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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Oct 22. 2020

켜켜이 쌓아,
두루두루 나누고픈, 김치밥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에 친구들이 가족들이 아주 많이 보고 싶은 날이 있어요. 예전에 그랬듯 퇴근 시간쯤 급 번개로 동네 친구와 김떡순을 사 먹으며 '아니, 세상에 반은 남자인데 우리는 왜 남자친구가 없는 건데...' 하며 하소연하던 시간, 양꼬치에 찹쌀 탕수육을 곁들이며 세상살이, 직장생활 참 팍팍하다 하며 함께 위로와 욕을 해주던 시간, 스트레스받을 때 정말 딱 인 매콤한 쭈꾸미집, 소주 한 잔 맘 편히 하고 싶어서 함께 소금구이집에 몰려 가던 친구들이 보고픈 그런 시간 있어요. 하다못해 집에서 치킨이라도 시켜서 서로 편한 옷 입고 시원하게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잔을 부딪치는 기억들. 


그러던 친구들이 이젠 다들 결혼해서 각자들 가정들이 있거나, 매일 야근과 밑에 직원들을 관리하는 바쁜 위치이다 보니 내 연락이 혹시나 방해되지 않을까 싶어 가끔은 메세지를 보내다가 지울 때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가장 보고 싶을 때는, 아마 손이 유난히 큰 제가, 제 손으로 한 따끈한 음식이 유난히 넉넉한 양이 된 날이에요. 예를 들면, 한 솥 가득, 갓 만든 김치밥 같은 음식들이요.


김치밥


참, 김치밥은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 시작된 음식이에요. 중고등학교 때, 지리나 사회시간에 곡창지대를 외울 때, 황해도 쪽에 '서해를 낀, 서쪽에 평야가 드넓고...'를 되뇌며 동그라미와 별표를 수없이 치며 외었던 기억이 이렇게 나더라고요. 이 김치밥의 다른 이름은 짠지밥('김치'를 황해도 사투리) 이라고도 하죠. 이렇게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는 낟알로 만든 음식이 발달했고, 해주 비빔밥과 더불어 이 김치밥도 그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김치밥은 특히 황해도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하여왔다. 만드는 법은 먼저 돼지고기를 얄팍하게 썰어 볶다가 물을 붓고 굵게 채 친 김치를 넣어 15분가량 끓인다. 여기에 멥쌀을 넣고 끓이다가 뜸을 들이면 된다.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예전에 엄마가 압력솥에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넣어 이 음식을 해주었던 기억이 나요. 엄마는 이렇게 김치밥이나 편식하는 남동생을 위해 소고기와 콩나물을 잔뜩 넣어서 콩나물 비빔밥을 하시면, 엄마표 양념장에 생김을 살짝 구워서 싸 먹기 좋게 식탁에 준비해주셨거든요. 저는 오늘 조금 제 식대로 이 김치밥을 해보기로 했어요. 


육수 준비하기


오늘 하는 김치밥은 손이 제법 갈 것 같아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러 가기 전 육수를 끓입니다. 멸치와 다시마, 파와 양파, 얼마 전 선물 받아서 먹은 먹태 껍질 남은 것, 물렁물렁한 토마토 남은 것, 끝이 말라서 잘라낸 무 껍질을 약불에 푹 우려서 육수를 내어 준 뒤, 한 김 식혀줍니다. 저는 오늘은 콩나물국도 하고, 계란장도 할 예정이라 좀 더 많은 양의 육수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한 김 식은 육수에 맛술을 부어서 체에 한 번 걸러주어 밥물을 준비하는 동안, 쌀을 깨끗이 씻어서 불려둡니다. 돼지고기에도 밑간해두고, 아주 푹 익은 김치는 송송 썰어서 체에 밭쳐 김치 물을 좀 빼준 뒤 들기름에 살짝 버무려 두었어요. 아, 그리고 집에 얼려놓은 두부가 있어서 해동해준 뒤, 물기를 쫙 빼서 보슬보슬하게 손으로 으깨서 준비해 두었어요. 마치 두부가 으깨진 모습이 비지 같더라고요. 


이렇게 한창 김치밥을 위한 밑 준비를 하다 보니 저의 요리 조수 고랑이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씩-웃으면서 집에 들어옵니다. 고랑이의 한국어 실력을 키울 겸, 혼자 한인 마트에 가서 콩나물과 파와 매운 고추를 사 와달라고 시켰거든요. 이제 식탁에 신문지를 깔고, 콩나물을 고랑이와 함께 다듬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신문지를 깔고 엄마와 콩나물을, 콩을, 마늘을 까며 티비를 보던 시간이 생각이 나서 오늘 김치밥이 더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켜켜이
켜켜이: 1.  여러 겹으로 포개진 것의 층마다; 여러 켜 마다
예문: 어머니는 켜켜이 팥고물을 넣으면서 시루에 떡을 안치고 계셨다.
:창고 속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책이 가득 놓여 있었다 (출처: 표준대국어사전,고려대한국어사전)


이제 송송 파를 잘게 썰어서 약불에 뭉근히 파 기름을 내어준 뒤, 돼지고기를 그 파 기름에 살짝 볶아둔 뒤 불을 꺼줍니다. 이제 김치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층을 쌓아주는 단계입니다. 파 기름에 볶은 돼지고기 위에, 불린 쌀, 김치, 언두부, 쌀, 김치 순으로 켜켜이 쌓아줍니다. 늘 이 '켜켜이'라는 단어를 보면 떡을 만들며 이 단어를 배웠던 기억이 나서, 시루에 찧은 떡 생각이 나곤 해요. 자,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젠 이렇게 켜켜이 잘 쌓아준 층에 평소보다 좀 적다 싶을 정도로 잘 식혀둔 육수를 여기에 부어준 뒤, 뚜껑을 덮고 불을 올려줍니다.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나면, 콩나물을 그 위에 옷을 입혀주듯이 차곡차곡 쌓아준 뒤, 뚜껑을 잘 덮어준 뒤 약불로 줄여 줍니다. 김치밥이 잘 익어가는 동안, 고랑이가 사 온 매운 고추와 파를 아주 잘게 썰고, 마늘을 다져서 양념장과 콩나물국을 준비합니다. 늘 콩나물을 익힐 때면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들립니다.

"콩나물은 다 익을 때까지, 냄비 뚜껑 절대 열면 안 돼. 안 그러면 비린내가 올라와."

자 이렇게 김치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김치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늘 모든 음식에는 요리가 완성될 쯤에는 그 냄새가 주는 신호 같은 게 있어요. 아주 짧지만, 그 미묘한 신호를 알아차리고 어떻게 하냐에 따라 음식의 완성도가 달라지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맛있는 메뉴를 할 때는 온 감각을 그 음식에만 쏟곤 해요. 이 모든 과정의 기다림 속에서 신호를 알아차리는 순간들 때문에 집에서 요리하거나 베이킹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함께 일하던 프랑스인 쉐프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버터가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설탕이 보석같이 반짝이는 순간' 같은 것들이요. 오늘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어우러지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해지는 순간'에 불을 끄고 뜸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참기름을 꺼내 준비해 줍니다. 김치밥을 담기 전 참기름을 한 번 휘휘 둘러주면 그 고소한 향과 반질반질한 참기름으로 밥알이 더욱 윤기 있게 빛나거든요.

완성 된 김치밥을 한 주걱 퍼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 생각난다는 것.
그게 사랑이겠죠.


이렇게 밥을 한가득 할 때면. 밥은 따끈할 때 먹는 게 제일 맛있다며, 늘 뜨신 밥을 짓고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을, 뜨끈한 밥을 하면서 드끈하게 아랫목에 일찌감치 아궁이 불을 때던 외할머니 생각을 하곤 합니다. 김치밥 같은 메뉴는 외할머니 집에 있던 커다란 솥에 넉넉하게 해서 넓죽한 그릇에 낙낙하게 한 공기씩 퍼서 콩나물국과 양념장을 앞에 두고 많은 사람이 먹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간만에 콧바람을 쐬고 집으로 돌아올 엄마에게도, 사진을 보니 부쩍 큰 조카들과 사촌 언니·오빠들에게도, 야근이 많아서 고생하거나 육아에 지칠 텐데도 늘 마음결이 예쁜 제 친구들에게도 이 김치밥 한 그릇씩을 두고 즐겁고 따뜻하게 한 상에 둘러앉아 먹으면, 그렇게 갓 한 뜨신 밥 한 술, 한 그릇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대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싶습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저의 최고의 요리 조수이자 밥 친구이자 소주 친구, 와인친구인 고랑이와 함께 기대하던 김치밥 한 술을 떠먹어봅니다. 김치로 이런 음식을 할 수 있는 줄은 몰랐다며, 신나는 표정으로 한 숟갈 올려 김에도 싸 먹고, 매운 고추가 잔뜩 들어간 양념장을 살포시 올려 또 한 입을 먹는 고랑이를 보니 오늘 김치밥은 성공적인 것 같아요. 저도 매운 고추와 깻잎을 잘게 썰어 한 숟갈씩 올려 먹었더니, 김치밥을 두 그릇이나 뚝딱했어요. 여기에 콩나물을 잔뜩 퍼서 콩나물국까지 시원하게 곁들여 저녁 한 끼를 뜨끈하게 먹고는 그 든든해진 마음을 담아 보고 싶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봅니다.


"오늘 김치밥을 해 먹었는데, 너가 왠지 좋아할 것 같아서, 네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 생각난다는 것. 그게 사랑이겠죠.



함께 먹어서 더 맛있는 김치밥. 켜켜이 쌓아 두루두루 나누고픈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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