 앞에 놓인 청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러자 갑자기 은옥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은옥 아주머니 알지. 만둣집.”

“응, 이제 보니까 만두도 사왔더만. 저 많은 걸 언제 다 먹냐.”

“아, 저거? 우리 꺼 아냐.”

“응? 그럼?”

“내가 줄 데가 있어서. 그런데 그 은옥 아주머니 말야.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얼굴 안 좋디?”

“응, 무슨 들리는 말 있나. 장사는 잘되는 것 같은데.”

“나도 소식 몰라. 상인회에 안 나온 지 꽤 됐어. 거기 대로변으로 가게 옮기고 나서는. 처음에는 좀 나왔는데 배 아픈 인간들이 속 차라고 한 마디씩 내뱉고 그래서 그런가. 안 나오더라.

하긴 그 고운 얼굴로 시장통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그 말 몇 마디에 안 나올 배포는 아닌데. 생각해 보니까 은옥이하고 최근 들어 연락했다는 사람을 못 들어봤네.”

“그렇구나...아무튼...엄마한테 안부 전해달래.”

“그래? 나도 언제 한번 만둣집 좀 들러볼까. 그런데 시장 사람은 은옥이가 불편해할까 봐, 지도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고 하니까 나도 가기가 좀 그렇네. 니가 다음에 가면 안부 전해봐.”

문득 만두가 식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만두를 집어들었다. 어디 가느냐며 묻는 엄마를 뒤로 한 채 금방 오겠다며 나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다행히 802호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구세요?”

초인종을 누르자 박춘수가 안에서 묻는다.

“저요, 덕구.”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박춘수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쩐 일?”

내가 말없이 만두를 내밀자 그가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한 마디 던졌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아, 배 터져 죽어라. 이건가? 하하 그게 아니면 들어와. 같이 먹자.”

나는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꺼내려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오늘은 그에게 몇 가지 물어봐야겠다 싶어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중앙을 차지한 회색 테이블 위에는 보고서 같은 인쇄물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박춘수는 재빨리 종이들을 치우더니 내게 앉으라며 자리를 내주었다. 다 마신 맥주캔 두어 개를 빼면 테이블 위가 말끔했다.


“뭐하고 계셨어요?”

내가 물으며 자리에 앉자 그가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내오더니 내게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안 해야 할 것 같은데 안 할 수가 없는 일?”

그의 목소리에 살짝 취기가 올라있다. 은옥 아주머니의 얼굴과 낯선 사내, 수수께끼 같이 이어지던 박춘수의 말들이 생각나, 나는 참지 못하고 내뱉듯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일인데요?”

그가 슬며시 웃더니 내게 조용히 묻는다.

“그게 왜 궁금한데?”

“아니, 그렇잖아요. 맨날 말을 수수께끼같이 하니까. 누구라도 당연히 궁금하죠...”

머쓱해진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그가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래? 말을 수수께끼같이 해?”

“네. 저번에도 그렇고.”

“저번에 언제?”

되묻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까 은옥 아주머니의 어두운 낯빛이 떠올랐다. 나도 따라서 얼굴이 어두워졌는지 나를 보는 그의 얼굴도 밝지 않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했다.

“저번에 만둣집 기억 나세요? 문 다 닫을 때 갔던.”

“기억하지.”

“그때도 그러셨잖아요. 보색이라고.”

“그러네, 그 말도 수수께끼같네.”

그는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에게 말했다.

“저 오늘도 그 남자 봤어요.”

박춘수가 나른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응? 무슨 남자?”

“저번에 만둣집에서 본 그 남자요. 뭔가 이상해서요. 혹시 아시는 거 있어요?”

“내가 왜, 뭔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내가 망설이자 그가 내가 앉은 쪽을 향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 그 사람, 예전에 본 적 있어.”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번에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건 사실, 뭐. 아무 이야기도 아니지. 우연히 본 적이 있다는 사실도, 뭐. 따지고 보면 그리 대수로울 게 없지.”

그는 잠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같은 우연이라도 말야. 언제 어디에서 보았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지. 그럼 그게 우연이 아닐 수도 있거든.”

“그 남자는 그럼, 언제 어디에서 보셨는데요?”

나는 참지 못하고 박춘수를 향해 물었다. 은옥 아주머니와 그 낯선 남자 사이에 감돌았던 낯설고 불안한 공기가 어쩐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내 물음에 그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무언가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물었다 싶어 후회되려는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나 일하던 회사. 부장실에서.”

엄마가 부동산 아주머니한테 듣고 내게 말하기로는 802호, 그러니까 박춘수는 서울에서 이사 왔다고 했다. 홍영에는 연고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은옥 아주머니네 가게에 있던 그 남자를 서울에서 봤다는 뜻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던 사람인가 싶은데 그렇다면 인사라도 나눠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럼 같은 회사 동료였어요?”

내가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어 묻자, 고개를 떨군 채 빈 미소를 짓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문제야. 그때는 낯선 사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그 사람을 여기에서 보네. 그럼 곤란한데...”

“뭐가 곤란한데요?”

내 물음에 줄곧 테이블 위로 떨구던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무언가 결심이 섰다는 듯 말했다.

“그걸 덕구가 좀 알아봐 줬으면 해. 그놈이 왜 여기 있는지. 그것부터.”


(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