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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ul 13. 2020

누구나 따끈한 솥밥 한 그릇 먹을 자격은 있어요.

따끈따끈한 밥 한 그릇 나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잖아요.

난 요즘 도대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지?


이번 주에는 집에 중요한 손님들이 왔었어요. 제 손님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 손님들 일정과 먹거리, 자잘하게 필요한 것들에 온 신경을 써야 했고 혹시나 말실수나 행동에 실수할까 싶어서 긴장하면서 지냈어요. 그 와중에 제 마음속에는 외로움도, 서운한 마음도, 지침도, 예민함도 자리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손님들이기에 '평소처럼 일한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대접하고 챙겼어요.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에는, 달달한 마들렌과 갓 토스트 한 크럼펫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꿀과 버터를 올린 따끈한 아침 메뉴로 시작해서 손님들을 위해 문밖까지의 배웅을 마지막 일정으로 짧고도 긴 한 주가 끝났어요. 그렇게 텅 빈 집에서 앉아 혼자 앉아서 커피 한잔을 홀짝이는데 그제야 '아차-' 싶더라고요.


'난 요즘 도대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지?'


제가 먹고싶어 만들었던 물김치. 당근,오이,배, 사과, 노랑-빨강파프리카, 깻잎을 돌돌-정말 손이 많이 간 만큼 맛있었어요.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손님들이 나간 자리를 대강 정리하고, 소주와 맥주(저희 집 고양이들 이예요)의 밥을 챙겨주는데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저도 슬슬 배가 고프더라고요. 아침에 손님들 대접하고 남은 음식이나 어제 먹던 찬밥을 데워 먹을까 싶다가, 이렇게 한 주 내내 고생한 나 자신에게 뜨신 밥 한술 못 해주겠나 싶어서,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바로, 뜨끈뜨끈하고 맛있는 솥밥이요.


짜잔. 맛있는 무쇠솥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샐러리 표고버섯 무쇠솥밥


이 솥 밥은 제가 온라인에서 아는 한 지인분이 매번 버리거나 육수 우리는 데에만 쓰던 샐러리 잎을 튀김으로 드시거나 말려서 샐러리 소금이나, 이렇게 샐러리로 솥 밥을 하는 팁을 공유해주셔서 만들게 되었어요.


일단, 샐러리 잎을 잘 씻어서 햇볕에 3일~5일 정도 말려줍니다. 호주에는 한국처럼 조밀조밀한 양파망이 없는 관계로 저는 예전에 귤을 사면서 남겨둔 귤 망을 썼어요. 그렇게 잘 말린 샐러리를 소금물에 살짝 데쳐 준 뒤, 물기를 빼줍니다. 그리고 샐러리 데친 물에 마른 표고버섯, 다시마를 넣고 식혀줍니다. (이렇게 채수가 완성!) 쌀을 깨끗이 씻어서 이 육수에 넣고 쌀을 불려준 뒤, 데쳐둔 셀러리 잎과 함께 밥을 하면 됩니다.


5일 정도 햇빛에 말린 셀러리 잎. 매번 버리거나 육수에만 썼는데 말리니 향이 너무 좋아요.
김이 모락모락 올라서 와서 사진 찍기가 어려웠어요. 크게 한 주걱 퍼봤어요.
완성된 뜨끈한 솥밥 한 스푼 제가 먼저 맛봅니다.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무쇠솥 밥을 샐러리와 표고버섯이 잘 어우러지게 고슬고슬한 밥알이 뭉게지지 않게 한 주걱을 크게 뜬 뒤에 들기름을 쪼르륵 부어주고, 양념장을 곁들여서 올렸어요.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는데 갓 한 밥의 따뜻한 온기, 쫄깃한 표고버섯의 식감과 샐러리의 향이 더해져서 입 안 가득 따뜻함이 퍼지는 게 '이게 밥심이구나-' 싶더라고요.


한국에서 할머니 생각나면 한 번씩 밥집 가서 먹던 곤드레밥 생각도, 엄마가 해주시던 어릴 때 직접 말려서 해주시던 시래기 된장 주먹밥 생각나 혼자 훌쩍이면서 금세 두 그릇을 비웠어요. 별 반찬 없어도 맛있는 밥 하나로만으로도 기분 좋고 든든한 솥 밥.


밥이 보약인지 그렇게 밥을 먹고 나니 조금씩 힘이 나서 집도 치우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저 자신만을 위해, 내가 먹고 싶은 따끈한 솥 밥 해 줄 수 있는 나이도, 마음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참 다행이고 감사하죠. 

스스로에게 따뜻한 솥 밥 한술 뜨게 해주는 여유-


우리 모두 그 정도는 스스로에게 해 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니까요.


남은 솥밥 일부는 고랑이가 좋아하는 버터와 컬리플라워,(사진에는 없네요.)이탈리안 소시지를 곁들여서, 고랑이의 런치박스로 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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