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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Oct 14. 2020

부대낄 때 부대끼며 먹는 부대찌개

부대끼다 (출처: 표준대국어사전)
1. 사람이나 일에 시달려 크게 괴로움을 겪다.
1. 여러 사람과 만나거나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을 접촉하다.
2. 다른 것에 맞닿거나 자꾸 부딪치며 충돌하다.
1. 배 속이 크게 불편하여 쓰리거나 울렁울렁하다.
부대찌개

밖에서 사 먹을 때, 더 맛있고 제대로 먹는 것 같은 음식들이 있어요. 저에게는 자주 먹지는 않지만, '부대찌개' 가 그런 음식 중 하나예요. 가끔 도시락을 깜박해서 사 온 샌드위치를 서걱서걱 씹다가 보면, 갑자기 예전 회사 근처 지하상가에 있던 부대찌개 집에 가서 찌개 국물에 밥 한 그릇이 뚝딱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고등학교 때, 다들 그렇듯 뒤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이죠. 저희 반에는 늘 학교 끝나고 왁자지껄하게 학교 근처 분식집, 고기 뷔페를 가서 도장 깨기를 하듯이 가는 남자아이들 무리가 있었어요.' 음식 귀신', '먹신', '본좌' 등등 다양한 이름 등을 가진 무리였는데 어느 날 한 녀석이 말합니다.


"오늘은 XX 부대찌개라고 무한리필 집이야. 오늘은 거기다!."


그리고, 풍문에 의하면 그 부대찌개 집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저희 반 식신원정대 친구들은 사장님한테 찍혀,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부대찌개라면 학교 급식에서 스팸에 햄이랑 소시지가 들어간 김칫국 같은 모양새를 본 게 전부인 저는 '왜 굳이 그런 음식을 저렇게 즐겁게 먹으러 가냐. 그냥 그 돈이면 옆집 XX네 즉석 떡볶이집 가서 사리 추가하고, 밥까지 야무지게 볶아먹고 냄비에 눌린 볶음밥까지 누룽지로 먹으면 될 텐데... 아줌마네 막내가 우리 학교 다녀서, 우리 학교 애들은 서비스도 잘 주는데... 바보들' 하며 혀를 찼던 기억이 납니다

자, 그럼 부대찌개를 준비해볼까요?


식구 食口

그러다가 처음 제대로 부대찌개를 맛본 것은 몇 해가 지나서였어요. 늘 저를 예뻐해 주셔서 한 상 가득 집밥을 차려주시고, 고기도 구워 먹고 치킨도 함께 먹던 친구네 부모님들이 같이 밥 먹으러 가자며, 하루는 운전을 꽤 오래 해서 줄이 엄청나게 긴 모 부대찌개 집에 가게 됩니다.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후끈하고 익숙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자리를 안내받고 다닥다닥 부대끼듯 모두가 붙어 앉아서 가스 불을 켜고 기다렸다가 뭉근하게 찌개가 잘 끓여질 때쯤, 친구네 아버님이 보글보글 끓는 국물에 라면 사리를 먼저 건져서 제 앞에 소시지와 햄, 떡을 골고루 섞어서 한 국자를 떠서 주셨습니다. '너도 우리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엔 너를 꼭 데려오고 싶었단다. 맛있게 먹자. 일단, 이 국물부터 떠먹어 봐'.


그 말에 순간 울컥하는 마음과 '식구'라는 말을 되뇌어 보았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음식을 뜻하는 '식(食)'자와 입을 뜻하는 '구(口)'자, 즉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 겨우 엄마, 아빠, 저, 남동생. 이렇게 단출한 저희 집 네 가족이지만, 함께 다 같이 모여서 밥 먹은 기억이 많지 않는 저로서는 '아, 이런 게 '식구'이구나. 어디서든 함께 모여서 이렇게 즐겁게 밥 먹으면 그게 '식구' 이겠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저는 부대찌개 국물에 밥을 적셔서 한 입 두 입 먹으며 깨끗하게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친구는 국물에 치즈를 올려 떡과 라면 사리를 퍼지듯이 먹으며 그 어느 일요일 겨울날의 몸도 마음도 가득하니 뜨끈한 점심밥을 생각합니다. '부대찌개를 이 맛에 먹는구나!' 하면서요.

부대낄 때, 부대끼며 먹는, 부대찌개


한국에서 다니던 마지막 직장 근처에는 꽤 분주하고 좋은 가격의 부대찌개 집이 있었어요. 워낙 회사원들이 많고, 유난히 음식값이 비싼 동네였던 지라 이 부대찌개 집은 점심 메뉴로 참 적당한 집이었어요. 입이 짧지만, 술은 무척 좋아하는 과장님 한 분과, 종종 거래처와 술자리가 있어서 '맘 편히 먹는 술이 때때로 그립다'는 말을 하시는 차장님 한 분과 함께 저는 점심을 자주 같이하곤 했었거든요. 부대찌개 집 이모님들과 이미 안면이 있던 두 분을 따라 저도 함께 이분들과 얼굴도 말문도 트면서 점점 양푼 주전자에 담긴 육수도 알아서 더 붓고, 라면사리도 4등분을 할지, 2등분을 할지 융통성 있게 준비해 알맞은 시간에 부대찌개 국물에 폭 담가 끓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다 먹고 나면 이 집은, 시원한 수정과 한 통이 탁자에 준비되어있었어요. 부대찌개와 가게에서 부대끼며 기다리고 밥을 먹는 사람들이 내뿜는 온기와 부대찌개의 뜨끈함으로 온몸이 살짝 노곤 노곤해 질 때쯤, 알싸하고 달큼하면서 때론 살얼음이 살짝 낀 수정과. 이 수정과를 준비된 스테인리스 컵에 한 잔씩 따라서, 입에 털어 넣으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신발장으로 가 신발을 후다닥 찾아서 가게 문을 나서곤 했어요.


일에 부대끼고, 현실에 부대끼고, 사람에 부대끼고, 그리고 함께 그런 삶을 가진 이들이 한 공간에 부대끼며 먹는 부대찌개의 맛이란- 가끔은 부대찌개를 먹고 온몸에서 '저 부대찌개를 제대로 먹고 왔습니다' 하는 냄새가 날 때도 있어서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부대찌개는 이렇게 먹고 돌아오면 진짜 회사 생활 하는 어른이 된 거 같아서 저에게 그때의 부대찌개는 제가 잘 배운 '어른의 맛'이었어요.

슬슬 끓으니 라면 사리를 넣어줍니다.
더 퍼질 수 있으니 꼬들꼬들하게 끓인 뒤 불을 끕니다.
Army Stew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고랑이에게 '오늘 저녁은 부대찌개(Army Stew)야'라고 말하며 분주히 데친 소시지와 처음 사본 스팸, 베이크드 빈스, 푹 익은 김치, 매운 고추와 파, 지난번에 남은 버섯, 집 앞 마트에서 사 온 두부와 라면 사리 등등 준비합니다. 한국에서 먹던 부대찌개에 비해 조미료 맛은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데 이 정도 메뉴는 한번 해 먹어도 될 것 같아서 해보기로 했어요. 고랑이의 친구 중 하나가 전에 한국에서 3개월 정도 살았었는데, 베이컨과 햄을 넣어서 부대찌개를 비슷하게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며 고랑이는 식탁을 닦고 밥 먹을 준비를 합니다.    


김치찌개나 묵은지 찜 같은 메뉴를 좋아하는 고랑이는 김칫국물을 더 넣어달라고 하네요. 저는 이건 다른 메뉴라고, 남은 김칫국물은 다음에 김치부침개를 할 때 쓸 테니 오늘은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해봅니다. 각종 재료를 차곡히 담고, 만들어 둔 양념장을 담고, 지난번 한인 마트에서 사 왔던 사골육수 한 팩을 뜯어서 국물로 부어줍니다. 부대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면서 집안 가득 냄새가 퍼지더라고요. 맥주와 소주(저희 집 고양이들) 통조림 냄새, 햄 냄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꾸 왔다 갔다 하며 킁킁거립니다. 뜨끈한 솥 밥도 그새 완성이 되고, 야채를 잘게 다져서 만든 계란말이도 준비해서 부대찌개를 먹을 준비를 해봅니다.


유자 마카롱: 한국전쟁 후에, 먹거리가 부족했었다고 해. 그래서 미군 부대 관련 일을 하던 한국 사람들이 미군부대에 납품되는 고기 남은 것, 통조림 햄 등을 이용해 고추장 베이스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라면 사리를 넣고 하면서 이 음식으로 발전되었어. 이 음식은 밖에서 맛있는 집 가서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으면 더 생각나는 메뉴야.

고랑이: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한국음식은  꼭 함께 먹어야 더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 것 같아. (냉장고를 열면서) 그런데 자기야, 이 음식은 소주 필요해요. 같이 먹을 소주 어디 있어요?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고랑 이를 위해 폼은 안 나지만 한 그릇 담았어요.
소주 많이 비싸요. 고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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