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241부터 245까지

by 여름

241.

그 길을 막상 걸을 때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서

앉아서 울고

서서도 한숨쉬고

발걸음을 멈추기 일쑤였는데


막상 그 구간을 벗어나

걸어온 자국의 모양새를

더듬어보면,


내가 좀 더 나은 길을

걸어오고 있었구나

하고 문득 알게 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게도

걷는 중에는 안 보인다.

땅만 보고 발만 움직이는

로보트같은 일상 때문에

걷는 중에는 보일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걷고 또 걸어서

뒤돌아 볼 쯤 거리가 생기면

찬찬히 보게되고

느즈막히 알게된다


내 발끝을 따라온 그 토막들이

남들 보여줄 만한 꽃길은 아니어도

자갈이 빠지고 웅덩이가 말라가는

그냥 시골길 정도는 된다는 걸


그러니

잘 걸어가면 좋겠다.

당장 뛸 순 없어도

누구나 끝까지 걸을 수는 있으니까


242.

살아보니 별 것 없다.

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조금도 알아낼 수 없는 나이이지만


늘 사람들에 둘려싸여

돈벌이를 하다보면

인생이라는 길고도 한편으로 찰나같은 길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헤어지고

사람이 좋아지고 싫어지는


아주 단순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어른이나 아이나

각자의 길에서 서로를 비벼대는데


손바닥을 비비면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될지

그 바닥 너머 체온으로 언 얼굴을 녹일지

언제나 알 수가 없어서 두 손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243.

사람들이 감동하고

사람들이 화가나는

포인트는 동일하다.


"내가 뭐라고...."


244.

사연있는 사람 좋아했어요.

왠지 슬퍼보이고

뭔가 있어보이고


걔 옆에 있으면

그 사연이 흘러서

나도 막 주인공이 될 것 같고


근데 이젠

사연있어 하고 읊어대는 애들 보면 우선 물러서요.

저 사연에 내 사연까지 물타기하면

세상에서 제일 청승맞은 인연이 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괜찮던데요.

처음에는 뭐야 왜 이렇게 슴슴해

라면서 재미가 없다가


한 번 두 번

차 마시는 쿠폰이 쌓이는 걸 모르고

만나지다가

사연 없이도 그 사람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그러니 잘 알아둬요.

너무 기대고 싶다고

너무 안쓰러운 척 하다간

커피 한잔 홀짝일 사람도 하나 안 남을테니까요.


245.

남의 행복을 물어볼 때에


혹시나 내가 조용히

그 사람에게 떨어져있던 시간 가운데


예상치도 못한 불행이

그 사람곁에서 맴돌다가

그 사람 속으로 훅 들어가


내 순수한 질문이

본의 아니게 상처가 될까봐


남의 행복을

세세히 물어보지 못할 때가 많다.


자세하고 만져지며

색깔로 선명하게 보이던 행복을


그래서 이렇게 물어볼 때가 많다.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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