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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티라미수, 캐나다

흔들리던 나를 잡아준 단풍국

by 여름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3월 18일 아직 봄이 채 오지 않았던 쌀쌀한 봄의 문턱에 나는 캐나다로 갔다.

월급이 밀려서 돈이 없던 시절, 먼저 교사가 된 친구가 밀린 통신비와 캐나다 워홀 원서비를 주었다. 22만원. 그 돈을 가지고서 캐나다로 워홀을 떠날 준비를 했었다. 밀린 월급이 들어오면 갚겠노라고 친구와 엄마에게 돈을 좀 빌렸다. 돈이 다 채워지고 한국에서의 무거움을 달래려 비행기에 탔다.


낯선 곳을 극도로 두려워하던 나였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역만리 하루만에 돌아올 수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일은 내 인생에 가장 큰 결심이었다. 타국에서 누구나 그렇듯 고생을 했다. 첫 홈스테이에서 잘 지내다 다음에는 옆 지역으로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는데 주인은 한 달 노티스를 줄 테니 나가달라고 했다. 당장 옮길 것도 싸운 것도 그 집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여느 날처럼 점심을 먹고 차 한잔 마시던 그런 평화로운 오후였었다.

나는 이제 막 피시앤칩스 가게에 취직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불안정한 외국인 노동자였다. 앞이 캄캄했지만, 집주인이 나가라 한 이상 방법이 없었다.


발품을 팔아 구한 집은 그 집에서 아주 먼 제인 앤 핀치의 한 길거리의 집이었다. 지하부터 2층까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살게 되었다. 다시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일을 구했다. 에글링턴 역 안에 세컨컵이라는 커피숍에 취직했다.

혼나는 게 일이었다. 영어가 부족하다고, 웃지 않는다고, 손이 느리다고...이유만 붙었다하면 혼났다. 매일 울면서 잠드는 게 일상이 되었고 백인은 한 사람도 없던 블루나이트 버스를 타고 오가던 카페만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지하철이 열리기 전 새벽에 들어가 낮 12시에 쨍한 햇볕을 받고 퇴근했다. 매일같이 손님과 매니저에게 탈탈 털리고, 종이컵에 담긴 동전 팁을 짤랑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면 새벽에 보지 못했던 집 뒤의 푸르른 공원,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하루를 이제야 살아내는 사람들의 활기가 내게 덮쳤다. 그러면 밖으로 나갔다.


스몰토크를 잘 하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면 그가 누구든 그 날의 친구가 됐고 나만의 일대일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생기 넘치는 공원을 뒤로하고 벤치에 앉아 매일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어스름이 지면 아이들이 야구복을 입고 엄마 아빠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시작했다. 생동감있고 사랑과 격려가 가득했던 시간... 그 시간이 매일 매일 소진된 나를 채워주었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스몰톡을 걸어주던 사람들덕에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행복하고 에너지 넘치던 아이들의 야구는, 다음 날의 나에게, 다시 캄캄한 새벽을 뚫고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다시 돌아온 후 몇 년 간 봄만 되면 코 끝이 시리게 그립던 캐나다. 지금은 언제나 다시 가볼까 싶게 꿈결같이 먼 일 같다. 나에게 달고 시고 짜고 맵던 모든 맛을 안겨준 그 봄과 여름의 캐나다 ! 살면서 어두운 기억이 몰려올 때 마다 나를 건져낸다. 너는 그 멀리서도 혼자 먹고 자고 돈도 벌던 사람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의 뜻은 '나를 들어올려줘' 이다. 그 때의 내게 유일한 티라미수는 바로 '캐나다'였던가보다. 지난 추억에서 걸어나와 언제 누구와 다시 그 공원에 앉아볼 수 있을까? 글을 마치며 살며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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