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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Sep 21. 2020

가지가지, 가지밥

가지-가지: 이런저런 여러 가지 (국립 국어원)

어른이 되어서야 좋아하게 된 음식들이 있으신가요?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지만, 많은 분이 '가지'를 예를 들곤 하시더라고요. 물컹물컹한 식감과 익히면 그 예쁜 보라색이 사라지면서 회갈색으로까지 변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새송이버섯과 빨간 파프리카와 양파, 가지, 부추를 굴 소스를 넣고 볶아주시면 다른 것 필요 없이 그것만 먹어도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양푼 비빔밥을 만드는 날이 있었는데, 엄마표 가지볶음은 정말 친구들도 다들 손으로 한 입씩 집어 먹다가 비빔밥에 넣지 못한 적이 있었어요.


나이가 들어가고, 제 손으로 밥을 해 먹기 시작하니 그 매력이 끝이 없는 재료가 또 가지이더라고요. 매콤한 소스에 어향가지, 가지를 연필 깎듯 뭉뚱뭉뚱하게 썰어 기름에 튀겨, 깐풍기 같은 소스에 버무려진 가지 튀김 무침, 그리고 엄마 식으로 만든 각종 야채를 넣고 달달 볶아서 굴 소스와 불맛으로 마무리하는 밥도둑 가지볶음, 그리고 찜기에 잘 쪄서 들기름과 들깻가루를 넣고 팍팍 무친 가지무침, 된장 소스를 발라서 구우면 그 향이 집 현관문부터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문을 열게 되는 가지 구이까지. 그리고, 날이 더워지면서 통통한 가지가 그 보랏빛이 더 반짝반짝 여름의 색으로 꽉 차오르는 가지를 한 바가지를 넓적하게 썰어서 양념장만 있으면 딱 인 가지 밥을 깜박하면 빼먹을 뻔했네요. 그래서 오늘은 집에 남아있던 가지와 돈가스를 만들고 남은 돼지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가지 밥을 만들어봅니다.


가지를 잘 볶아줍니다. 


잘 볶아진 가지볶음을 쌀 위에 고루 올려주면 준비가 끝납니다.
가지밥

잘 볶아진 가지를 불린 쌀 위에 올려줍니다.

잘 볶아진 가지를 그동안 불린 쌀 위에 포근포근하게 양껏 얹어줍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가지 볶은 것 반, 쌀 반을 넣어서 밥을 짓게 되었네요. 쌀을 불리기도 했고, 가지볶음에서 나오는 육수가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밥물을 적게 잡고 밥을 해봅니다. 슬슬 밥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약불에서 서서히 익혀주며 뜸까지 들여주면 가지 밥 완성입니다. 이제 뜸 들이는 동안 양념장을 매콤하게 만들어서 간단하지만 알차게 한 상을 준비해봅니다.

가지 밥만큼은 집에 있는 나무주걱으로 푹 퍼서 맛을 봅니다.


계란 장조림 하나를 올려봅니다.
들깻가루 주세요.라고 말하는 고랑이.

한국의 여름이, 할머니 집에 쓰르라미 매미 소리가 귀에서 나는 것 같아서 먹는 내내 웃어봅니다. 다음에는 혹시 녹두를 구할 수 있다면, 녹두를 넣어서 가지 밥을 한번 해볼까 싶어요. 아주 예전에 친구네 어머니가 하는 가게에서 해주신, 그 맛이 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가지로 하는 음식은 가지가지이지만, 여름이 다 가기 전에는 가지 밥이죠. 뭐니 뭐니 해도-

양념장까지 올려서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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