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부터 260까지
256.
술취한 전화는 너무 매너가 없고
찌질한 감성으로 뭉개보려 한다고
생각하던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젊은 날의
고백이 아닐지라도
조금은 진지하게 귀를 쫑긋할 날도
있어야하기 마련이다.
지구에 어느 한 사람이
소주 세 병을 마시고
안 취했다고 하면서
지난 말을 하고 또 하고
내가 답해준 말을 또 물어도
참아주는 마법같은 인내가 필요한 날도 있다.
결국에
사실 힘들어 나 사실 힘들죠 힘들어요.
그 몇 글자가 툭 터져 나오면
소주에 절어버린 사람이 먼저
잘자라고 이야기할테니까.
뜨거운 귓볼 곁으로
따갑게 달궈진 볼 옆으로
그 말이 새어나올 때까지만
잠잠히 있자 생각한다.
257.
기왕이면
놀이공원같은 설레임 같은 건
이미 지나간 김에
더이상
풋풋하지도 못할 바에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될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58.
그건 내가 아닌데
그걸 나라고 생각해놓고
나더러
어? 왜 당신은 그렇지 않은 거죠?
라고 물으면
나는 차마
당신 참 제멋대로네요
할 수는 없으니까
조금 물러 서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요.
내가 바라는 나도 되기 힘들고
엄마 소망했던 고운 사람도
더이상 아닌 마당에
당신이 말하는 그런 나는
정말로 피곤하네요.
어디, 가서 찾아봐요.
행운을 빌어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사람
적어도 나는 아니니까요.
259.
소맥을 말면
어디서부터 소주이고
어디서부터 맥주인지
대단한 스냅으로 술을 마는 사람도
시원한 목넘김으로 그걸 넘기는 이도
구별할 수가 없다던데
하물며
인생이 말리면
그게 어느 지점부터 내가 꼬은건지
니가 나에게 다가와 꼬득인건지
알 수가 있더냐
어쩌면
모질게 끊어내지도 못 할 거
죄다 섞여서
너나 나나
맥주나 소주나
뒤엉켜 있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
260.
나는 따뜻한 구석,이 있는
정도의 사람이지만
누군가 내게 물었을 때
그 사람은 그냥 따뜻해
그런 상투적인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따뜻하다는 말은
가장 상투적이지만
너무 갖기 어려운 난도의
품격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