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126부터 130까지

by 여름

126.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에게서

누군가의 흔적을 느낄 때가 있다.


큰 눈망울로 눈썹을 움직이며

코를 한번씩 킁 훌쩍이는 버릇

조근조근하며 설명하는 말투

진찰 결과를 이야기하는 의사선생님에게서


말끝을 올리며 친절하게

그랬구나 하며 다독이는 표현

따뜻하게 스치는 손

수건을 정리하는 물리치료사에게서


고맙습니다 라고

약간 무서운듯한 외모에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

엘리베이터 옆자리 환자에게서


나를 닮은 사람이

세상에 꼭 한 사람있다는 말은

너를 닮은 사람이

세상 곳곳에서 나를 스치는 걸 보면

맞을지도 몰라.


127.

너무 사랑해서 아픈 줄 알고

조금 덜 사랑하기도 해 봤는데



그냥...

사랑. 이라는 말이 시작되면

아픈거였다.

그 크기에 관계없이


128.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올 때

남자인 것 같아 싶으면

남자 목소리가 난다.


여자일 것 같네 싶으면

여자 목소리가 난다.



인생에도 이런 예감이 톡 터지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야 하면 꼬옥 안아주고

동정이네 하면 정말 멈춰서고

행복이야 하면 실컷 웃으며

떠나야해 하면 맘껏 울 수 있게.


129.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단지 그것을 사탕 까먹기 같이 푸는지

생전 처음보는 수학 문제처럼 푸는지

방식의 차이란게 있을 뿐이다.


130.

놀랄 때가 있어요.

생각보다 내가 너무 예쁘게 웃는 사람이란 걸 알았을 때


놀랄 때가 있어요.

생각보다 내가 너무 작은 일에 심술 궂어 진다는 걸 느낄 때


놀랄 때가 있어요.

생각보다 내가 큰 일을 잘 견디어 가는 굳은 사람인 걸 마주할 때


때는 늘 잠시지만

그 때가 모여 오늘 내가 되는 걸 보니 나도 오늘만은 참 괜찮은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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