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부터 매주 월,수,금 19:00 발행
나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도 내 긴장한 눈빛을 보았는지 아니면 자기가 너무 가깝게 서 있다고 느꼈는지 그는 무안한 듯 한걸음 내게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전에 하나 물읍시다.”
비록 어둠 속이라 할지라도 그와 마주 선 채로 눈을 맞추는 것이 영 불편하고 어색하여 나는 살짝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사진 찍은지는 오래됐습니까?”
그게 말하려던 비밀과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으나 그의 눈빛을 보니 다른 뜻 없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아 나도 경계를 조금 풀고 답했다.
“사진학과를 나와서요. 군대 있을 때 빼고는 뭐, 계속 이래저래 찍었죠. 왜 그러시는데요?”
옅은 어둠 속에서도 나는 그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럼 카메라랑 사진 좀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자 별안간 그가 자신의 오른손으로 내 왼쪽 팔뚝을 꽉 움켜쥐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쪽이 나한테 사진이나 카메라를 가르쳐 준다는 건 당분간 비밀로 합시다.”
나는 '왜요?’라고 이유를 물을까 망설이며 입을 달싹이는데 그가 눈치를 챘는지 말을 보탰다.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나는 그가 비밀로 해 달라는 것이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이 되어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짧게 물었다.
“그런데...언제 어떻게요?”
그는 말을 하려다 말고, 바닥에 앉으라며 손짓한 뒤 내게 콜라를 건넸다. 나는 받아들기만 하고 따로 마시지는 않았다. 갈증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어쩐지 그 앞에서는 긴장이 되어 괜히 일 없이 체할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어떠세요? 안되시면 제가 시간 맞추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카메라의 기본원리나 작동구조부터 시작해서 사진에서 현상한다고 했을 때의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러니까 뭐랄까. 기본원리도 좀 익히고 싶고요. 시간은 한번에 한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승낙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하하”
그가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조금 전의 얼음장 같은 표정은 마치 나만의 환영이었던 듯 했다. 나도 긴장이 풀어져서 그참에 묻고 싶던 말을 뱉었다.
“그런데 렌즈도 많으시고, 액세서리도 보니까 카메라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왜 저한테...”
“카메라 잘 몰라요.”
그가 짧게 대답한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그가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제가 기계를 좋아해서...언제부턴가 카메라며 렌즈나 부속품 이런 것들 모으기 시작했는데 정작 제대로 써 보지를 못해서 하하하하”
사람 좋게 웃는 그의 모습에 나도 옅게 미소 지어보였지만 선뜻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가 가진 렌즈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잘 알고 있는 이가 만든 구성이었다. 렌즈의 특색이 겹치는 것 없이 피사체에 따라, 색감에 따라 다르게 연출이 가능한 렌즈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씨네렌즈들도 구성되어 있었다. 부속품도 카메라를 만지다가 겪게 되는 불편함을 아는 사람만이 찾아보고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갑자기 그와 어떤 방식으로든 엮이게 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 불안해졌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심지어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르지 않는가! 어떻게든 그가 스스로 제안을 거두어 들이게 만들 요량으로 나는 거칠게 물었다.
“얼마 주실 건데요?”
금액을 말하면 터무니 없는 숫자로 눌러버려야겠다고 벼르는데 그가 편안한 얼굴로 되묻는다.
“얼마를 원하시는데요?”
아무렇게나 숫자를 뱉자니 그래도 설득력 있게 높은 숫자를 불러야겠다 싶어 잠시 망설이다 그의 카메라 장식장에 눈이 갔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수요일에 가르쳐 드리러 오면, 돌아갈 때 카메라하고 렌즈 2개 빌려주세요. 그 다음 주 수요일까지.”
이것은 흡사 자동차광에게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당신이 정성 들여 모은 클래식 자동차 컬렉션을 돌아가며 한 번씩 타게 해 주시오’라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는 말이었다. 장식장 칸마다 렌즈가방을 두고 이름표까지 붙여둘 정도의 꼼꼼함과 정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는 절대 빌려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는데 그도,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내가 미소를 거두자 그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보이며 말한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는 내게 슬며시 손을 내밀더니 말을 덧붙인다.
“박춘수입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덕구입니다.”
그렇게 802호 이웃남자는 얼떨결에 내게 ‘박춘수’가 되었다.
비둘기소식지 사무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편집장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몸을 잠시 일으키는가 싶더니 다시 소파에 몸을 파묻고는 내게 오라며 손짓했다. 나는 사무실에 있던 김 실장님에게도 꾸벅 인사를 건네고 편집장에게로 갔다.
“카메라는 잘 챙겨왔고?”
나는 그의 물음에 짧게 ‘네’라고 대답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인지 편집장은 양복을 빼입고 있었다. 오래전에 맞춘 옷인지 지금의 그에게는 조금 작은 듯 했다.
“오늘 행사 말야, 그게 이름이 11기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이거든? 군청에서 하는데 거기 행사장 들어가면 사람들 서로 만나서 인사 나누고 막 정신 없을 거야.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도 좀 찍어주고 행사도 찍고, 오늘은 전체 단체사진도 좀 찍고. 군수님하고 거기 위원들, 특히 앞줄에 앉은 사람들 잘 찍어봐. 아효 오랜만에 양복을 입어서 그런가 갑갑하네 이거. 아이고.”
나는 그의 말 리듬을 따라 적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맺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데 함께 말을 듣고 있던 김 실장이 우리쪽을 향해 의자를 돌려앉으며 말했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통틀어 엄마 또래의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편집장님, 맨날 똑같은 사람들이 하는 거 뭘 그렇게 맨날 발족식을 한 대요? 그럴거면 그냥 임기없이 쭉 하지, 번거롭게.”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하자 편집장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맨날 하겠다는 사람들만 하겠다고 나서니까 똑같은 거지, 자기 시간 쪼개서 나서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리고 이것도 엄연히 매번 지원자 모집하고 제비뽑기해서 정하는 거란 말이야. 새로 뽑혔으니까 발족식도 매번 하고 그래야지. 어쨌든 누가 들으면 지들끼리 해 처먹는다는 말로 들릴 수 있으니까 김 실장도 입조심해. 괜히 쓸데없이 오해 사지 말고.”
김 실장은 이죽거리듯 말을 보탰다.
“지들끼리 해 처먹는다는 말, 맞는데.”
편집장이 쏘아보자 김 실장은 의자를 다시 돌려 앉더니 하던 일로 돌아갔다. 편집장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나가자며 손짓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무실을 나와,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함께 군청으로 향했다. 어색한 침묵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싶어 말을 고르는데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네, 고만덕입니다.”
그가 전화를 받자 상대편에서 나이 지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온다.
“아니 고 사장, 내 번호 없어? 허허허허”
편집장은 잠시 당황하는듯 보였으나 이내 눈을 번쩍 뜨며 전에 들어보지 못한 상냥하고 들뜬 말투로 상대에게 답했다.
“아이고, 유 회장님 아니십니까? 제가 번호를 모를 리가 없는데? 번호 바꾸셨는가본데?”
“나 번호 바꾸고 자네가 연락을 안했나보네. 아직 모르는 거 보니. 허허.”
“아이고, 그렇게 됐나요. 제가 먹고 살기가 바빠서 그렇습니다. 오늘 오십니까?”
“응, 거의 다들 모였는데 자네가 안 보여서 이번엔 안하나 싶어서 전화했지.”
“아닙니다, 갑니다. 가서 인사드릴게요. 하하하”
그렇게 요란스런 대화가 끝나고 편집장은 마음이 살짝 복잡해졌는지 머리를 몇 번 신경질적으로 긁적였다. 그리고는 잊고 있던 무엇이 생각났다는 듯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덕구야. 오늘 행사 기사 니가 좀 써라. 행사 끝나고 사진은 김 실장한테 넘기고 기사 좀 써라. 내가 거기 총무과 담당하는 직원 소개해 줄테니까 거기에서 정보 받아서 쓰면 된다.”
“제가요? 기사를요?”
“응, 오늘은 내가 행사 끝나면 이래저래 인사하고 그러느라 정신이 없어서 기사를 제때 못 넘기지 싶다. 내일자 소식지에 바로 나와야 하니까 덕구, 니가 좀 쓰고 넘겨라. 김 실장한테 넘기기 전에 나한테 카톡으로 기사 초안 한번 보내줘. 내가 읽어보고 이름자 오타 난 거 없는지 확인 한번 하게.”
어느 새 군청에 도착했다. 그가 후진 기어를 재빠르게 넣어 주차하더니 튕겨 나가듯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뛰는지 빠르게 걷는지 구분이 안 가는 모양새였지만 행사장을 향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다급한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부지런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행사장 앞에는 ‘2020년 제11기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이라는 엑스 배너가 세워져 있었다. 원래는 대회의실로 쓰이는 곳인 것 같았는데 그 안에는 정장을 빼어 입은 사람들 스무 명 정도가 서로에게 바쁘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은 우리 엄마보다 조금 어려보였고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우리 엄마보다 많이 늙어보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사회를 맡은 총무과 김선영 과장입니다. 잠시 후 행사를 시작할 예정이오니 귀빈 여러분께서는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안 있어 사회자의 안내멘트가 나왔다. 행사장에 인사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부지런히 담던 나도 서둘러 삼각대를 챙겨 어디에 설치해야 하나 둘러보다가 앞줄을 잘 찍으라는 편집장의 말이 생각이 나, 사회자 근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착석했고 사회자도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가며 손에 들린 행사 시나리오를 챙겨보고 있었다. 나도 부지런히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뷰파인더를 통해 이리저리 구도를 잡는데 웅성거리던 행사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무엇인가 싶어 카메라에서 얼굴을 떼고 행사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802호 아니 박춘수가 서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양복에, 머리에는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대통령실 경호원에게서나 볼 법한 날렵한 헤어 스타일을 한 그의 모습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을만큼 근사했다.
그는 행사장을 천천히 쭉 둘러보더니 씨익 미소를 한번 짓고는 그대로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고 거기에는 밧줄 한 뭉치와 각목 하나가 들어있었다.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