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의 사진 한 장
우리, 그러니까 남편과 나는 이미 여름의 롯데월드를 통해서 놀이공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마치 여름의 고단함을 벌써 잊은 사람들처럼
가을에는 레고랜드에 갔다. 그 후, 남편은 가을 내내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날씨 좋을 때 갈 수 있다며 "내일 서울랜드 갈까?" 라고 던진 그의 질문에 나는 너무 쉽게 yes라고 답했다. 사실 9월부터 11월까지
남편은 매우 바쁘다. 본인의 일도 바쁘고, 벌려 놓은 일도 바빠서, 토요일이라 함은 아이와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시간들이었다.
바쁜 두 달이 지나고서 맞이한 토요일은 나에게 보상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사실, 1인 세신샵에 예약을 하고 홀로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해 두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하루의 시간이 있기 전 2주동안 아이는 수족구를 앓았다. 일주일이면 괜찮다더니 휴일 포함 장작 12일을 집에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토요일! 결단을 내려야했다. 2주간 고생한 나에게 '포상휴가'를 주느냐...
2주간 집에 갇혀있던 아이에게 '특별휴가'를 주느냐.....
남편이 말했다. "이든이 너무 집에만 있었잖아. 답답했잖아." 나는 이제 내 감정과 내 상황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통탄할 지경이었지만, 아들의 답답함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서울랜드로 가는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입장표가 카드 할인이 돼서, 싸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낮은 기대감에 삐진 낯빛을 비추기라도 하듯이, 과천의 단풍은 너무나 멋지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아이와 단풍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순 없었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싶어하고 유아차에 앉아서 탈출을 시도하는 아이곁에서 우리는 금세 지쳐갔다. 게다가 나는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 돌아갈 시간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입구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이가 탈만한 어트랙션을 찾아헤맸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줄이 긴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에게 기다릴만한 인내심은 없었다. 차 구조물이 있는 곳이라면 아이는 우리에게 협조했다. 일명 '차치광이'(차+미치광이)라고 불릴만한 우리 아들은 차에게는 관대했다. 탈만한 어트랙션도 없고 아이도 흥미를 잃어 어쩔 수 없이 실내 놀이터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탐험 구조물은 관심도 없고, 한 켠에 마련된 주방놀이와 타요와 월드카로 꾸며진 섹션에 들어가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달래서 파도 미끄럼틀에 나왔다. 아빠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조금 더 일찍 탔으면 좋으련만, 다음 타임을 위해 5분이 남은 상황에서 몇 번을 타고 눈치가 보여 퇴장을 했다.
우리는 모두 배가 고팠다. 돈까스 집에서 돈까스를 주문하고 실외에서 먹었다. 실내는 너무나 덥고 사람이 많아서 앉아서 먹었다간 그 자리에서 토할 지경이었으니까, 우리는 추워도 밖을 택했다. 아이와의 식사는 그렇다. 아이를 내가 먼저 먹인다. 그동안 남편이 먹는다. 그리고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곳에 가면, 식은 음식을 내가 먹는다. 너무 배가 고파서 맛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이 날 돈까스를 먹고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추운 날 그것도 밖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로 먹는 것은 나같은 사람에게 곤욕이다.
키오스크 앞에서도 뒷사람이 너무 신경쓰여 어느 날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음료를 고르는 나! 그 돈까스를 경양식 집에 앉아있는 듯 우아하게 먹고 있을만한 깜냥이 없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산타 페스티벌 구경을 했다. 산타가 힙합신 크루를 데려와서 공연을 했다. mz산타인가? 생각했다. 아이가 관심이 없는지라 우리는 회전 목마로 향했다.
어느 놀이공원에 가든지간에 우리는 회전목마를 탄다. 그나마 아이가 협조적으로 타는 기구이기 때문에 꼭 탄다. 나는 유아차를 한 켠에 세워두고 남편과 아이가 회전목마로 들어가는 줄에 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놔두고, 나는 잠시 멍하게 다음 탈 것을 찾아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런데 남편과 아이가 탄 회전목마가 운행을 시작했고, 갑자기
자기야! 하고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저건 찍어야해! 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내가 5년차
느린 핸드폰의 카메라를 켰다. 회전목마가 오래 돼서 느렸기에 망정이지 저 한 컷을 놓칠 뻔 했다.
몇 바퀴를 도는 동안 사진 5장을 찍었는데, 그 중에 첫 번째 사진이 제일 잘 나왔다. 내가 긴급하게 그리고 얼떨결에 자기야! 소리에 찍은 사진.
웃는 얼굴이 어색해서 결혼식 때 어떻게 하지? 라고 고민하던 내가, 언제나 되도록 웃는 얼굴인 남편을 만나서 예쁘게 웃는 아들을 낳았다. 그 두 사람이 사진에 담겨있으니 저것이야말로 내게는 올해의 사진 한 장이다. 자주 부대끼고 울퉁불퉁 살아가면서도 나는 두 남자의 사진을 가끔 본다. 혼자 있는 순간에 사진을 보며, 지금 내가 가진 '당연한 것'들이 정말 '당연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되새긴다. "으하하하 야호~."라고 말하기 직전의 아들 얼굴, 언제나 웃는 얼굴이 준비된 남편의 얼굴. 웃음이 어색한 나와 찍으면 여러 번이 필요하지만, 저 두 사람에게 웃는 사진은 언제나 쉽다.
어젯밤, 남편과 올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소회했다. 바쁘고, 싸우고, 쪼달리는 현실에서 우리는 또 한 해를 살아냈다. 웃는 사진 덕분인 것 같다. 지글지글 타던 나의 속이 안정을 찾아가는 이유가.
너 때문에 인생이 일그러졌다고 외치던 내가 반성을 하는 이유가. 저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이 된다.
우리 셋의 사진도 소중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사진사로 남아있는 순간 또한 만족한다. 내년에는 한 뼘 더 큰 아이와 우리의 나이든 얼굴이 함께 어떤 사진으로 남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만, 지친 어느 날, 빛바랜 한 장 속에서 어린 시절의 행복을 찾는 나처럼, 아이에게도 그런 사진을 남겨주고 싶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힘든 날도 있을 거고, 우리가 나이 들어 곁에 없는 시간이 까마득히 먼 날에 올 것이다.
하지만 사진사 엄마가 찍어준 사진이 곁에 있다고. 아빠와 엄마와 네가 담긴 사진 안에서 그 누구보다 너는 '행복'하다고. 작은 프레임 한 장으로 늘 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