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부터 월,수,금 19:00 발행
사람들의 시선이 앞으로 내딛는 박춘수의 구둣소리를 따라 옮겨갔다. 조용했던 행사장이 조금씩 낮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박춘수는 주변에서 그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표정은 가볍고 경쾌했으며 양복을 차려입은 옷매무새는 바르고 청량했다. 나와 제법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자리를 잡은 그는 손에 들려있던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야무지게 묶고는 자신이 앉은 의자 아래쪽에 밀어 넣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양복 재킷의 단추를 풀더니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앞을 바라보았다. 무언가에 설레는 듯한 그의 표정은 의자 아래 놓인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삐져나온 오동나무 각목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회를 맡았다는 총무과장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박춘수에게 시선을 빼앗긴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사회자가 정신을 차린 건 박춘수의 뒤를 이어 얼마 후 도착한 군수 덕분이었다.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안내 멘트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허둥대며 군수의 등장을 알렸다.
“아, 어, 구태영 군수님 들어오십니다.”
사회자의 말에 몇몇 이들의 박수 소리가 초라하게 더해졌고 군수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환하고 밝은 얼굴로 행사장에 모인 이들과 눈인사를 하며 걸어들어왔다. 군수의 걸음이 박춘수에게로 가까워져 왔고 박춘수는 군수가 오는 쪽을 향해 몸을 틀어 앉았다.
그리고 군수가 박춘수 곁을 지나치는 순간, 나는 보았다.
군수의 뒷모습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다른 이들에게 건네던 마땅한 인사 없이 그대로 박춘수를 지나쳤다. 나는 군수의 등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던 탓에 둘이 마주치던 순간, 둘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군수가 지나쳐 간 이후 박춘수의 얼굴 위로 미묘한 서늘함이 스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네, 이제 군수님께서 오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제11기 행복군민위원회 발족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따라 사람들은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렇게 모두에게 익숙한 식순이 끝나자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제11기 행복군민위원회가 발족되기까지의 경과보고와 구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지난 6월 15일부터 보름 간 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위원 모집 공고를 실시하였으며 총 25명 위원 모집에 73명의 군민께서 지원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지원해 주신 모든 군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위원 선정은 군청 관계자, 제10기 행복군민위원회 위원 등이 자리한 가운데 추첨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추첨은 지원자가 희망한 분과별로 이루어졌으며 분과별로 5명씩 총 25명이 선정되었습니다. 분과는 미래산업분과, 동네활력분과, 복지튼튼분과, 청정환경분과, 백년교육분과 등 총 5개의 분과로 구성됩니다. 이상 경과보고를 마치고 군수님의 축사가 있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경과보고가 끝나자 맨 앞줄에 한가운데 앉아있던 군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그때였다.
“질문 있습니다.”
박춘수가 차분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몰렸다. 군수는 일어서려다 말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입을 어그러뜨린 채 뒤에 앉은 박춘수를 바라보았다. 사회자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 질문은, 행사가 끝난 이후에 개별적으로 받겠습니다.”
사회자는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군수를 향해 옅게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했다. 군수는 표정을 가다듬더니 고개를 돌려 단상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아닙니다. 모두가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 경과보고에 바로 이어 질문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녀의 상사로 보이는 듯한 행사장 맞은편에 선 어떤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녀와 박춘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그녀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박춘수의 말에 대답했다.
“아, 그럼 말씀하시지요.”
박춘수는 사회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양복 재킷의 단추를 여미고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동네활력분과 위원으로 선정된 박춘수입니다. 행사장 입구에 비치된 위원회 구성과 주요업무에 관한 질문입니다. 애초 모집공고에서는 도시 재정비 업무가 동네활력분과 소관으로 되어있었는데, 방금 받아본 안내문에는 미래산업분과로 되어있습니다. 단순한 오타인지, 업무가 이관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춘수의 질문에 사회자는 안심한 듯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 그건 해당 업무가 미래산업분과로 이관된 것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단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자리에 돌아가 앉지도 못한 군수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사회자는 다급하게 군수님의 말씀으로 식순을 이어가려 했다. 사람들도 박춘수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향해 자세를 고쳐 앉으려는데 박춘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래산업분과로 조정되었다는 방금 그 말씀은 애초에 모집공고와는 다를 뿐더러, 위원들에게 어떤 설명이나 동의도 없었습니다. 분과 간 업무를 군청 직권으로 조정하는 것은 군민에게 의견을 묻고 듣겠다는 애초 위원회의 운영 취지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업무를 조정하실 계획이라면 행복군민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7항에 따라, 위원회 의결을 거쳐 진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주셔야 군수님 축사와 그 뒤에 이어질 임명장 수여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춘수의 말을 듣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손에 들려있던 안내문을 다시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사회자도 갈피를 못 잡겠는지 상사에게 눈짓했고, 상사는 난처해하는가 싶더니 앞줄의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내 자리에서는 그녀의 상사가 정확히 누구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상사는 그나마 조금 가벼워진 얼굴로 사회자인 그녀에게 다시 한번 눈짓했고 이를 신호로 사회자는 박춘수의 말에 대답했다.
“네, 위원님 말씀 감사합니다. 아, 저희가 그러니까...모집공고 과정에서 그, 착오가 있었던 것인데 지적해 주시니 절차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도시 재정비 업무는 원래대로 동네활력분과의 소관이 맞습니까?”
박춘수가 사회자를 향해 똑바로 선 채로 처음보다 건조하고 강한 말투로 재차 물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고 그녀의 상사는 머리를 몇 차례 벅벅 긁더니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몇 번 끄덕였다. 그러자 사회자가 박춘수의 말에 대답했다.
“아, 네, 네. 당초대로 동네활력분과 소관이며 말씀하신 조례에 맞추어 이관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박춘수는 다시 평온해진 얼굴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사회자도 안심이 되었는지 마른 목을 헛기침으로 가다듬고는 행사진행을 이어나갔다.
그토록 사회자가 바라던 군수님의 말씀이 이어졌고 뒤이어 자리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군수가 임명장을 수여했다. 박춘수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임명장을 받고 군수와 악수를 했으며, 군수 역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혹은 어색하리만치 과하게, 마주 잡은 박춘수의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무사히 단체사진까지 마무리 짓고 난 뒤에 서로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청해오는 사람들을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맨 앞줄에 있는 이들과 군수를 신경 써서 찍으라던 편집장의 말이 생각나, 나는 서둘러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향해 갔다. 그 때 앞줄을 스치다 누군가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날카롭게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저 새끼 뭐 하는 놈이야.”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날아든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묵직하게 번쩍거리는 롤렉스 시계를 찬 60대의 남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서 있었다. 그는 아까 고만덕 편집장이 행사장에 들어서기 무섭게 달려가 인사를 청했던 그 남자였다.
그 남자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만치에서 박춘수가 환하게 웃는 세상 맑은 얼굴로 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어! 이덕구 씨 아니예요?”
나는 시계를 찬 남자의 말이 떠올라 허둥거리며 재빨리 박춘수를 향해 걸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박춘수가 그 남자와 마주치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기자였어요?”
그가 반색하며 묻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뇨, 그냥 알바예요, 알바.”
“무슨 알바가 이렇게 전문가 포스예요. 하하하. 혹시 군청 직원이에요?”
그의 말에 나는 또 한번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뇨, 여기 지역소식지가 있는데 오늘 행사하는 거 사진 찍고 기사 쓰러 온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춘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하하하, 그럼 기자 맞네!! 와,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까 좋네!”
박춘수와 함께 선 내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 같아 나는 못내 불편하여 그를 잡아끌고 행사장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행사장 밖에는 사람들이 서넛 정도 밖에 없었다. 그제야 나는 잡았던 그의 팔을 놓아주며 말했다.
“군민위원회는, 어떻게 아셨어요? 서울에서 이사 오신 거 아니었어요?”
내 질문에 그는 씨익 웃어보이더니 잠시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사 와서 주민센터에 전입신고하러 갔다가 봤죠. 그래서 지원했는데 운 좋게 추첨이 됐네요.”
이곳에서 평생 나고 자란 우리 엄마도 막상 행복군민위원회가 뭐 하는 곳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내놓을 수 있는 말이 몇 개 없을 텐데 이제 이사 온 이방인이 우연히 알게 된 군민위원회에 지원해서 운 좋게 추첨 되었다는 말은 쉽게 믿기지 않았다.
누구라도 감히 질문을 꺼내기 불편한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듯 질문을 이어나가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욱 믿기가 힘들었다. 내 표정에서 그게 드러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그가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그런데, 알바라는 게 무슨 말이예요? 요샌 기자도 알바가 있어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를 보자 어설프게 대답했다가는 말이 더 길어지겠다 싶어 나는 공 들여 제대로 설명했다.
“뭐, 엄마 소개로... 여기 비둘기소식지라고 이곳 사람들은 다 거기에서 이런저런 정보 얻고 그러거든요. 이런 행사 있을 때마다 와서 사진도 찍고 그러는 거였는데, 오늘은 편집장님이 바쁘다고 기사도 좀 써 달라고 해서...뭐, 그냥 알바하는 거예요.”
이쯤 되면 설명이 되었겠지 싶어 슬슬 자리를 피할 몸짓을 취하는데 그가 다시 물어왔다.
“그럼 근로계약서는요? 썼어요?”
그의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입을 벌린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더욱 가까이 서더니 다소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잊지 말아요. 모호할수록 강자에게 유리하고, 구체적일수록 약자에게 유리하다는 거.”
“그게 무슨...”
“방금 그랬잖아요. 원래는 사진 찍는 거였는데 오늘은 기사도 쓴다고. 어찌 되었든 계약서 써요. 그건 법에서 정하는 고용주의 의무니까.”
그의 말에는 듣고 흘려보내기 힘든 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저 오다가다 어른들이 건네는 류의 어쭙잖은 걱정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조언은 구체적이고 간결하며 분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방법을 더 캐묻고 싶은 그만의 정성이, 손끝의 촉감으로 느껴지는 듯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말을 무질렀다.
“누가 모르나요. 괜히 계약서 쓰자고 했다가 아예 일 안 주면 어떻게 해요. 그럼 저만 손해죠. 뭐, 지금도 돈은 꼬박꼬박 잘 챙겨주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은 아닐 것 같고...”
말을 하다 보니 그의 집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던 고가의 렌즈들이 떠올랐다. 그를 향하던 나의 호감에 날이 서는가 싶더니, 순간 말끔한 그의 양복 차림과 면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내 옷차림 모두 꼴 보기 싫어져서 맥락도 없이 그에게 짜증 내듯 말을 보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나 하는 말 하지 마시고 가세요. 위원 축하드려요.”
돌아서는 내 어깨를 그가 강하게 움켜쥐며 멈춰 세웠다. 갑작스레 느껴진 그의 어마어마한 악력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깊은 물 같았다. 속을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깊은 물.
“덕구 씨.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지켜야 해요. 그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 해요. 내가 나를 알바 나부랭이 취급하면 그냥 알바 나부랭이가 되는거고, 내가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잘릴 것 같다고 그랬죠? 그럼 사장님이 쓰고 싶게, 그것도 아니면 써도 되겠다 싶게 마음을 돌리면 될 일이에요. 그 방법을 찾아야죠. 피할 게 아니라.”
“....그러니까...뭘...어쩌라구요!”
예고 없이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이 나는 불편했다. 물정 모르게 지껄이는 속 편한 말로 들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어깨에서 그의 손을 떨쳐내며 낮게 소리쳤다. 그가 손을 거두고 나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덕구 기자님. 이미 기자인데 자기만 그걸 모르네요.”
그의 말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감정을 가다듬고 다시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가 옅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이덕구 기자님, 행복군민위원회 심층취재, 어때요? 난 재밌을 것 같은데.”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