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색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실장님, 편집장님께 확인받은 기사, 이메일로 보내드렸어요.”
“응, 그래. 근데 이제 기사 니가 써? 편집장님 노 났네.”
“아니, 그냥 이번만...”
“하하하 그래. 고생했네. 하하하”
전화를 끊고도 실장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익숙한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서울 웨딩 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때가 생각났다.
스튜디오에서 팀은 작가와 스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작가는 사진을 찍었고 스텝은 그를 도왔다. 우리는 그를 작가 혹은 팀장으로 불렀는데, 내가 같이 일했던 이는 작가보다 팀장이라는 직함을 좋아했다.
어느 날, 팀장이 고객들의 예약이 서로 물리는 바람에 자신은 다음 팀 촬영으로 바로 넘어간다며 방금 촬영한 고객에게 보여줄 샘플사진 보정작업을 내게 맡겼다. 촬영 보조만 하다가 컴퓨터에 앉아 사진을 매만지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내 사진을 본 신랑 신부는 만족해했고 얼떨결에 옵션 계약까지 따냈다. 나중에 내 사진을 확인한 팀장은 내심 놀랐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게 소질이 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종종 보정 작업을 맡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가끔 최종 보정작업도 맡아 하기도 했다. 원래 그 일은 스텝들의 일은 아니었지만, 같이 일하는 형의 말에 따르면 내가 인정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다 옵션 계약을 따낼 때면 팀장은 내게 술이나 밥을 사 주었다.
그러다 언젠가 옵션 계약하면 팀장이 성과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날도 계약을 성사시킨 나와 내 사진을 칭찬하며 술을 사 주는 팀장에게 나는 어렵게 내게도 성과급이 있느냐며 물었다.
팀장은 불편해했고 스튜디오에도 엄연히 규칙이 있으며 내게만 성과급을 주는 것은 다른 스텝들 사이에서 말이 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갓 들어온 나를 승진시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뿔이 난 나는 내게 스튜디오를 소개해 준 형에게 따지듯 물었고 형은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은 실장의 웃음소리가 무엇인고 했더니 내가 보정 작업한 사진을 보며 웃던 그 팀장의 웃음소리와 꼭 닮았다.
불현 듯 낮에 심각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박춘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뜸 근로계약서는 썼냐고 묻던 그의 표정과 이미 기자이면서 나만 그걸 모른다던 그의 말이며 쓸쓸하게 지어 보이던 그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박춘수에게는 '원래 그럴 수 없는 것'이 내게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나는 카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쾅 내려 닫았다. 옆 테이블에 앉았던 내 또래의 젊은 두 여자가 놀랐는지 나를 흘깃거렸다. 나는 남아있던 아메리카노를 물 마시듯 크게 한 모금 벌컥 들이켜고는 그 길로 카페를 나와 무작정 걸었다.
아침을 먹고 쉬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편집장이었다.
“어, 덕구야. 나다. 어제 고생했다. 오늘 사무실로 1시까지 좀 나와봐.”
“제가 1시에는 어렵고, 3시 어떠세요?”
“허허 너 연애하냐? 돈 벌어야지 무슨 연애야. 알았으니까 그럼 3시까지 나와라. 이따 보자.”
나는 연애 안한다. 못한다. 편집장 말마따나 돈 벌어야지 무슨 연애인가. 그런데 편집장 말대로 1시까지 나가기는 싫었다. 3시에 약속이 잡히면 오전이든 오후든 시간을 쓰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나는 그냥, 그리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다.
3시를 정확하게 맞추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편집장은 기다리고 있었는지 나를 보며 반갑다는 듯 자리로 오라며 손짓했고 김 실장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슬쩍 웃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덕구, 연애하냐?”
“아니요.”
내 짧은 대답에 김 실장이 의자를 우리가 앉은 소파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 마디 보탰다.
“편집장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프라이버시 물어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무튼 올드해.”
김 실장의 말에 머쓱해진 편집장이 허허 웃는가 싶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평소보다 좀 더 넣었어. 기사 쓰느라 고생했다. 사진도 자연스럽고 좋더라. 실력 좋더만.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 허허허”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는 그의 말과 웃음소리에 박춘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술잔에 술을 부으며 희미하게 웃던 팀장의 얼굴과 원래 그런 거라며 나를 다독이던 형의 얼굴도 떠올랐다.
“편집장님.”
나는 목에 걸린 말을 뱉어내듯 그를 불렀다. 편집장은 나른한 듯 소파에 몸을 잔뜩 기대어 앉더니 눈썹을 추켜올리는 표정으로 ‘왜’라는 물음을 대신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고 등에서 전기가 찌르르 오르더니 양손바닥에 땀이 확 올랐다.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랬는지 김 실장이 의자를 우리 쪽으로 슬쩍 돌려 앉았다. 나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 근로계약서를 썼으면 합니다.”
“근로계약서?”
편집장은 다소 뜨악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편집장의 표정을 보니 괜히 말을 꺼냈다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말을 꺼내기 전보다는 마음이 편안했다.
“네, 지금 하는 알바, 근로계약서요.”
“에이, 무슨 알바를 근로계약서를 써.”
“그게, 원래 요즘에는 다 법으로 쓰게 되어있대요.”
“알바도? ... 안 쓰면 어떻게 되는데?”
“나중에 근로자가 일 그만두면 신고할 수 있나봐요. 아, 제가 편집장님을 신고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게 작성이 원래 의무라는 말씀이에요. 저도 계약서가 있으면 정확히 업무가 뭐고, 돈은 어떻게 얼마가 나오는지 알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고. 저도 돈 모아야죠. 돈 모으려면 뭘 하면 얼마를 받는지 알아야 좋을 것 같아서요. 나중에 이력서 쓸 때도 이런 기록이 있으면 더 좋고...”
나는 말을 이어나가면서 편집장의 표정을 살폈다. 미간을 찌푸리고는 있었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말을 맺자 편집장은 잠시 생각하는듯 싶더니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앉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보험료 같은 거 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거 낼 돈으로 너한테 돈 더 주면 낫지 않냐.”
“저, 여기에서 일을 얼마나 할 수 있는데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편집장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너가 일만 잘하면 우리야 계속 쓰지. 소식이야 계속 있으니까. 나도 늙었고, 너 일 잘하고.”
“그럼 보험료 낼 돈, 저한테 주지 마시고, 보험료 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나라에서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으니까 전 좋아요.”
내 말에 곁에서 지켜보던 김 실장이 슬며시 웃으며 의자를 제자리로 돌려 앉았다. 지난 번 전화기 너머로 고생했다며 웃던 그 웃음소리와는 성질이 다른, 내가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삼겹살 들고 퇴근했을 때 엄마가 지어 보이던 그런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자신감이 붙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편집장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계약서가 양식이 있어? 의무라며. 그럼 덕구 니가 써서 와 봐. 대충 지금까지 한 패턴 생각해서. 그거 보고 더 이야기해 보지, 뭐.”
“네.”
나는 웃으며 대답했고 편집장도 웃어 보이며 말을 보탰다.
“순미가 아들 야무지게 잘 키웠네. 허허.”
나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한 뒤 소파에서 일어났고 편집장도 부채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편집장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향해 손을 다급히 저어대며 말했다.
“아, 맞다. 덕구야, 너 저번에 그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에서 말야. 그 질문했던 남자 기억 나지?”
나는 ‘박춘수 씨요?’라고 물으려다 말을 삼키고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편집장이 말을 이었다.
“어, 너 그 사람에 대해서 뭣 좀 아는 거 있냐? 저번에 보니까 그 사람이 너한테 인사도 하고 둘이서 이야기 나누는 것 같더만.”
내가 근로계약서 이야기를 꺼냈을 때보다 더 깊어진 표정으로 편집장이 물었다.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 망설이다 짧게 대답했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몇 번 지나가다 인사했었어요.”
나는 바로 옆집에 산다는 말을 보태려다 말았다. 내 말을 듣더니 편집장이 찌푸렸던 미간을 바르게 하며 말했다.
“아, 그래? 너가 어디 산다고 했지?”
“저, 운곡맨션이요.”
내 대답에 편집장은 다소 과하게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시 웃는 얼굴로 내게 가보라며 손짓했고 나는 그 길로 인사를 하며 돌아서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 날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편집장이 달려가 몸을 숙여가며 인사를 했던 롤렉스 시계를 찬 남자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박춘수가 뭐하는 새끼냐며 묻던 그 남자의 목소리, 행사장에 들어서던 군수가 곁을 지나자 군수의 뒤를 쫓던 박춘수의 서늘한 눈빛까지 차례로 떠올랐다.
“이덕구 씨?”
그의 집 벨을 누르자 박춘수는 기다렸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었다. 위원회 발족식 이후로 지금까지 일주일이 넘도록 우연히조차 그를 못 봤다. 오랜만에 그렇게 마주하니 내심 반가웠다. 내 얼굴을 확인한 그가 환히 웃으며 길을 내주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로 그의 집에 발을 들인 건 오늘로 두 번째였다. 그날 그는 내게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그 이후로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따로 돈을 받기로 한 것도 아니었고 공연히 자꾸 가까워지는 것같아 마음이 개운치 못해 그런가보다 넘기고 있었는데 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서 나는 현관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분명 내가 사는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인데도 그의 집은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보였다.
환히 켜진 조명의 불빛은 주황빛이 돌았는데 계절이 한여름인데도 곧 크리스마스가 올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벽면을 채운 렌즈들은 처음 보았던 때보다 더 정갈했고 수도 더 늘어난 듯했다.
주방 찬장은 덧문을 모두 떼내어 그런지 우리집 주방보다 훨씬 넓어 보였고 그 안은 스테인레스 그릇과 백자들로 반반씩 채워져 있었다. 수세미는 언뜻 봐도 종류가 여덟 가지는 되어 보였고 식탁 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한약재를 자를 때나 보던 작두와 나무를 다듬는 제법 큰 대패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작은 거실 한가운데에는 잘 나가는 IT 회사 사무실에서나 볼 법한 회색빛 회의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는 나를 그 테이블로 안내했고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거실을 둘러보며 물었다.
“오늘은 불을 켜 두셨네요. 집이 진짜 근사해요.”
내 말에 박춘수가 자기 집을 쓱 둘러보더니 웃으며 되물었다.
“아, 제가 형광등 불빛을 싫어해서. 차가운 느낌이. 그리고 뭐, 청소한 것 밖에 없어요. 허허.”
거실에 앉으니 다른 벽면에도 수납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크고 작은 유리병들이 줄잡아 스무 개는 넘게 있었다. 흡사 어느 실험실의 벽장처럼 보이는 그곳은 일반 가정집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각종 솔이며 막대기, 집게 등이 갖춰져 있었고 구급차에서나 들고 다닐법한 큰 크기의 구급상자도 놓여있었다.
“와 저건 다 뭐예요?”
내가 가지런히 늘어선 병들을 바라보며 묻자 박춘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아, 저거, 그냥 청소할 때 쓰는 겁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더 캐묻지 않았지만, 이왕 둘러대려면 청소도구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그럴듯하게 둘러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내심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괜히 빈정이 상한 나는 오래전 쓰던 전공 서적 몇 권을 그가 앉은 쪽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일단 이것 한번 읽어보세요. 그때 기본원리 같은 게 궁금하다고 하셔서. 저도 어차피 책을 줄줄 읽을 것 같아서, 그러느니 그냥 직접 읽으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미동도 않고 책의 목차를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큰 기대 없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읽으시다가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그냥 알려드릴게요.”
나는 렌즈 빌려줄 필요 없다는 의미로 ‘그냥’을 힘주어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책만 보고 있었다. 나도 머쓱해져 말하기를 그만두고 그런 그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더니 무언가 잔뜩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 들어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여기 보면, 이 3원색 표 아랫부분이요, 여기 이 부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박춘수가 가리킨 부분은 색의 원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박춘수 뒤편으로 렌즈 장식장이 보였다. 역시 렌즈 구성이 허투루 되어있는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눈의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가리킨 부분을 훑듯 읽고 나서 나의 말로 쉽게 설명했다.
“아, 이게 컬러 그레이딩에 대한 부분인데 그러니까 뭐냐, 어떤 색을 다루려면 그 색의 보색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보색을...”
그는 읊조리듯 낮게 나의 말을 따라서 반복하더니 한동안 멍하니 말이 없었다. 문득 며칠 전 마무리 지은 근로계약서가 떠올랐다.
“저, 근로계약서 썼어요. 덕분에요. 감사해요.”
그제야 그가 마법에서 풀려난 듯 정신을 차리며 나를 바라본다.
“아, 썼어요? 잘하셨네요.”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생각도 못했는데.”
“나야 말만 보탠거지, 덕구 씨가 다 한거죠.”
이유는 모르지만 어쩐지 그의 수줍은 얼굴이 가깝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망설이던 말이 튀어나왔다.
“말씀 놓으세요. 훨씬 형님이신 것 같은데.”
“말 놓고 친해지면 쌍욕도 하는데 괜찮겠어요?”
“말 놓고 안 친해지면 되죠.”
내가 농담인 듯 진담을 섞어 그의 말에 대꾸하자 그가 크게 웃더니 답한다.
“와, 덕구. 안 지네. 하하하”
그가 망설임 없이 일격을 날리듯 말을 놓았고 어쩐지 나는 그게 좋았다. 그렇게 웃던 그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정색하며 내게 말했다.
“난 저녁을 못 먹었는데. 이 근처에 뭐 사 먹을데가 없나. 편의점 말고. 말 놓은 기념으로 내가 살게.”
생각나는 곳이 한 곳뿐이었다. 은옥 아주머니가 하는 만둣집인데 이 시간이면 이미 문 닫을 준비가 한창일 시간이다.
“문을 닫았을 수도 있는데 저 어릴 때부터 다니던 만둣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갈래요?”
만둣가게에 다다르니 예상대로 문 닫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배고프다, 맛있겠다며 제법 먼 길을 걸어온 박춘수에게 미안해서 나는 가게로 먼저 달려가 아주머니를 향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저 덕구요. 안녕하셨어요. 만두 다 팔렸어요?”
다행히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환히 웃는다.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대여섯 살 어린데 얼굴이 고와 그런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어머 세상에, 덕구야. 너 오랜만이다. 한 다섯 개 남았는데 방금 빼서 아직 따끈해. 줄까? 내가 돈은 안 받을게. 어차피 집에 가져갈 거였어.”
언제 왔는지 박춘수가 내 곁에 서더니 아주머니를 향해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돈은 받으셔야죠. 덕구가 아니라 제가 사는거라. 덕구 찬스는 나중에 쓸게요. 얼마예요?”
낯선 얼굴에 아주머니가 잠시 당황하더니 값을 불렀고 박춘수는 일부러 챙겨 나왔는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를 하나 내밀었다. 아주머니가 만두를 옮겨 담는데 가게 뒤편에서 어떤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우리를 바라보며 은옥 아주머니를 향해 물었다.
“얼마 거슬러 드리면 되나?”
아주머니는 남자의 말에 대꾸는커녕 얼굴까지 굳어진 채로 남자 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 혼자서 가게 이곳저곳을 어색한 몸짓으로 기웃거리는가 싶더니 제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언뜻 봐도 비싸 보였고 그 안에는 카드며 현금이 가득해 보였다. 그때 은옥 아주머니가 앞치마에서 지폐를 재빨리 빼내어 박춘수에게 건넸다.
“여기 거스름돈 칠천원이요. 맛있게 드세요.”
거스름돈을 돌려받는 박춘수의 얼굴을 흘깃보니 그의 눈에도 은옥 아주머니와 낯선 사내 사이의 분위기가 영 부자연스러웠는지 만두 맛있겠다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던 얼굴이 굳어있다. 그렇게 만두를 받아들고 돌아오는데 그는 별말이 없었다.
“은옥 아주머니 혼자 사시는데 누구지...남자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에 박춘수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한 마디를 툭 뱉었다.
“보색.”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