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너무나 먼, 관심과 천박한 호기심 사이

by 안녕마나


화장실 문을 나서자마자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나는 온몸에 전기가 오른 듯 뒤통수가 쭈뼛거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떨어지려는 심장을 낚아채기라도 하려는 듯 휘청거리는 몸을 무릎을 굽혀서야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편집장이었다.

“…다 들었구만.”

그는 들어본 적 없는 낮은 음성으로 혼잣말처럼 뱉었다.

“아니, 그게 일부러 들은 게 아니라, 그리고 무슨 말씀들 나누시는지 이해도 못 했어요.”

변명이든 무엇이든 겨우 둘러댄다는 말이 ‘이해 못 했어요’라니. 스스로도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편집장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슬며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변하며 흘기듯 찬찬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갑자기 자세를 풀고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의 무거운 팔을 내 어깨에 툭 얹어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너라서 다행이다.”

“네?”

“사실 아까 하 사장 그놈은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못 봤겠지만 난 봤거든. 화장실 칸 하나가 문이 잠겨있는 거. 하 사장한테 귀띔 좀 하려다가, 그놈이 워낙 눈이 뒤집히기도 했고, 나중에 누군지 나만 알면 여러모로 괜찮지 않을까 하고 모험 좀 걸어봤는데. 허허. 사실 말이야, 이 사람이었으면 싶은 사람이 하나 있긴 했었는데, 뭐, 생각해 보니까 너라서 다행이다 싶다. 허허.”

편집장이 바랐던 이가 누구였을까 잠시 생각해 보는데 편집장은 그 육중한 몸을 내게 기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뭐, 이야기랄 것도 없잖아. 그냥 외지인 경계하자, 그거지, 뭐. 별 이야기는 아닌데, 뭐 숨길 것도 없고. 그런데 괜히 어디에 가서 말하지는 말아라. 별거 아닌 일로도 네가 곤란해질 수 있고, 나도 곤란해질 수 있고. 이해 못 했다니 그렇게 믿고 있을 테니까. 그럼, 저쪽 복도로 돌아서 내려가라.”

편집장은 어깨동무를 풀며 내 등을 두어 번 툭툭치고는 아래층으로 먼저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편집장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던 하 사장과 편집장의 대화는, 나도 그도 곤란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마법처럼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잊어버리는 편이 속 편하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떠오르는 대화를 쫓아보려 했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두 사람의 대화는 더욱 또렷해져 왔다.

“뭐, 이렇게 늦게 와. 혹시 큰일 치렀니?”

고보영이 나를 보자마자 놀리려는 듯 일부러 ‘큰일’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나 조금 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정말 큰 일을 치르고 온 것만 같아 그녀의 말을 바로 받아치지 못했다.

“뭐야, 진짜 큰일 치렀어? 지금 당황한 거야? 괜찮아, 사람이면 똥 싸는 게 정상이야.”

고보영이 심각한 얼굴로 똥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순간 그 모습이 우스워 나는 피식 웃었다.

“뭐야, 너 진짜 웃긴다. 그나저나 너 화장실 간 사이에 재미있는 광경을 하나 봤어.”

재미있는 광경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박춘수 씨하고 아까 그 도시계획공사에서 왔다는 과장 말이야.”

다행히 고보영도 두 사람에게 눈길이 갔던 모양이었다. 공연히 그 사실이 반가워 나는 그녀가 어쩐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박춘수 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 과장이 박춘수를 부르더라고. 그러더니 무슨 무슨 이야기를 나누더라. 그런데 신기한 건, 그 과장은 말하는 내내 웃는데, 박춘수 씨는 뭐랄까, 맞장구는 치지만 싫어하는 티가 너무 나는 거야.”

안타깝게도 여기까지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권세진 과장이 박춘수의 동의도 없이 그의 배경을 위원들에게 설명할 때에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부자연스러운 기류쯤은 이미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장이 마지막에 좀 이상한 말을 하면서 박춘수 씨한테 인사하고 가더라.”

“응? 무슨 말?”

“그러니까, ‘여기 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좀 달라지셨길 빈다.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잖아요.’라고. 박춘수 씨가 회사 다닐 때 성격이 좀 그랬다는 뜻인가.”

마지막에 덧붙인 그녀의 의구심 섞인 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섭섭함이 밀려왔다. 상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박춘수의 이력을 공개된 자리에서 뇌까려버린 사람 따위가 내뱉는 말에 이러쿵저러쿵 추측을 덧대는 모습이 영 실망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고보영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그 모습이 조금만 덜 예뻤더라면 나는 그녀를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몸을 돌려세우며 나를 정면으로 마주한 채 말했다.

“…표정을 보니 기분 안 좋네. 내가 말실수했어, 미안. 그런데 박춘수 씨, 좋은 사람이라는 거 나도 알겠어.”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에 잠시 잠깐 그녀에게 서운한 생각을 품었던 내 마음이 무안해졌다. 내 표정이 풀렸던 모양인지 그녀가 옅게 웃었다.

“이 대리님. 좋아한다는 말은 가끔 거짓말한다며.”

느닷없는 그녀의 말에 그 말은 또 무슨 뜻인지 헤아려보다 오늘 군청으로 오는 차 안에서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건가.

“거짓말을 하면 뭐해, 표정에 이렇게 다 드러나는데.”

“응?”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내 왼쪽 어깨에 그녀의 손을 툭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대리님이 박춘수 씨 엄청 아끼는가 봐.”

“응? 아닌데?”

“뭘 또 아니기까지 해. 딱 봐도 자기가 아끼는 사람 흉보는 것 같으니까 기분이 안 좋아진 거면서.”

그녀의 대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박춘수를 아끼나.

“그런데 혹시…남자 좋아해? 성적인 취향을 묻는 거야.”

그녀가 난데없고 거침없이 물었다.

“응? 아니, 내 취향은, 여자인데.”

“다행이네.”

그녀는 시선을 살며시 바닥으로 떨군 채 내 어깨에서 손을 거두며 혼잣말처럼 새초롬하게 읊조렸다. 아까 전 편집장이 내게 걸었던 어깨동무를 풀어놓았을 때와 달리, 그녀의 손이 떠난 자리에 남은 텅 빈 무게감은 또렷이 허전했다.

“뭐가 다행이야? 그런 편견이 있는 줄 몰랐네.”

내 말에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뭐? 참나, 내 말이 그렇게 들려? 나, 편견 없어, 이 답답아! 으휴.”

쏘아붙이듯 말하고 토라진 듯 자리를 뜨는 고보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일지 헤아리느라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다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박춘수를 가리키며 저기 멋진 사람이 있다고 생글거리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두어 번 벅벅 긁어대고는 그녀를 따라 대회의장으로 따라나섰다.

분명 조금 전 그녀가 회의장 문을 나서서 오른편으로 향했는데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화장실에 갔겠거니 했지만, 혹시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박춘수였다.

“뭐 나쁜 짓 하고 있었어? 뭘 그렇게 놀라서 돌아봐.”

편집장 때문이었는지 고보영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마음이 진정 안 된 것은 사실이었다. 박춘수를 보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 역시 아까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다.

“전체회의까지 들렀다 갈 거냐?”

“뭐, 그래야죠. 편집장님이 아직 계시니까. 행사 끝나고도 바쁘실 것 같긴 한데.”

“…미안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따라 느닷없고 난데없는 말을 건네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되뇌일수록 속을 알 수 없는 고보영의 ‘다행이네’라는 말과 달리, 박춘수가 나지막이 건네는 미안하다는 말에는 공연히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무슨 뜻으로 내게 미안하다 했는지, 그 맥락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박춘수가 나를 향해 걸고 있던 마음의 빗장이 철커덩하고 풀리는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늘 넉살 좋고 깍듯한 그의 모습을 대하며 불편하다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서운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몽니를 부릴 때도 더러 있었다. 맥락 없는 그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그를 향한 나의 서운함 같은 것이 결국 그가 내게 단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생뚱맞게도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군청 회의실 앞 복도에서 그가 나를 향해 걸어두었던 그 빗장을 풀어버린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지금은 매일홍영이 된 비둘기소식지에 들어갔을 때도, 취직이라 할 것도 없는 소식지 사진 촬영 아르바이트생에서 이덕구 대리가 되었을 때도, 은옥 아주머니가 그렇게 떠나버린 때에도, 그가 운곡맨션 주변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분명하게 처리해 낼 때도, 그와 함께 카메라를 매만지고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모든 순간에, 내가 기대어 볼 수 있는 남자 어른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설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남들은 하나씩 있는 그 흔한 삼촌이나 이모도 없이 명절이 되면 엄마와 덩그러니 집에 마주 앉아 돌아가신 외할머니 기억만 매만지고 살았던 내 지난 시절에, 면도하는 법도, 넥타이 매는 법도 인터넷을 보며 익히거나 친구들의 형들에게 배워야만 했던 시간이, 알고 보니 조금씩 깊게 패 온 상처였음을, 박춘수가 조용한 음성으로 꺼내어 놓은 미안하다는 말 그 한 마디 때문에 나는 모두 깨달아 버렸다. 애초에 아버지가 없었으니, 그리워할 이유도 없었건만, 이 여덟 살 남짓 터울의 낯선 남자와 이리저리 순간을 부대끼는 동안 아버지의 부재가 쌓아놓은 그 상처가 아주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그 순간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아버렸다.

“…괜찮아요.”

나의 말에 박춘수가 힘없이 웃었다.

“…그런 식으로 내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까 그 권세진 과장이 내 이야기를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걸 들으면서,그 순간 무엇보다 네가 너무 신경 쓰이더라.”

그는 슬쩍 나를 살피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게 꼭 무슨 단계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계기가 있을 뿐이지. 너와는 그런 계기들이 많았고, 나도 네 덕에 마음 붙이고 여기에 살면서도, 정작 내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네게 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그런 식으로 듣게 해서 미안하다. 그냥,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냥,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뭐, 이것 말고도 고맙고 미안한 게 많긴 하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장난스레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그가 내 등을 다독였고 그의 손바닥으로 전해오는 온기를 나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구 찾고 있던 것 같던데, 아까 그 고보영 주임님인가? 그럼 같이 들어와. 나는 먼저 간다.”

박춘수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대회의실로 향했다. 멀어져 가는 박춘수를 한동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포함해 서너 명만 남았다. 모두들 대회실로 향한 모양이었다. 고보영도 회의장 안에서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오겠거니 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돌아보니 권세진이라는 남자가 환히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고만덕 대표님하고 같이 일하신다고 하셨죠?”

“아, 네.”

“아하하, 죄송한데 아까 한꺼번에 많은 분하고 인사를 나눠서 제가 성함을 잊었습니다.”

“아, 예, 매일홍영에 이덕구 대리입니다.”

한눈에 봐도 내 이름은 한 귀로 흘려들은 눈치건만 그는 마치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이라도 생각난 것처럼 오른손으로 자기 허벅지를 '탁' 쳤다가 박수를 서너 번 쳤다.

“아, 맞다, 맞다. 이덕구 대리님!”

나를 불러세운 이유가 이름이나 묻자고 그런 것은 아닐 텐데, 한동안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손바닥을 비볐다가 자기 뺨을 쓸었다가 그는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비록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괴이하리만큼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경 너머의 그 작은 눈동자는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대회의실로 가시나 보네요. 저쪽입니다.”

내가 먼저 가라는 뜻으로 몸을 틀어 그에게 길을 내어주며 말하자 그 역시 대회의실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같이 가자는 투로 눈짓했다. 마침 고보영도 알아서 찾아오겠거니 하고 대회의실로 가려던 참이라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장까지야 이 복도만 지나면 되니 그와 걷는 시간이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아까 박춘수 과장님, 아니 박춘수 위원님하고 잘 아시는 사이 같던데요, 두 분이 친하신가봐요.”

나는 대답 대신 그런 걸 왜 묻느냐는 투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춘수 선배를 여기에서 보니까 반가워서요. 여기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네요, 하하.”

권세진을 바라보던 박춘수의 굳은 얼굴과 은근슬쩍 걱정했다는 말을 흘리는 모양새를 보자니, 아무리 보아도 권세진이라는 이 자가 진정 박춘수를 걱정하고 아낄만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보면 볼수록 나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싶어 나란히 걸으며 그의 눈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그렇게 보니 그의 눈동자가 남들보다 결코 유난히 작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가 괴이하리만치 작게 느껴졌던 건, 순전히 그의 눈빛 때문이었고 그 사실을 인지하자 나는 어쩐지 그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 두 분, 친하셨나 봐요?”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그렇게 물었다. 정말 두 사람의 친분이나 사연이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친하지 않은 티가 팍팍 나는데 어디에서 위선이야’라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한 것뿐이었다. 내 진의를 알 리 없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다고 보면 그렇고. 한 팀에 있었으니까요. 춘수 선배는 여기에서 잘 지내요?”

어물쩍 대수롭지 않게 툭 하고 말을 던졌지만, 내 몸 어딘가에 있을 육감은 날카롭게 곤두서며 그의 말을 읽었다. 직접 물으면 될 말을, 굳이 낯선 나에게 돌려 묻는 그 모양새도 이상했지만 무엇보다 무언가를 캐내고자 하는 천박한 호기심이 뒤섞인 그의 경계가 옅지만 강렬하게 느껴졌다.

“네, 왜요?”

내가 이유를 물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너무 직설적으로 되물었나 싶은 생각에 내가 웃어보이자 멈칫했던 그가 함께 웃으며 말했다.

“하하, 뭐 춘수 선배가 워낙 좀 뭐랄까, 좋게 말하면 자기 색이 분명하고, 또 달리 말하면 너무 자기식으로 하는 부분이 있어서 잘 어울리는지 걱정돼서요. 그래도 뭐,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이런 것을 두고 칭찬에 독을 탔다고 한다. 엄마는 시장 사람들이나 아파트 이웃들과 카페에 간다며 나섰다가, 가끔 콧김을 씩씩 뿜어내며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대개 모임 중 누군가가 칭찬인 듯 독을 타서 엄마에게 들이미는 말에 열이 받아 그런 것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말을 하라고 달아놓은 주둥이로 똥을 싸는 인간들이 꼭 있어. 아니, 그냥 덕구 같은 아들이 있어 좋겠다고 하면 될 것이지, 딸이면 언니 팔자 닮아 센 팔자였을 텐데 딸이 아니라 다행이니 뭐니하는 쓸데없는 독을 타길 왜 타, 배운 데 없는 것들.’ 조금 전 권세진 과장이 했던 말을 엄마가 듣었다면 뭐라고 할지 상상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거렸다. 옆에 있던 권세진은 그런 내 웃음의 뜻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금요일, 1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