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Jul 24. 2020

어묵국수 한 그릇을 말아주는 마음

육수를 내고, 국수를 삶고, 토렴을 하여 내어 지는 국수 한 그릇


'토렴'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아마 국수나 국밥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단어이거나 혹은 토렴을 하는 장면을 보면 '아 !' 하고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바로 국밥이나 국수가 담긴 뚝배기나 그릇에 육수를 여러 번 부었다 뺐다가 하는 행위예요. 육수의 온기가 밥이나 국수에 스며듦과 동시에 딱 먹기 좋게 어우러지게 되는 과정이죠.

어쩌면 참 간단해 보이는 행위이지만, 바쁜 업장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해요.

이 번거로운 과정을 왜 하나 싶지만, 토렴한 국밥과 그렇지 않은 국밥을 먹어보면 저절로 그 과정이 얼마나 이 음식에서 중요한 과정인지 알게 돼요. 입에 닿는 그 첫 한술부터 정말 달라지거든요.

*토렴 :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어제 한국에는 비가 꽤 많이 내린다는 소식과 함께 조금은 무거운 소식을 전달받았어요. 꽤 오래전에 뵈었던 저의 첫째 큰이모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어요. 어머니는 비를 뚫고 고속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시는 중이었고, 빗소리와 찻소리가 깔린 그 소음 속에 엄마의 목소리는 먹먹함이 가득했어요. 1분이 채 안 되는 엄마와의 통화를 마치고 유난히 해가 쨍쨍한 호주의 겨울날을 바라보는데 그제야 한 번 더 깨달았죠.


나는 정말 타지에 살고 있구나. 


그렇게 달려갔음에도 임종 10분 뒤에야 도착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도, 그래도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떠나신 외할머니의 마지막 길도 생각나서 하염없이 그저 식탁에 앉아있었어요. 마지막이 마지막인지 모르고 지났던 그 날들의 기억. 그리고 큰이모와의 마지막 기억은 외할머니 집의 나무문과 문풍지 틈 어디쯤 남아있을까- 싶으면서요.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저녁 식사를 위해서 냉장고에 남아있던 야채 남은 것들을 꺼냈어요.

파 줄기 남은 것, 약간 마른 호박 꽁다리 부분, 살짝 무르기 직전인 양파, 모아둔 샐러리 밑동이 같은 것들이요.

거기에 불려둔 다시마 물을 붓고, 마른 표고버섯과 고추와 무 한 조각도 크게 썰어 넣고, 그렇게 육수를 한참 끓였어요. 비 오는 한국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어묵국을 끓이려고요. 한국음식은 무엇하나 버릴 구석 없이 재료를 알뜰하게 참 잘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상태가 좋지 않은 양파, 살짝 마른 호박 꼬랑지, 남은 무 한 덩이.... 정말 버릴게 하나도 없는 한국 음식. 
어묵국을 끓인 뒤, 집에 있던 청경채 한 묶음을 국에 남은 열기로 익혀줍니다.
어묵국수 완성입니다.


어묵국수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잘 씻고, 토렴하려고 어묵국을 한 번 더 끓이는데 고랑이가 집에 돌아왔어요. 한국음식에 워낙 관심이 많은 고랑이에게 위에서 말한 '토렴'에 대해서 설명할 겸 그리고 한국에서 받은 조금 무거운 소식을 꺼낼 겸 아껴두었던 술 한잔을 꺼내며 말을 꺼냈어요. 사실, 고랑이도 몇 해 전 이곳에서 가장 바쁜 시기에 어머니를 보내드렸거든요. 그 당시, 그에겐 잠도 줄여가며 일해야 할 만큼 하루에 16시간~18시간 가까이 일하는 바쁜 시기였고,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어머니가 계시던 프랑스로 갈 수는 없는 터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는 30분 뒤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모습을 저는 지켜봐야만 했었고요.


제가 담담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괜스레 그에게 너무 힘들었던 시간을 제가 떠올리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마음에 국수를 담아서 건네주고는 함께 저녁 식사를 했어요. 숨만 죽은 채 아삭함이 아직 고대로 남아있는 청경채와 깔끔하지만 깊은 육수 맛이 나는 어묵국. 그리고 토렴하면서 온기가 그대로 퍼져있지만 여전히 쫄깃한 소면 면발. 잘 우러나온 어묵 국물 한 숟갈에 매콤하게 올린 양념장에 어묵 한 조각을 국수 한 입과 함께 푹-담가 먹기 시작해봅니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오늘 같은 날, 말 한마디보다 그저 어묵 국수 한 그릇 말아서 놔주면 참 보기 좋게 잘 먹어줄 사람들이 자꾸 떠올라서 혼났네요.


그저 어묵 국수 한 그릇 말아서 놔주고 싶은 마음. 딱 그 마음 같은 날이 바로 오늘인 것 같아요.



이전 10화 '코리안 스시' 아니고 '김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