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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Aug 10. 2020

한국식 살림 예찬론

외국에서 더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한국식 살림


저는 자취 햇수로는 14년 차. 호주에서 자리 잡고 산 지는 6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햇수는 저리 많지만, 저는 사실 제대로 저의 살림을 가져보며 살 게 된 것은 1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더라고요. 한국에서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저도 한국에서 자취하는 '집은 잠자고 샤워하는 곳' 정도였거든요.


처음 호주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셰어하우스에 여러 나라 사람들과 살다 보니 제 생활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었고, 그 후에 한국인 하우스메이트 언니와 살 게 되면서 똑똑한 한국 언니들의 모습을 엿보면서 점차 조금씩 저만의 살림 방식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 고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내가 꾸리는 내 살림'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정말 버릴 게 없는 한국식 음식 만들기.

보통 호주에서는 지역이나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매주 수요일부터-다음 화요일까지 큰 마트들은 세일하는 품목들로 꽉 채워서 카탈로그를 발행해요. 월요일 저녁을 먹을 때쯤이면 이번 주 수요일부터 어떤 물품이 세일하는지 알 수 있어서 늘 하우스 메이트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번 주에는 뭐가 반값이고, 어디가 제철 채소와 과일이 좀 더 싱싱하더라... 같은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러고는 정해진 식비에 맞게 장을 보고, 평소보다 가격이 싸지만 신선도에 비해 양이 너무 많으면 한 묶음을 사서, 하우스메이트와 비용을 나누어서 내곤 했어요. 장을 보러 가기 전에는 사야 할 물품 목록을 적기보다는, 샴푸나 주방세제 혹은 간식 같은 것들은 반값을 할 때 꼭 떨어지기 전에 사다 두고, 그 주에 세일하는 과일이나 야채와 떨이로 파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식단들을 미리 어느 정도 짜놓고는 장을 보러 가곤 했어요.


일 끝나고 장을 보고 오면, 피곤할 때도 있지만 집에 오면 바로 필요한 만큼 식단에 맞게 밑 손질을 하고 나누어서 10일 간격으로 냉장실과 냉장고를 비우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당근 꼭지 하나 버리는 것 없이 참 야무지게 잘해 먹고, 그 돈을 모아서 스스로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고 이곳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제가 타지에서 살면서 본 한국 언니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고, 무엇하나 그저 버리지 않고 아끼고 활용할 줄 알며, 셔츠 하나를 사도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셔츠를 본인 돈으로 스스로 선물할 줄 알며, 참 똑똑하고 지혜롭게 살 줄 아는 언니들이었어요. 똑띠한 한국 언니들 덕에 저도 한국식 살림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살고 있고, 언니들 처럼 알뜰살뜰 예쁘고 똑똑한 한국 언니가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아직은 참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샐러리 먹고 남은 잎을 말려서 데친 뒤, 그 물과 샐러리 잎으로 만든 솥밥. 향이 정말 좋아요!
"이 돈으로 장을 이만큼 볼 수 있다고?"

그리고 고랑이와 처음 같이 살 게 되면서 장을 보러 가는데 고랑이가 놀라더라고요. "이 돈으로 장을 이만큼 볼 수 있다고?" 자기가 평소에 장을 보는 금액의 반 정도인데, 큰 봉지를 두 개를 더 채웠으니 놀랄 만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한 번 더 놀랍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나는 샐러리 잎이나 파뿌리까지 음식에 쓸 줄 몰랐어."


파 뿌리는 김치를 만들 때 넣어주면 김치가 더 시원해지고,

샐러리는 잎은 햇빛에 잘 말려서 솥 밥을 해 먹으면 그 향이 너무나 좋고,

버리기 아깝다 싶은 무 껍질은 잘 말려서 무말랭이나 육수 우릴 때 넣으면 되고,

상태가 안 좋은 배나 사과는 잘 갈아서 불고기나 제육볶음을 하면 되고,

무 윗부분은 시래기를 만들어 된장에 무쳐 먹거나 국을 끓여 먹고,

한국에서 엄마께서 늘 집에서 표고버섯을 말리고 고추를 말리고,

쌀뜨물로 생선 비린내를 제거하고,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남은 커피 찌꺼기는 냉장고 냄새를 제거하는 데 사용 후, 흙과 섞어서 배양토로 쓰고


무엇하나 버리기보다는 아끼고 사용하시던 그 모습들이 이렇게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파 뿌리, 집에서 키우고 말린 고추, 무 윗 둥이... 무엇하나 버릴 것 없이 만들고, 김칫국물까지 빈대떡 부쳐 먹는 한국식 살림.

얼마 전에는 동네에서 로스트 치킨(전기통닭)을 떨이로 두 마리에 8불에 사 왔어요. 따끈한 온기가 다 빠진 뒤, 살점을 발라낸 후에 뼈와 닭 껍질, 냉장고에 남은 야채 등을 이용해 푹푹 끓여서 육수를 만들고,  살점을 지퍼백에 용도에 맞게 나누어서 얼리고, 냉장고에 넣었어요. 처음 만든 육수로 닭칼국수를 끓여서 먹고, 그리고 남은 육수로 하루는 칼칼하게 끓인 닭개장을, 그 남은 닭개장 국물에 라면 사리를 넣어 끓여서 김밥과 한 끼를 먹고, 또 하루는 고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닭죽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살점으로 두반장과 냉장고에 남은 야채를 매콤하게 중화 식으로 볶아서 비빔국수를 해 먹었어요. 닭 두 마리로 무려 5일 동안 거의 10인분의 음식을 해 먹은 거죠. 어떨 때는 닭 육수로 태국식 그린 카레를 만들어 먹을 때도, 락사를 만들 때도 있어요. 닭 두 마리로 두 사람이 5끼를 알차게 먹었으니 이만하면 자랑할만하죠?


고사리도, 토란대도 없었지만 맛있게 먹은 닭개장.
살점이 야들야들해서 더 맛있었던 닭칼국수.
"한국 어머니들의 살림의 지혜를 믿어봐!"

하루는 고랑이가 흰 후드티에 뭘 잔뜩 묻혀왔어요. 본인이 워낙 아끼는 옷이라 거의 울기 직전의 모습이었고, 락스를 쓰기에는 중간중간 상할 부분이 보여서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 어머니들이 자주 보시는 모 생활의 팁 프로그램을 찾아보았어요. 베이킹소다에 세제에 이것저것 분주히 섞어서 제가 무언가 만드는 모습에 "그게 되면 좋겠지만…."이라고 고랑이가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어요.


"한국 어머니들의 살림의 지혜를 믿어봐!"


그리고 그 특별한 세제 덕에 고랑이는 지금도 그 흰 후드티를 늘 새하얗게 입고 있어요.



안 쓰는 수건이나 양말로 걸레로 만들어 꼼꼼히 나무 바닥 부분을 손으로 닦고,

화장실 배수구를 주기적으로 체크해서 깨끗하게 하고, 세탁기를 청소하고,

남은 유리 잼 통을 모아서 소독한 뒤, 양념장을 담거나 선물할 초콜릿이나 쨈 등을 포장하기도 하고,

김빠진 콜라로 변기를 반짝반짝하게 청소하고,

지난번 한국에서 받아온 돼지 모양 딸기 모양 수세미도 식초와 베이킹소다 물에 소독하고,

한국에서 사 온 동물털 제거용 롤러로 옷을 정리해주고, 보풀 제거기로 보풀을 한 번 더 만져주고,

이렇게 한국식 살림의 팁은 이렇게 유용하게 해외에서도 써먹고 있어요.


최근에는 콜라비를 사 왔는데, 콜라비 잎을 버리기 아깝다며 저에게 물어보는 고랑이.본인이 구글에서 찾아보겠다고 하다가 저에게 요청합니다.

"한국 엄마들에게 콜라비 잎 어떻게 쓰는지 물어봐 줘!"

 

먹기엔 너무 무른 배와 공짜로 생긴 고기를 얇게 썰어서 만든 불고기. 그리고 이번 주에 할인한 양배추로 한 상을 차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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