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과 앵두와 주목
“우리 옛날 살던 동네말이야, 논밭 있고 하던 그쪽이 싹 재개발 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왔다네?”
“아, 그래?”
“왜, 그때 우리 앵두 따먹으면서 도서관 갔었잖아. 그 길 따라 상가도 많이 들어왔다고 하고.”
“그렇구만.”
봄이 왔다. 창밖을 내다보니 도로변의 벚꽃이 활짝 피었다. 언제 또 계절이 하나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나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철쭉이 필테고, 어린 내가 고대하던 시기가 찾아온다.
진달래는 독이 없고, 철쭉은 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철쭉은 먹을 수 없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면? 초등학생 김재득은 그렇게 철쭉을 한 송이 따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꽃은 꿀이 있어서 달다. 철쭉은 꽃이다. 그러므로 철쭉은 달다. 하지만 철쭉은 독이 있다. 고심하던 초등학생 김재득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아하! 벌처럼 꽃을 따서 꿀만 빨아먹고 버리면 되는 구나! 만 6세 김재득은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큰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철쭉을 딴다. 꽃받침과 암술 수술을 잘 제거한다. 그리고 마치 벌이 꿀을 빨듯 쪽쪽 뒤꽁무늬의 꿀을 빨아먹는다. 그렇게 나는 동네 철쭉이란 철쭉을 다 동내고 다녔다. 나름대로 꽃을 보는 눈도 생겨서, 어느 꽃이 더 달콤하고 꿀이 많은지도 알았다. 시들시들한 것은 패스. 꽃잎이 싱싱하고 빳빳한 것을 고른다. 비가 온 다음 날도 패스. 단맛은 커녕 빗물만 마시는 꼴이 된다. 손톱으로 꽃받침을 제거하고 입에 꽃을 문 순간, 은근한 달콤함과 풀내음인지 꽃내음인지 아리송한 그윽한 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철쭉이 한창 필 시기에는 불량 식품도 필요하지 않았다. 지천에 널린 철쭉 꽁무늬를 물고 신발 주머니를 흔들며 나는 하굣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철쭉을 할짝이던 봄이 가면, 또 다른 먹을거리가 생긴다. 집 근처 도서관에 가는 길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고운 붉은 색으로 물든 앵두를 엄마는 항상 물티슈로 닦아서 주셨다. 입에 넣으면 절로 침이 고이는 찡한 새콤함. 나는 그렇게 앵두를 하나씩 따먹으며 도서관에 갔다. 엄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오물오물 앵두 씨를 길 따라 뱉으며 가다보면 더운 것도 잊어버리고 도서관에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덥다고 징징거리는 딸을 달래기 위한 엄마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앵두는 색도 참 예쁘고 맛도 참 좋았다. 시뻘건 빨강이 아닌 발그레 물든 뺨 같은 옅은 붉은 색은 나에게 여름의 상징이었다.
더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붉음이 나를 찾아왔다. 주목 나무에 열린 빨간 주목 열매. 주목 나무 열매의 씨에는 독이 있기 때문에 나는 어쩐지 주목을 먹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린 아이들이 다들 그렇듯 무시무시한 것 (독, 괴물, 아무튼 무서운 소문들)은 매력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복어를 먹는 인간의 심리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아무튼 잘 익은 주목 열매를 따면 벌어진 안에 맺힌 다디단 꿀을 나는 좋아했다. 나는 찐득한 열매의 과즙을 할짝거리며 낙엽 더미만 골라 밟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바스락거리던 소리와 가을 냄새. 그리고 빨갛고 말랑한 주목.
돌이켜보면 동네의 가로수들이 나를 키운 것 같다. 아, 그곳에 묻어있을 매연과 농약도. 가지각색의 붉음은 내 몸안에 들어와 추억을 싹 틔우고 키웠다. 아무튼 철쭉과 앵두와 주목이 키운 아이는 자라서 여전히 아무거나 주워먹는 성인이 되었다. 재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