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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랙 레이디 코트

가장 아끼는 나의 옷

by 여름

주제를 받고 생각해보았다. 푹 빠졌다, 관심이 있다 할 만한 무언가가 내게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답은 '없다'였다. 나는 그저 가정 주부이고 시간도 전보다는 더 생겨서 관심사가 늘어날 법도 하다. 하지만 요새 나에게 푹 빠질만큼 좋은 것은 없다. 10월을 지나오며 나는 어떤 무력감이 빠져있다. 그런데 그게 나아지지가 않아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을 해 보았다. 그러면 내가 아끼는 물건은 무엇일까?


나는 너무도 물욕에 충실한 사람이라 a라는 물건이 갖고 싶으면 대체품이 없다. 그 a를 손에 넣어야만 만족이 된다. 그래서 물건은 자주 산다기보다는 꼭 사고 싶은 물건을 내 형편에 좀 넘치다 싶어도 돈을 모아 사는 편이다. (명품정도의 레벨은 아닙니다 ㅎㅎ) 신혼 초기를 보내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들고나는 물건이 많았다. 옷도 꽤 많이 정리했고 나는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니 생활복 위주의 싼 옷만 사고 입어왔다. 그 와중에도 내가 아끼는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남편이 결혼을 하기 전에 사 준, 그 때 당시로 치면 우리에게 고가인 겨울 코트였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한정 수량으로 나오는 검은 코트. 페미닌한 디자인에 어깨가 약간 봉긋하고 팔 선은 한복의 저고리처럼 아래로 유연한 곡선이 있어서 예쁘다. 예물을 주고받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래도 뭐가 하나 갖고 싶었던 나. 그 코트가 오픈되자 마자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비싼데 꼭 갖고 싶다고. 코트는 약간 무거웠지만 결이 곱고 만지면 부드러워서 고급스러웠다. 그 때 같이 일했던 멋쟁이 분이 나에게 묻기도 했었다. 그걸 어디서 샀느냐고. 괜시리 좋아서 속으로 기뻐하며 대답을 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준비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받은 선물을 잠시 입고, 아기를 낳고 몸이 바뀌어서 걸어두었다. 이제 조금씩 몸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입을 수 있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입는 순간이 달라졌다. 내가 가장 기쁜 순간을 맞이하며 산 코트는 주로 장례식장에 방문할 때 입게 된다. 차분한 코트안에 검은 옷을 단정히 입고 인사를 간 일이 결혼 후에만 몇 차례가 된다. 전에는 내 기준에 좋은 옷을 입고 사진으로 남길만한 재밌는 추억을 만드는 것이 전부인 인생을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일에 좋은 옷을 입고 예를 갖추는 순간도 들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부고를 듣고 갈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내 주변 모두의 안녕을 바란다. 아끼는 옷을 입고, 보고싶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겨울길을 상상해본다. '무력한 나'를 '푹 빠진 나'로 바꿔주길 기대하면서.

내가 아끼는 검은 코트를 꼭 입고 가야지! 나 혼자 나를 일으킬 다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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