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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Sep 07. 2020

마을버스 정류장 앞,
시장표 왕만두

1년-1년 반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이지 '한국 오면 뭐 먹고 싶니?'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 거 같아요. 다행히 제가 사는 호주는 그래도 큰 도시에 가면 한국음식점들도 있고, 기본적인 한국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이지만, 그래도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오랜만에 고향 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먹고 싶은 한국음식 리스트를 빼곡하게 적는 사람들은 또 한국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정말이지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는 순간부터, 행복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번에 한국 가면 뭐 먹지?'


그렇게 시작되는 한국행 먹방 투어에 정점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비싸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음식이 아닌, 생각보다 가까운 음식들을 대는 사람들이 많아요. 쌀떡 밀떡에 갓 튀긴 못난이, 야끼만두를 가위로 한입 크기로 잘라 국물 가득 찍어 먹는 떡볶이, 그 바로 옆 고단한 몸을 풀어줄 듯한 어묵 국물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통한 순대, 튀김가루 막 뿌려서 먹는 포장마차 가락국수, 기름 냄새로 근처만 가도 행복한 찹쌀 도너츠, 그리고 마을 버스정류장 앞 옥수수 파시는 아줌마 옆에 줄 서서 기다리는 시장표 왕만두 같은. 바로 그런 행복한 음식들이요.

늘 한국 갈 때마다, 먹고 싶은 거 한상 차려주고 좋은 데는 다 데려가 주는 제 친구들.


며칠 전, 집에 냉장고를 정리했어요. 남은 샐러리와 사과는 주스로 갈아 마시고, 끝이 조금 마른 당근과 양배추는 피클을 만들어 두고, 남은 야채와 냉동실에 있던 고기와 빨리 써야 하는 새우를 보다가 고민을 해봅니다. 고랑이의 도시락도 싸야 하는 터라 일단 파와 고추를 송송 썰어서 파, 고추기름을 내었어요. 슬슬 기름 향이 올라오면, 양파와 마늘과 함께 잘 다져둔 뒤 소금, 후추, 맛술로 간은 해둔 돼지고기 한 덩이를 같이 볶아줍니다. 불을 세게 올려서 간장과 굴 소스를 휙 눌러주듯 냄비 끄트머리로 넣어준 뒤 적당히 식감 좋게 숭덩숭덩 썰어둔 새우를 아주 센 불에 짧은 시간에 적당히 익을 정도로만 볶아줍니다. 다 볶아지면 3분의 1은 냉장고에 있던 찬밥을 휙 볶으며 다시 간을 맞춰서 볶음밥을 하고, 3분의 2는 새우만두를 하기 위한 속으로 실온에서 식혀 둡니다.

 

새우살이 고대로 씹히는 새우만두 속 완성입니다.

집에서 1주일에 두 번 정도 빵을 만드는 터라 빨리 써야 하는 생 이스트도 있고, 비 오는 날 시장 가면 꼭 줄 서서 사 먹던 시장표 만두가 요즘 따라 너무 생각이 나서 생 이스트를 넣은 만두피를 만들기로 했어요. 드라이 이스트도 좋지만, 생 이스트로 발효하면 그 구수한 향이 만두피에 고스란히 담겨 만두의 맛이 확 올라가거든요. 여기도 비가 오고 축축 늘어지는 터라, 비 오는 날 김이 모락모락 나오자마자 손에 받아 들었던 왕만두 하나만 먹으면 힘이 날 거 같더라고요. 처음 해보는 시장표 왕만두 도전, 잘 될까요?

1차 발효를 하고 나서 2차 발효를 기다리는 만두피 반죽.
처음 해보는데 쭉쭉 늘어나면서 오무리는 재미가 있어요.

저희 집 소주와 맥주(고양이들)가 제 요리 조수 1, 2 역할을 하면서도 호시탐탐 만두소를 먹으려고 노리는 동안 조금 어설프지만 빠르게 만두를 오므려서 만들고, 저는 솥에 물을 끓이고 은색 찜기 삼발이를  올려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려 봅니다.


마을버스 정거장 옆 시장 귀퉁이 왕만두 집


비를 맞으며 초록색 03번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시장 골목에 그 냄새에 이끌려 향하는 만둣집을 생각해봅니다. 얇고 촉촉한 피에 알싸한 매콤한 김치 향에 계속 먹게 되는 김치만두, 남동생이 유난히 좋아하는 고기로 속이 꽉 차서 육즙이 터지기 직전인 고기만두, 오동통한 새우 한 마리가 다 들어가 입으로 뚝- 새우 꼬리를 끊으면서 마지막 한 입을 먹으면 행복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새우만두, 그리고 시원한 우유 한 잔과 먹으면 딱 인, 달큼하고 촉촉한 찐빵까지. 킁킁거리며 한참을 기다렸다가 만둣집 아저씨가 만두 찜기 하나하나를 열 때마다 속으로는 탄성이 나오고, 하얀 스티로폼 만두 팩에 차곡차곡 담겨서 노오란 고무줄로 팅- 소리와 함께 묶여서 간장과 단무지와 함께 건네지는 까만 플라스틱 봉지. 그리고 '젓가락 몇 개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며 건네지는 그 온기와 냄새. 비 오는 날은 음식의 냄새는 고스란히 위를 통해 뱃속을 타고 깊이 들어갑니다.

만두가 성공적으로 완성입니다. 사 먹는 기분도 그립고, 바닥에 들러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 종이 포일
맛있어 보이나요?
얼른 손 깨끗이 씻고 와. 왕만두 먹자.

몇 분 기다리다 보니, 집 창틀에 하얗게 수증기가 끼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곧 만두가 다 쪄질 것 같아서 왕만두를 가장 맛있게 먹게 도와줄,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참기름을 섞은 양념장을 준비해줍니다. 냄비 뚜껑을 여니, 비 오는 날 시장에서 나는 그 냄새가 펼쳐집니다. 호호 불어가며, 집게로 잘 익은 왕만두를 꺼낸 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두를 손으로 반을 갈라봅니다. 만두는 손으로 한 번 더 먹는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시간을 들여 만든 만두피가 결결이 찢어지면서, 촉촉함이 고대로 전해집니다. 잘 익은 만두소가 육즙 가득 만두피에 잘 스며들어 있습니다."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보며 양념장을 푹 찍어서 한 입을 먹어봅니다. 간 볼 겸 큰 거 하나 정도 먹을까 했는데, 자꾸 손이 가서 세 개나 먹고 말았어요. 오물거리며 한 입 두 입 먹는 동안,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퇴근길에 한두 봉지 들려 보내고 싶고, 요즘 통 입맛이 없다고 전화 통화할 때마다 잘 안 드시는 엄마 생각에 마음이 자꾸 짠해집니다. 이런 음식은 나눠 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괜스레 마음이 찡해져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중, 퇴근 후 돌아온 고랑이가 비를 털며 들어옵니다.

"얼른 손 깨끗이 씻고 와. 왕만두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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