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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un 19. 2020

프랑스 남자의 김치 만두

'덤플링'이 아닌 '만두'를 만들고 싶은, 프랑스 남자와 함께 만두 수업


며칠 전, 고랑이와 함께 한인마트에 다녀왔어요.

한참, 이것 저것 사고 있는데 고랑이가 사라져서 어디에 있나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김치 섹션에서 어슬렁어슬렁 하고 있더라고요. 손에는 김치가 3 봉지나 들려있고요.

유자마카롱: 고랑이, 김치는 하나만 사면 돼.
고랑이: No, No, 자기야. 이건 총각김치, 이건 묵은지, 그리고 이건 일반 김치. 다 다른 김치다. 다 맛있다.

(고랑이가 최대한 한국어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제가 약해져 사줄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저의 긴 설득 끝에 고랑이와 저는 묵은지 한 봉지만 장바구니에 담아서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덤플링(Dumpling)' 말고
 '만두(Mandu)’


"이번 주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고랑이와 집으로 돌아와서 장본 것을 정리하면서 슬쩍 물어보는데, 돼지고기 묵은지찜과 만두를 이야기하더라고요. ‘덤플링(Dumpling)' 말고 '만두(Mandu)'가 먹고 싶다고- 한 마디를 덧붙이네요.

그래서, 한인마트에서 사 온 묵은지 일부와 집에 남아있는 김치를 섞어서 만두소를 만들기로 했어요.

종갓집 맞며느리 스타일 우리엄마의 만두 만들기. 저녁내내 만들고 먹고 만들고 먹고 나머지는 얼려서 냉동실 행.

다진 돼지고기에 간장 몇 큰 술, 맛술, 소금, 후추 톡톡 털어 넣어서 밑간을 하고,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당근, 이웃집에서 받았던 호박 남은 거, 싹이 올라올락 말락 한 양파, 물기를 쏙 뺀 후 포슬포슬해진 두부, 살짝 데쳐서 아삭아삭 식감이 살아있는 숙주, 집 마당에 자라는 고추는 손으로 뚝뚝 따온 후, 파와 함께 송송 썰어 넣었어요.

아, 그리고 손톱 만한 생강과 다진 마늘을 넣는 걸 잊을 뻔했네요.



그리고, 만두에서 가장 중요한 만두피. 평소처럼 집 근처 중국인 마트에서 파는 피를 사서 쓸까 하다가 문득 매년 설 전쯤 엄마 집에 가면, 남동생과 함께 조물조물 만두 만들던 시간이 생각나서 만두피를 만들기로 했어요. 만두피가 남으면 오래간만에 고랑이가 좋아하는 김치수제비도 닭칼국수도 해 먹으면 되니까요.

초록 초록한 시금치 만두피가 좋을까 아님 노랗고 따뜻한 색깔의 당근 만두피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여기는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따뜻한 색으로 만들자- 싶어서 당근으로 즙을 내고 반죽을 해서, 하루 밤 동안 냉장고에 숙성시켰어요.


엄마표 시금치 만두. 남동생+엄마+저의 합작. 누가 뭘 만들었는지 딱 알아보시겠나요?
시금치 만두는 먹으면 입이 상쾌해진달까. 엄마는 그래서 좋아

저희 엄마는 손이 정말 크세요. 응답하라에 나오는 덕선이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뭐든지 만들면 많이 만드세요. 그래서 늘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이웃들 한테도 많이 받곤 하셔서 한 번은 엄마 집 김치 냉장고에 여섯 집의 김장김치가 종류별로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저희 엄마는 '음식은 예쁘고 맛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어렸을 때는, 매년 엄마와 추석 때는 송편 그리고 설쯤에는 만두를 만드는 게 즐거운 일이었어요. 치자물와 쑥, 오미자 물로 꿀송편, 콩송편을 만들어서 육각 나무 쟁반에 솔잎을 살짝 깐 뒤 올려주면 얼마나 예쁜지- 저는 엄마에게서 자연의 색깔을 배웠어요. 매년 겨울, 엄마 집 가서 먹던 엄마표 시금치와 당근색 만두는 저에겐 유학시절 가장 고픈 음식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저는 모든 집들이 다 이렇게 만들 먹는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게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었음을 새삼 나이 들어서 알게 되었어요.

 

엄마께 보내드린 제가 만든 당근색 만두 사진. "엄마 저 잘했죠?"



이튿날, 늦지막 하게 고랑이와 오후 티타임을 가진 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나무 도마와 밀대, 밀가루를 준비했어요. 저와 고랑이는 만두피를 밀고, 대화를 하면서 만두를 빚기 시작했어요.

만두에 얽힌 저와 엄마와의 추억, 그리고 만두의 기원인 제갈량의 이야기, 고랑이가 이탈리아 논나(할머니)와 일할 때 있었던 이야기들, 여기 마트에서 사 먹은 덤플링이 플라스틱 맛이 나서 몽땅 버린 이야기, 그리고 '만두를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 까지. 그런데, 이 프랑스 남자. 만두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니 이탈리아식 토르텔리니(이탈리아식 작은 만두 모양의 파스타 )를 만들어놨네요.


시작은 나쁘지 않았어요. 열심히 만두를 만드는 프랑스 남자.
응...그래도 잘하고 있어. 어쨌든 맛있을 꺼야.
열심히 일했으니, 마무리로 노동주인 소주와 함께- 짠!


다들 아시죠?

만두는 만들면서 쪄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거요. 찜기에서 막 나와 뜨끈한 김이 솔솔 나오는 만두를 살짝 식힌 뒤,

엄지와 검지로 집어서 새콤하고 짭조름한 양념장에 콕-찍어 먹는 그 손 맛에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만두든, 토르텔리니든, 덤플링이든 열심히 만들었으니 서로 예쁘다 잘했다 칭찬해주며 맛있게 먹었어요. 그리고, 마무리로 소주 한 잔을 짠- 하며 저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 난 역시 엄마 딸인가 봐요. 고마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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