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 누구신데?”
전화기 너머의 편집장이 무거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은옥 아주머니를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 대답할 수 없었다. 나의 침묵을 곤란함으로 알아들었는지 편집장이 다독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덕구 니가 그런 걸 꾸며내서 이야기할 사람은 아니니까, 알았다. 여기 사무실은 신경 쓰지 말고 잘 보내드리고 와라. 누군지 모르겠지만 상심이 크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편집장의 온기 가득한 목소리에 뜨거운 불덩이가 목구멍 뒤를 타고 올라왔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눌렀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편집장은 잠시 말이 없다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누구냐는 편집장의 질문에 나는 여전히 말을 고르고 있었다. 가장 고운 말을 고르고 골라 은옥 아주머니에게 붙여주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없다.
내 인생에 은옥 아주머니 같은 이가 죽었을 땐 남들에게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가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슬픔의 양을 정해 딱 그만큼의 크기로 내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 텐데.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같이 지내던 나의 은옥 아주머니 같은 이를 남들에게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멍하니 안치실로 가는 복도 끝에 서 있는데 저편에서 병원 대기실 밖으로 향하는 복도에서부터 경찰이 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가까이에서 보는 경찰 모습에 공연히 긴장되어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지려는데 그 경찰이 모자를 벗더니 미소를 띠며 내 앞에 가까이 서며 말했다.
“너, 나 기억 못 하는구나?”
그 경찰이 내게 말했다. 낯선 얼굴이다. 누구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나야 나, 차진우. 우리 초등학교 4,5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맨날 은옥 아주머니네랑 너네 엄마 가게에서 같이 놀고. 기억 안 나냐?”
차진우. 그제야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 때는 통통했는데 지금은 키도 커지고 몸이 날렵해졌다. 까맣게 탄 얼굴도 건강해 보인다. 그때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월드콘을 입에 달고 다녀서 진우 별명이 월드콘이었다.
“아, 월드콘...”
나도 모르게 옛 별명을 불렀다가 지금의 차진우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아 말을 맺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내 말에 녀석은 반가웠는지 더 활짝 웃어보이며 말했다.
“이야, 너한테 그 말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잘 지냈냐? 서울 갔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홍영에 온 줄은 몰랐네. 아직 서울에 있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 내려왔어. 나 저기 비둘기소식지에서 일해. 너가 경찰이 된 줄은 몰랐네, 멋지다.”
내 말에 진우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너 진짜 홍영 소식은 전혀 안 듣고 살았구나. 나 사람 됐다고 한동안 난리가 났었는데. 그나저나 너 내려왔다니까 좋네. 안 그래도 무연고 사망자가 은옥 아주머니라고 해서 너 생각 많이 났어. 니가 많이 힘들겠다. 덕구, 너희 어머니가 발견하셨던데, 지금은 좀 괜찮으시냐?”
어린 시절과 달리 그의 말투는 단단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열한 살에서 단번에 17년을 뛰어넘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 찜기에서 오르던 김을 뒤집어쓰고 발그레하게 뽀얘지던 은옥 아주머니의 얼굴과 그 곁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주머니가 근처 떡집에서 사다 놓은 꿀떡을 한 알씩 입에 집어넣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지금 수액 맞으면서 응급실에 계셔. 아까 경찰이랑 말하다가 쓰러져서. 엄마한테 물어보던 경찰이 너였으면 좋았을 텐데.”
은옥 아주머니 발견 당시를 묻던 다른 경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우보다 선임으로 보였는데, 능숙하게 다독이는 말투였지만 쓰는 단어들이 차가워서 싫었다. 막상 엄마는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 애쓰고 열심히 대답했던 것을 보면 그 경찰이 불편했던 이는 엄마가 아니라 나인 듯싶다.
내 말에 곁에 선 진우는 머뭇거리는 듯 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에 말문이 막혔는지 조금 난처해진 얼굴로 말없이 잠시 서 있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아까 아주머니가, 그러니까 너희 어머니가 은옥 아주머니 장례 그러면 자기가 치르겠다고 하셨잖아.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될 거야.
지금 은옥 아주머니는 변사자라서 수사하고 연고자 찾고 그러면 아무리 못해도 한달은 걸릴텐데 그러자면 시체 안치료만 못해도 3백만원은 들어가는데다,
이거 너네 엄마가 장례 치르고 싶어도 군청에서 병원에 공문을 발송해 줘야지 할 수 있는데, 공무원들은 그거 잘 안하거든. 번거롭기도 하고 껄끄럽기도 해서 잘 안해주더라고. 해 주는 경우를 못 봤어. 너네 엄마 뜻은 잘 알겠지만 어려울 거라고 너가 잘 말씀드려줘. 돈도 적잖이 들어갈 거고...”
진우가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그제야 나는 아까 그 경찰의 말이 차가웠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죽은 자 뒤로, 남겨진 산 자들은 슬픔이라는 감정과 함께 여타의 행정절차를 처리해야 하는 이성도 함께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다는 것을 깨알았다.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은옥 아주머니 무연고자라며. 수사에 걸리는 시간은 알겠는데 왜 장례를 못 치러주는데?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서 그래? 무연고자면 우리가 치러줘도 되는 거 아냐?”
감정을 추스르며 건조하게 물으려 애를 쓰는데도 말을 내어놓을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진우가 이를 눈치챘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장사법에 보면 연고자 범위라는 게 나오는데 지금 너네 엄마처럼 친구가 장례를 치르려면 군청에서 장례식장으로 공문 발송해 줘야해. 그런데 그게 되는 걸 내가 못 봤어. 그리고 병원에서도 의료법 때문에 가족이 아닌 남한테는 시신을 내어주지도 않아.”
“그럼 은옥 아줌마는 장례를 어떻게 치르는데?”
“그게, 무빈소 직장이라고, 경찰에서 수사하면서 연고자를 찾기는 하겠지만 무연고자 확정이 되면 장례 없이 바로 운구해서 화장터로 이동할 거야.
이건 유서도 나왔고 더 수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정황상 자살일 확률이 높아서 수사는 빨리 마무리될 것 같은데 연고자 찾는 게 시간이 걸리겠네. 아무튼, 너가 너네 어머니 설득 좀 잘해.”
“...그럼... 유골은 어디로 가?”
“홍영군에서 운영하는 무연고 추모의 집이라고 있어. 거기에 5년 안치하고 이후에는 집단으로 매장해. 연장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대부분 그렇지 뭐...”
진우의 말이 끝나도록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진우는 잠시 기다리는가 싶더니 내 어깨를 몇 번 가볍게 다독이고는 돌아서려는 듯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진우의 말을 되짚어 보다가 번뜩 생각이 떠올라 그를 불러세웠다.
“진우야! 유서라고 했어?”
진우가 몸을 돌이키려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응. 은옥 아주머니 집에서 나왔어.”
“그거 나도 볼 수 있어?”
예상은 했지만 진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게 수사 건이라. 미안하지만 보여줄 수는 없어. 나도 유서를 본 건 아닌데 혹시 이야기해 줄 만한 게 있으면 말해줄게. 대신 비밀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혹시 모르니까. 이건 내 연락처.”
진우가 내게로 다가서며 명함을 내 윗옷 주머니에 넣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그것이 그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호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더니 저만치 멀어져갔다.
은옥 아주머니에게 아무도 없다는 걸 확신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엄마는 경찰에게 장례는 자기가 치르고 싶다고 했다. 경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하자 막무가내였던 엄마는 성을 내다가 혼절했다.
가족만큼, 가족보다 가까웠던 우리는 그렇게 남이 되어 은옥 아주머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채권자라는 사람이 두엇 찾아와 엄마와 나를 향해 가족이냐고 따지듯 물었었다. 경찰이 최초 신고자라고 우리를 그들에게 소개하니, 그 두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경찰은 그들을 달래며 무연고자로 확정되면 사망자의 재산을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될 것이니 기다려보라고 설명했다. 그제야 그들은 진정이 되었는지 얼마 안 있어 병원문을 나섰다. 법적으로는 우리보다 그들이 은옥 아주머니와 더 가까웠다.
그렇게 처음으로 은옥 아주머니에 대해 몰랐던 한 가지를 알았다. 누군가는 통장 숫자가 늘어나는 재미로 살지만 누군가는 빚의 숫자가 줄어드는 재미로 살며, 대다수 우리가 그러하듯 은옥 아주머니도 후자의 재미로 살았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우리에게 재미는 그것 말고도 많았다. 예컨대 엄마 가게에 제일 맛있는 수박이 들어온 날이면 우리는 근처 계곡으로 놀러 갔다. 시원해진 수박을 반으로 툭 갈라 저마다 숟가락을 들고서 퍼먹다가, 수박씨를 훅 뱉어 뺨으로 받아내는 게임을 하며 우리는 별것도 아닌 놀이에 그렇게도 많이 웃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날 때부터 죽은 이었으니 은옥 아주머니가 처음이 맞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잃은 그에게 소홀했다는 죄책감은 이런 것이구나 – 몰라도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낯선 잔혹함이 너무 날카로워 아팠다.
가슴이 갑갑해진 나는 엄마가 깨어나기 전 바람을 쐬러 나가야지 싶어 서둘러 병원 문밖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생각보다 차가운 여름밤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나는 다시 힘을 주어 남은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그때 내 왼편으로 무언가가 휙 하고 움직였다.
나는 얼른 문 밖으로 몸을 빼내어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고양이인가 싶었는데 아무도 없다. 잘못 본 것인가 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누군가 서 있다가 내가 그를 보자 재빨리 건물 벽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어둠 속이라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보고 피한 것이 분명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렇게 멀어지는 검은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건물 모퉁이를 돌다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 반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처음으로 환하게 드러났다.
그였다. 은옥 아주머니네 가게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그가 움찔하더니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가 간 방향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건물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달려가는 그를 보았다. 나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하자 무섭게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가슴에 불이 이는 것 같았다. 뛰는 숨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나는 악을 쓰며 그를 쫓았다.
“야! 이 새끼야! 너 거기 안 서! 이 개새끼야! 너 누구야! 야 서라고! 너 그놈이지! 너 뭐야! 야 개새끼야! 너 거기 서! 내가 잡으면 너 죽여버릴거야! 야아아아아아!”
그가 대로변에 다다랐고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할지 다른 방향으로 내달려야 할지 고민하다 내게 덜미를 잡혔다.
나는 세차게 그를 잡아당겼다. 그가 내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나는 일어나려고 엎드리려는 그의 등을 발로 세게 밟고는 재빨리 올라앉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한참 만에 숨을 고르고 그에게 소리쳤다.
“야...헉헉...야! 너 이 새끼. 너 뭐야. 너 나 봤지? 저번에 은옥이..헉헉 아줌마네서..헉헉. 너 뭐야. 너 뭔데 니가 여기에 있어! 헉헉. 너 뭐야 이 개쌍놈새끼야!”
나는 그제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흙먼지가 묻은 옆얼굴이 보였다.
은옥 아주머니 또래의 그 남자는 단단한 몸집과 달리 얼굴은 앙상했다. 얼굴 거죽은 나무껍질처럼 두꺼웠고 여기저기 작은 상처들이 많았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술을 먹었나 싶은데 냄새는 나지 않았고, 마약 같은 걸 했나 싶은데 눈빛이 맑았다.
그랬다. 그것은 우는 눈이었다. 절규하는 눈이었다. 삶의 무엇, 혹은 전부였던 무언가를 잃고 우는 눈빛이었다.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은옥 아주머니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 이 낯선 사내의 눈빛과는 대조적이었던 은옥 아주머니의 비어있던 눈빛도 함께 떠올랐다.
모든 것이 일순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아들뻘의 남자에게 깔린 그는 저항은커녕 미동조차 없었다. 간신히 숨만 내쉴 뿐이었다.
이곳에는 왜 온 것인지, 은옥 아줌마와는 어떤 사이인지, 왜 들어오지 못하고 염탐하듯 기웃거리고 있었던 것인지 머릿속에 질문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그에게 물을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뻔한, 그런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그의 몸에서 완전히 일어섰는데도 그는 그 자리에 그렇게 누워있었다. 나는 말 없이 자리를 뜨려다 그를 향해 한마디 건넸다.
“비둘기소식지 이덕구입니다. 이야기하실 게 있으면 저한테 오세요. 제가 가족은 아니지만...은옥 아줌마는...”
어이없게도 참았던 눈물이 그 낯선 사내 앞에서 터졌다.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라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서울에 올라간다며 은옥 아줌마에게 인사를 건네러 갔던 그 날, 내 손에 쥐여준 지폐에서 묻어나던 아주머니의 온기가 갑자기 너무나도 생생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짐승처럼 울었고 그런 나를 그는 바라보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의 어깨가 간혹 들썩일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곳에 그를 남겨둔 채 다시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원 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병원 문 앞에 바르게 선 사내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박춘수였다.
“박춘수 씨?”
내가 다가서며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운 것 같지는 않은데 그의 얼굴은 몇 년은 늙어 보였다.
“덕구, 너 여기서 뭐하냐.”
그 질문은 내가 건네야 하는 질문이었다. 박춘수가 여기에 왜 있단 말인가. 은옥 아주머니 소식은 또 어떻게 들었단 말인가.
불현듯 얼마 전 박춘수가 내게 건넸던 말이 생각났다. 은옥 아주머니네 있던 그 낯선 사내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냐고 묻던 박춘수의 물음에 망설이던 나를 보며 그가 그랬었다.
‘혹여, 너한테도 나처럼 그럴만한 이유가 생기거든 그때 대답해도 된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의심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사납게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멱살을 움켜쥐었다.
박춘수는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온몸에 힘을 뺀 채 내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조금 전 그 아무 말이 없던 낯선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은옥 아주머니의 죽음 앞에 이 낯선 사내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나는 그를 노려보며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 뭐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여기 왜 왔어. 알고 있었어? 아줌마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냐고, 말해.”
그가 나를 고요히 바라보았다. 은옥 아줌마 죽음을 슬퍼하기에 그는 너무 먼 사람이었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기에 그의 표정은 비통했다.
아까 낯선 사내와 달리 박춘수의 눈빛은 무력감으로 비어있었다. 그 표정의 진위를 알 수 없어 나는 쉬이 멱살을 움켜쥔 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덕구야, 무슨 일이야.”
그때 병원 현관문을 열며 진우가 나왔다. 나는 박춘수를 잡고 있던 손을 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그에게 말했다.
“아, 아니야.”
진우는 나와 박춘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덕구야, 그냥 절차상 물어보는거니까 부담없이 듣고 말해주면 돼. 혹시 은옥 아주머니 최근에 뭐 이상한 점은 없었어?”
진우는 매우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졌다. 왜냐면 나는 무엇이라도 알고 싶었고 그것을 알 방도가 없었으며, 어쩌면 진우가 그것을 대신 알아봐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눈빛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
내 말에 진우와 박춘수의 눈빛이 동시에 번뜩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만둣집에 갔을 때 어떤 낯선 남자가 있었거든. 아주머니와 친해보이진 않았고. 그 남자랑 있을 때 아주머니 표정이 굳어있었거든. 그런데...”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절규로 붉어진 그 낯선 사내의 벌건 눈동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진우의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난 질문을 받았고 이제 누군가에게 내 질문을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방금 그 낯선 남자가 병원 문 앞을 기웃거리다가 도망쳤어.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도망쳤어.”
따라가서 그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가 아직도 길바닥에 엎드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그가 울고 있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건 진우 같은 경찰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치고 박춘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 밑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9화에서 계속)
* 무연고자 장례절차에 대해 친절하게 답변해 주신 '나눔과 나눔' 관계자분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이는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는 단체의 미션과 비전을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