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리 장미가 자꾸자꾸 활짝 피어서 '걱.정'
아오리 장미 한 녀석이 활짝 피었다. 말 그대로 화알-짝 피었다.
흡사 다른 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피었다. 처음엔 '우와 장미가 이렇게도 피는구나!'라며 놀랐는데 또 한 녀석이 그렇게 피어나자 스멀스멀 마음에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나무선생님께 지나가는 말처럼 여쭈었더니, 나무선생님 왈, "스트레스 받나?"라며 혼잣말을 내게 다 들리게 하신다. 그리고 "물은 잘 주죠?"라고 물으신다. 내 대답을 원하셨던 것은 아니기에 나무선생님은 그렇게 두 마디의 말을 남기고 본인 볼 일을 보신다. '그럼요, 말씀하신대로 흙이 마르면 물이 흙 속에 고인 아오리 장미 응가까지 다 씻어낼만큼 충분히 준답니다. 별일 없겠죠.' 미쳐 건네지 못한 대답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슬그머니 본격걱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게 다크써클로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나무선생님께서 한 마디 툭 던지신다 -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아요. 잘 크고 있구만."
'그래, 잘 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자'.
집으로 돌아왔다. 쌓여있는 일들을 하나둘씩 하고 있는데 아오리 장미와 눈이 마주쳤다. 화알-짝 핀 아오리 장미. 누가 봐도 장미라고는 믿기 어려운 자태. 차라리 작약이나 동백꽃 변종이라고 하면 믿을까. 그렇게 마음 안에서 '걱정 말자' 대범이와 '걱정돼~걱정돼' 소심이가 줄다리기를 하는데 문득 법정 스님의 글 '무소유'가 떠올랐다. 정성스레 키우던 난초가 실수로 죽게 되자 몹시 안타까워하는 자신을 보며 소유욕이 지나쳤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셨다는 그 유명한 글.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땐 '그래, 맞아' 싶었는데, 세상의 때가 묻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푸릇푸릇한 8남매를 키우는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물론 나는, 인터넷 쇼핑몰 1,000원 쿠폰 하나에 세상의 인심을 따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지만,
만약 하늘이 허락하시어 죽은 난초 앞에서 속상해하시는 법정스님을 만나게 된다면 같이 곁에 쪼그려 앉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스님, 사랑이라서 그런 거예요. 잘 자랐으면 해서, 내가 못 지켜준 것 같아 미안해서. 그게, 사랑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너무 속상해 마세요."
...깨달음이 부족하다고 혼나겠지.
그래도 자잘하게 오만가지를 소유한 내가, 아오리 장미를 무소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데려왔는데, 잘 키워봐야지 (이런 마음이라면 기특하다고 하실 것 같다)
다만 해야할 것은 의젓하게 사랑해야지. 방이에게 그랬듯 우리 아오리도 뭐 이럴 때도 있는거지라며, 관심을 갖되 건강한 거리를 두어야지.
걱정하는 나를 자책하지 않아야지, 나는 사랑하는 거니까. 내가 해야할 일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봐주기. 기다려 주기 (활짝 핀 꽃잎 앞에서 당황해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