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마카롱 Nov 23. 2020

시래기 주먹밥 속, 도시락 편지




시래기와 우거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밥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새롭게 좋아하게 되는 식재료 들이 있어요. 무청을 그늘 진 곳에서 잘 말린, '쓰레기'라고 제가 불러서 엄마에게 딱밤을 맞기도 했던 '시래기' 그리고 배추의 겉잎 부분인 '우거지' 같은 재료들이요.


지금도 엄마 집에 가면 이렇게 말린 버섯,고추등을 만나곤 해요.



유난히 키가 작고 왜소하며 잔병치레가 어릴 때 부쩍 많았던 첫째 딸을 위해, 엄마는 부지런히 건강히 잘 먹이려고 참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엄마의 음식 처방 중,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래기 주먹밥'은 이제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해요.



시래기 주먹밥


잘 말려진 시래기는 깨끗하게 씻은 뒤, 소금물에 데쳐 송송송 썰어서 들기름과 된장, 들깻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손으로 무쳐둡니다. 시래기를 데친 물은 버리지 않고 밥물로 사용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밥을 막 해서 뜨끈한 밥 한술에 시래기 된장 무침을 한 젓가락 올려서 먹어도 그저 맛있지만, 오늘은 집에 남아있는 잔멸치와 두부 반 모를 넣어서 시래기 주먹밥을 하기로 합니다.


 잔멸치는 비린내가 날아갈 때 까지, 약한 불에 달달 바삭하게 볶아주고, 두부는 물기를 꼭 짜내어서 고슬고슬하게 준비해줍니다. 이렇게 준비된 모든 밑 재료들을 너무 뭉치지 않게 잘 섞어준 뒤, 동글동글하게 주먹밥 모양으로 만들어 줍니다. 


엄마는 어린 저와 동생을 위해서 자동차 모양, 꽃모양같은 모양 주먹밥을 찍어서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시래기 색이 안 보이게 계란 지단을 감싸서 그릇에 올려주시기도 했는데, 그 정성과 마음을 인제야 되집어 봅니다.


우거지 된장국

시래기 주먹밥만 먹으면 조금 목이 멜 수 있을 것 같아서 간만에 우거지 된장국을 끓여보기로 합니다.

지난번 김치할 때, 따로 떼어 내어 소금물에 데치고 얼려둔 우거지를 해동해준 뒤, 물기를 꽉 짜서 준비해줍니다. 물기가 쫙 빠진 우거지에 된장 한 스푼과 다진 마늘로 밑간을 해줍니다. 이 팁은 예전에 주방에서 맛깔나는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이모님이 비밀이에요. 무는 나박나박, 두부는 작은 주사위 모양 정도로 잘라주고, 고추와 파도 송송 썰어줍니다. 미리 쌀 씻으면서 받아놓은 쌀뜨물에, 다시마 표고버섯, 멸치로 육수를 내어준 뒤, 된장을 휘휘 풀어서 밑간이 된 우거지, 두부를 넣고 한소끔 끓여줍니다. 파와 고추를 어슷하게 썰어서 남은 열로 익혀줍니다.

우거짓국이 유난히 먹음직스럽게 끓여져서 저는 찬밥에 국을 휘휘 말아서, 김치 한 점을 올려서 밥 한술을 뜨고야 맙니다. 시래기 주먹밥을 쌈처럼 먹기 좋게 남아있던 양상추를 깔아준 뒤 올려주고, 우거짓국 한 그릇을 퍼서 간단한 점심상을 차려둡니다. 몇 주 전에 한 김치가 무척 맛깔나게 되서 고랑이가 워낙 좋아하는 터라 김치 몇 점도 옆에 올려두고 상을 차렸습니다.




도시락 편지


늘 엄했던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차마 말도 못 하고, 가끔 보온 도시락 주머니에 끼어서 넣어주던 '도시락 편지'가 생각이 납니다. 때로는 엄마가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적어주시기도, 가끔은 꽃을 작게 그려서 메모지 귀퉁이를 장식하기도 했던 엄마의 도시락 편지. 그리고 고랑이가 '그림' 같다는 엄마의 글씨에는 늘 혹시나 첫째 딸이 감사한 마음 없이 자라진 않을까 혹은 모진 한마디에 잘못된 길로 엇나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꾹꾹 한 글자 한 글자에 박혀있곤 합니다. 


조양희 작가님의 책 '도시락 편지'가 그토록 많은 엄마와 자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활자에 담긴 엄마의 마음이겠죠. 조금은 길어질 외출 길,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펜을 들어 작게 메시지를 써서 점심상 옆에 살포시 두고 나가봅니다. 


"고랑이, 늘 고마워. 맛있게 먹어. (Merci pour tout. Bon appetit! )"


고랑이를 위한 점심 한 상. 시래기주먹밥, 우거지된장국, 그리고 김치.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만난 사라다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