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Oct 20. 2020

'코리안 스시' 아니고 '김밥'

호주에 온 첫 주, 학교 수업 중 알게 된 일본인 친구와 저녁 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어요.

친구는 귀여운 당시 8살, 6살짜리 남자아이 둘을 둔 엄마였고, 세상에 모든 이들이 늘 고민하듯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친구가 저녁 메뉴로 스시을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유자마카롱: 세상에 스시를 집에서 만든다고? 와 너 정말 대단하구나!
일본인 친구 : 간단히 먹기에는 그만한 게 없어. 애들도 좋아하고.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세상에.... 음식 솜씨 좋은 일본인들은 집에서 스시를 '간단하게' 만드나 보다. 대단하다..."


제가 상상했던 스시의 장면입니다...


'스시' 사러 가자

그리고 며칠 뒤, 같이 살던 친구가 '스시 사러 가자'는 말을 하더라고요.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어서 배가 고팠던 터라 저는 흔쾌히 오케이를 하고 친구를 따라나섰어요. 제 머릿속에는 온통 도톰한 연어와 고소한 참치 대뱃살, 부드러우면서도 입에 착 붙는 장어, 꼬득꼬득한 광어를 와사비 장에 콕 찍어서 한입에 쏙 넣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배고픔을 잘 견디며 걸어갔어요.

 

그렇게 20여 분 걸어서 도착한 곳에는 스시는 없고, 웬 손 반 뼘 크기만 한 마치 나무토막 같은 롤이 주르륵 늘어서 있더라고요. 딱 봐도 질겨 보이는 김에, 밥이 한 70프로, 연어의 도톰하고도 반짝거리는 살결과 지방질은 볼 수 없는 연어살 뭉텅이 하나 혹은 아보카도 한 슬라이스가 들거나 혹은 튀김 새우 같은 것들이 딱 하나쯤 들어가 있는 롤들. 심지어 오이를 김밥에 들어가는 단무지 마냥 두서너 줄 길게 썰어 속을 채운 롤들도 있었어요.

대략 이런 모양인데 훨씬 더 두껍고 엄청나게 긴 나무토막 같았어요...


그나마 아주 얇게 연어를 올린 제가 생각한 스시 비슷끄무리한 게 있어서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사 먹었어요. 아니... 만원 정도 가격에 '연어 한 마리가 꼬리로 밥을 스치고 지나가도 이거보다는 낫겠다.' 싶은 연어살과 뻑뻑하기 그지없는 밥. 호주도 커다란 섬나라인데 그 많은 맛있는 해산물들은 어디에 있나 싶어 앞으로의 호주에서의 미식 생활을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몇 년 살다 보니, 나무토막 같은 스시라도 사 먹을 만한 가게들도 알게 되고, 때로는 아주 큰 맘먹고 고랑이와 데이트를 하며 정통 일식집에 가서 스시 쉐프가 눈앞에서 만들어주는 '스시 니기리'를 메뉴와 찰떡궁합인 사케 한 잔과 함께 먹기도 했으니, 그래도 타지에서 돈 벌어서 이 정도 음식 사 먹을 정도이면, 나름 '이민자'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했어요.

호주 생활 중, 제가 먹은 스시 중 가장 비샀지만 맛있었던 스시. 입에 아주 감칠맛이...


스시 아니고 김밥


친구 M: 미안한데 우리 애들 좀 몇 시간만 봐줄 수 있어? 급한 일이라 나가봐야 하는데 애들 봐주던 사람이 휴가를 갔어.
유자마카롱: 편할 때 언제든 와. 나 오늘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을 거야 .

얼마 전, 친구 M이 다급한 목소리로 저에게 전화 했어요. 두 10대 호주 아이들. 가끔 M과 만나서 커피 마시곤 할 때 옆에서 와플이나 머핀을 아기새 마냥 받아먹는 모습 정도를 봤었는데 참 아이들은 금방 크는 것 같아요. 한 30분 뒤, 두 아이는 조금 어색한 모습으로 저희 집에 도착했고 저는 간단히 이곳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스킷 4조각과 우유 한 컵씩을 준비해서 식탁에 놓아주었어요. 혹시나 아이들이 불편해할까 봐 방에 10분 정도 있다 나오니, 깨끗하게 비운 접시가 식탁에 있고, 두 아이들은 저희 집 맥주와 소주(고양이들)와 함께 사진을 찍고 놀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점심때가 훨씬 지나고, 저녁때가 가까워질 때쯤, 친구가 온다고 약속했던 시간쯤 두어 시간 정도 더 걸릴 거 같다는 메시지가 옵니다.

후다닥 싸 먹기에는 최고인 김밥!


M: 미안해. 생각보다 너무 늦게 끝날 거 같아.
유자마카롱: 애들 혹시 다이어터리(Dietary; 식이제한)나 못 먹는 음식 있어? 나 어차피 저녁 먹을 시간이라 내 것 할 겸 간단하게 애들 먹일게
M: 아니, 그런 거 없어. 전반적으로 다 잘 먹어. 진짜 고마워...
유자 마카롱: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출퇴근 시간이라 차 막히는 거 아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와.

애들 좋아할 만한 음식이 뭐가 있나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 세일을 하는 참치 통조림도 넉넉히 있고, 여러 가지 야채도 있고... 냉장고를 들여다보다가 전에 친구가 '아이들이랑 스시 사러 간다.' 고 했던 말이 기억났어요.

편식하는 애들도 야채를 먹게 하는 메뉴가 김밥이니 참치김밥을 하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참치김밥


일단 밥물을 올려서 준비하는 동안, 당근을 채칼로 갈아준 뒤, 계란 물에 섞어서 두툼하게 부쳐준 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썰어 둡니다. 참치는 기름을 삼분의 2 정도 빼준 뒤, 후추와 마요네즈를 섞어서 준비해주고, 깻잎을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제거해주고 꼭지 부분을 정리해줍니다. 집에 있던 스틱 치즈와 크래미도 먹고 좋은 크기로 준비해줍니다. 보통 오이를 돌려 깎기를 해서 채를 썰어서 넣어주지만, 오늘은 오이가 없는 관계로 샐러리를 잘게 채 썰어서 준비합니다.


아, 아스파라거스가 남은 게 있는 걸 깜박했어요. 아이들이 먹을 거니까 연한 윗부분만 살짝 소금물에 데친 뒤, 뭔가 알록달록한 색을 넣고 싶어서 제가 좋아하는 노란 파프리카도 조금 썰어봤어요. 이왕 이렇게 노동을 한 거, 한 줄을 제가 먹고 싶은 입맛대로 먹고 싶어서 매운 고추를 촘촘하게 썰어서 따로 준비해두고, 김까지 꺼내면 그 사이에 밥이 맛있게 완성이 되었어요. 밥을 참기름과 소금, 깨로 간을 해준 뒤 밥알이 뭉치지 않게 살살, 한 김을 빼주면 김밥을 할 준비가 끝납니다.

호일에 싸인 김밥은 왜 이렇게 정겨울까요.


누드김밥으로 두 줄을 싸고, 일반 김밥 모양으로 두 줄을 싸서 참기름을 김 부분에 잘 발라 준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줍니다. 제가 워낙 꼬투리 부분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먹다가 불편할 거 같아서 가장 예쁜 조각만 골라서 두 접시를 만든 뒤, 따로 제가 먹을 땡초 김밥을 마지막으로 잘라줍니다. 꼬투리 부분만 살짝 먹었는데도 혀가 알알해지면서 '이 맛에 김밥을 집에서 해 먹지' 하며 혼자 웃어보았어요. 그리고, 저희 집 '김밥 귀신' 고랑이를 위해서 혹시 몰라 또 남은 참치와 고추를 듬뿍 넣어서 한 줄 또 준비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호주 새들이 그려진 플레이트 매트를 두 장을 테이블에 깔아준 뒤, 김밥 한 접시와 물 한 컵을 놓아줍니다. 한창 게임 중인 아이들에게 손 씻은 뒤 편하게 먹고 싶을 때 먹으라고 말하고는 저는 제 방에서 오물오물 땡초 김밥을 먹으며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한국 드라마 '청춘기록'을 보았어요.


드라마 촬영지가 제가 자취했던 동네 골목들 근처이더라고요. '맞아 맞아. 저기 저 편의점에서 라면이랑 매콤한 삼각김밥 사 먹고 집까지 걸어갔는데.' , '저 정류장에서 15분만 걸어가면, 오징어 땡초 김밥과 멸추김밥 진짜 맛있었는데...' ' 저 굴다리 지나면 부침개에 막걸리랑 닭갈비 먹으러 다녔던 거 생각난다.' 하며 제 청춘 기록이자 청춘 먹방의 기록들을 짚어보았어요.


"내가 했지만 맛있네. 그런데 애들이 잘 먹었으면 좋겠다... 양이 많아서 혹시 남기려나?"


스시 잘 먹었어


한 20분 뒤, 방에서 나오니 밥 한 톨도 남김없이 깨끗한 두 접시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두 아이 모두, '고마워. 스시 잘 먹었어' 라고 저에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잘 먹었다고 웃는 얼굴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건 스시가 아니고, 김밥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괜히 한국인 꼰대 같을까 봐 굳이 말하지 않고는 조용히 그릇을 치웠어요. 그렇게 아이들과 티브이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친구가 저희 집에 도착하여 아이들에게 데려갔고, 저는 손을 흔들며 가는 길을 배웅했어요.


그렇게 친구와 아이들을 배웅하고 1시간 뒤쯤, 늦은 퇴근을 한 고랑이가 집에 들어오더니 먹을 게 있냐고 물어보네요.

유자 마카롱: 오늘 M네 애들이 와서 김밥 해놓은 거 남은 거 있어.

고랑이: 오오! 김밥! 김밥 주세요! M네 애들 진짜 운이 좋네. 네가 만든 김밥 진짜 맛있는데! 좋아했다.

유자마카롱: 응응. 다행히 깨끗하게 다 먹고 잘 먹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스시' 잘 먹었다고 해서 '이거 스시아니고 한국음식 김밥이야.'라고 하고 싶었는데 애들이라 굳이 안 그랬어.

고랑이: 괜찮아. 내가 이제 '코리안 스시'라고 말 안 하고, '김밥' 주세요 라고 너한테 말하잖아.


그렇게 고랑이는 오물오물 김밥을 몇 개 집어 먹으며, 오늘 저녁은 반만 먹을 테니 나머지 반은 내일 점심에 계란물 무쳐서 구운 김밥을 해달라고하더라고요. 근데 다들 아시죠? 김밥에 남는 반이라는 건 없잖아요. 결국 그  날 고랑이는 냉장고에 있는 김치까지 올려서 그날 저녁, 김밥을 다 먹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친구가 전화합니다.


M: 애들이 네가 만든 스시 진짜 최고로 맛있었다고 또 먹고 싶데. 특히 작은애가 계속 졸라. 얘 입이 워낙 까탈스러워서 뭐 더 먹고 싶다는 말을 잘 안 하거든. 어디서 살 수 있어?

유자마카롱: 애들이 좋아한다니 기분 좋다~참, 그 음식 이름은 '김밥'이고, 한국 음식이야. 인터넷에 'Kimbap'이라고 치면 레시피가 나올 거야.

M: 오케이. 킴팝(Kimbap)

유자마카롱: 응응 맞아. 스시 아니고 김밥. 그리고, 김밥 먹고 싶을 때 언제든 우리 집에 와. 내가 해줄게.


*내용의 편의상 '스시(Sushi)'라는 표현을 그대로 살려서 표기했습니다.












이전 09화 마을버스 정류장 앞, 시장표 왕만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