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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윗 홈

올 해의 다행

by 여름

<홈 스윗 홈>


사람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나에게는 시기마다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년 시절에는 부모님의 울타리가 든든한 곳, 청소년기에는 아픈 아빠와 일하는 엄마로 비어있는 곳, 20대 때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는 찾아야하는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아마 결혼 이후인 것 같다. 남편이 파견으로 나간 대학원 기숙사에서

우리는 신혼을 시작했다. 3층이었고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위층에는 외국인 대학원생 가족이 살았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층간소음이 심했다. 나중에는 심장이 쿵쾅 거릴 정도라 찾아가도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분쟁 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끌었지만 실패했고 우리는 모두 기숙사를 나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혼한 지 5개월 만이었다. 남편이 나중에 다시 돌아가 직장생활을 할 곳에 집을 알아보았다. 한 달이내에 나가야했기에 시간도 비용도 부족했다. 대출 신청을 하고 나오는 시간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월세집을 찾아 다녔다. 운명의 장난이 이런걸까? 이사를 하러 전 날, 점검하러 가니 전에 살던 사람이 가구를 뺀 뒤켠으로

곰팡이가 벽을 타고 심하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방은 곰팡이가 심해서 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이사를 감행했다. 집주인은 다이소에서 붙이는 시트지를 사다가 붙이라고 주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고 더 이상은 해 줄 수 없다며 우리에게 책임을 물었다. 남편은 여름 내내 곰팡이 제거

작업을 했다. 이사에 바쁘던 5월을 보내고 내 몸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1일 이사를 하고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나왔다. 기뻐하기보다는 울었던 것 같다. 곰팡이 가득한

이 집에서 뱃 속의 아기를 어째야할까? 나는 기침과 두통에 시달렸고 집은 다른 건물의 그늘이 들어와 여름 한 낮에도 조명을 켜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몇 달 사이에 전세가가 너무 올라있어서 최고조를 달성했다. 그렇게

2주 가까이 집을 찾아다녔다. 스트레스는 임신 초기에 치명적이었지만, 마음은 늘 무거웠고 아기를 확인하러 갈 때만 안심할 수 있었다. 여름이었다. 속이 메스껍고 조금만 걸어도 배가 당겨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도 남편과 우리집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여러 곳을 누볐다.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본 집 중에 가장 나은 집을

고르려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9단지에 그래도 깨끗한 집이 있는데 보러 가시겠냐고. 우리는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살 집이구나 확신했다.

혼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비어있는 집이었다. 괜찮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날짜로 계약을 하고 곰팡이집 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다. 집주인은 이사 나가는 날(심지어 아침 일찍 이사라 물 쓸 일이 거의 없는데도)까지의 하루치 수도세까지 미리 셈하여 보증금을 깎고 돌려주었다.

그 외에 다른 말도 안 되는 비용들도 청구했다. 시비가 생길 것을 걱정해서 나는 밖에 있었다. 그리고 순한

남편은 조용히 나가고 싶다며 달라는 돈을 다 주고, 온전한 보증금을 받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세 달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결혼을 하고 세 번째 이사를 반년 만에 이뤄냈다. 배는 불러왔고 10층에서 적당히 보이는 바깥을 쳐다보며 남편과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아기가 이제 곧 나오겠구나 하면서 그 집에서는 별 일 없이 생활을 꾸려나갔다. 아이가 태어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며 재계약을 하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에, 더 큰 전세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가 원하는 집은 없었고, 저멀리 다른 동네에 남편이 괜찮은 집이

있다고 해서 보러 갔었다. 전에 살던 곳과 같이 복도식 아파트였고 양 옆집에는 어른신들이 살고 계셨다. 조용하고 채광이 더 잘 들어오는 집이었다. 이사를 하자고 결정했다. 집주인에게 여름 이사이니 봄부터 미리 연락을 했다. 그리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몰라 어린 아기를 데리고 매일 집을 청소했다. 여름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은 맨발로 집을 보러왔다.

막 걷기 시작하고 바닥에 떨어진 뭐든지 주워먹는 아기였기에 집에 손님이 다녀가면 닦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외출도 나가기 어려웠다. 집을 보러 온다고 하니까 마치 모델하우스를 사는 사람처럼 쓸고 닦았다. 여름이

되기까지 계약이 되려다가도 불발되었다. 계약이 되어서 나가면 좋지만 어쨌든 우리는 전세금을 돌려받아야 했기에 주인에게 정확히 의사를 전달했다.


주인은 태도가 달라졌다. 애기 엄마가 인상이 좋지 않아서 집보러 온 사람들이 계약하지 않았다고. 내 탓을 했다.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야 돈을 주는거지 이사 날짜를 왜 마음대로 정하냐고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집주인의 태도에 휘둘려서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화가 쏟아졌다. 너는 가장이라고! 어떻게든 그 돈을 받아내야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매몰차게 그를 코너로 몰았다. 이사를 하는

주였다. 주말에 이사를 해야 했지만 집주인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집주인의 딸과 집주인은 그 주 월요일부터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사를 무를 수도 기다릴 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다시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했다.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남편이 직장을 오가는 길에 들러 이사 나온 집을 치우고 또 치웠다. 마지막 이불짐을 혹시 몰라 두고 나왔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두 주 정도가 지나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수업을 빼고 중간에 가서 기다렸지만 주인은 한 시간이 넘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다 지적하기 위해서 새로 이사올 사람들과 함께 와서는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참을 뭉개며 시간을 삼켰다. 다행히 집을 깨끗이 청소해놨었기에 별 탈은 없었다. 돈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눈물이 났다. 그동안 자존심도 구기며 전전긍긍한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집주인 모녀가 너무 미워서 눈물이 났다. 그 일을 끝으로 우리는 지금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와서

우리는 청약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도 안 썼던 건 아니었지만 늘 떨어졌다. 남편이 이제 마지막 기회일거라고, 이게 떨어지면 지역을 옮겨서 쓰고 직장도 옮겨야 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본인이 바라는 방3개에 조금 큰 평수를 쓰고, 나는 방 2개에 작은 평수를 썼다. 남편의 것은 점수를 매겨 추첨하였고 내 것은 계약이 불발된 집을 추첨을 하는 프로세스였다.


발표가 있던 날, 나는 먼저 잠이 들었다. 아마 청약이 되었다면 남편은 나를 깨워서 기뻐했을 것을 알기에 그냥 잤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다가와도 남편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아 떨어졌구나. 우리집이 어딘가에는 있을거야. 라고 남편을 안아주며 위로했다. 실망한 그는 출근을 했고

몇 시간 후에 연락이 왔다.

자기야. ㅎ#ㅈ이라고 뜨는데 자기 이름 아닐까? 아이 낮잠을 재우느라 지쳤다가 잠들었던 나였기에 조금

짜증을 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와 있었다. 당첨이 되었다고. 17대 1의 경쟁율이었다. 대학도 예비

순번으로 갔던 내가, 동네 마트에서 하는 작은 휴지경품 한 롤 당첨되지 못하며 살아왔던 내가,

집이 당첨되었다. 남편은 너무 기뻐했다. 나는 사실 얼떨떨했다. 그래도 작은 집에 감사했다.

계약금을 보며 그 감사가 금방 줄어들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모델하우스에 가서 계약을 하고 집을 둘러보고 집에 넣을 것과 뺄 것을 골라냈다. 최대한 비용을

아끼고 나중에 이사를 가더라고 우리에게 손해가 덜 생길 방향으로 선택을 했다. 모델 하우스는 예쁘고 정교했다. 나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 평수에 그렇게 깔끔하고 단정하며 공간의 손실이 적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막상 계약을 하고 오니 남편은 아쉽다고 했다. 두 세번 보니, 집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욕심을 버려. 이제 당장 이사 안 다녀도 되고,

지금 사는 데서 몇 년만 지나면 집이 생기는 거니까 그만 욕심내자.


막상 새 집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모르겠다. 아이의 장난감 수납장도 책장도 사지 않은 채로

나는 지금을 버티고 있다. 식기도 더 늘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사용하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짧은 시간에 숱한 이사로 결론이 난 것은 짐은 적을 수록 좋다는 것. 살면서 버리고 비울 수 있다면 최고라는 것.

어설프게 꾸미느니, 아이가 어리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집을 방치하자. 새 집에 들어가서 제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나를 다독인다. 당근에 들어가서 가구를 보고 싶거나, 이케아에 가서 수납장을 사고 싶은 나를.

우리는 일정한 곳에서 일정 기간을 살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런데 다시 떠날 곳을 찾아야했기에 마음이 온전히 집 안에 머무르지 못했다. 장기 투숙자의 느낌이랄까. 언젠가는 다시 떠나야하니까, 조금 정들고 익숙해지면 가야하니까 지금 사는 곳에 마음을 푹 쏟아놓지 못하고 살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떠날 날이 정해졌고 당분간은 우리 가족의 마지막 이사가 될 것이니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지금 이 곳에서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열고, 자주 가는 곳에 정을 붙이며 지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에게 집이 생겨서 다행인 올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흘러가는 마음을 잠그지 않고 놓아둘 수 있는 올해라서 참 다행이었다.

'홈 스윗 홈'은 사실 장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건 허울일지도 모른다.

'리얼 홈 스윗 홈'은 그저 늘 안온하기를 꿈꾸는 내 마음 속 작은 집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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