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다를 아시나요?
예전에 집들이하거나 손님 초대를 하면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이 '사라다'였어요.
'사라다'라는 말은 사실 '샐러드'의 일본식 잘못된 발음인데, 집에서 흔히 보는 감자, 야채, 과일을 크게 크게 썰어 계란, 땅콩, 건포도 등 이것저것 있던 재료를 마요네즈에 버무려 내는 음식을 뜻해요.
저희 집에서는 게맛살과 샐러리나 피망, 통조림 옥수수를 양껏 넣어 주시기도 하고, 계란은 노른자만 따로 엄마가 고운체에 눌러서 위에 뿌려주셨던 터라 마요네즈 옷을 입었지만 그 알록달록 색과 달콤한 사과를 한입 가득 물면 터져 나오는 과즙이 참 좋았거든요. 종종 친구네 놀러 가도, 혹은 음식점에서 밑반찬으로 나올 때 꼭 한입은 먹게 되는 음식이었던 것 같아요. 가끔은 사과인 줄 알고 먹었더니 감자이기도 해서 살짝 배신당한 표정을 빼쭉 내밀 때도 있었지만요.
그렇게 사라다를 만들 때, 엄마는 남은 재료를 또 잘게 다져서 샌드위치 속을 만들어 주곤 하셨어요. 살짝 마른 바게트 같은 빵은 속을 쏙 파내어서 저와 동생이 나누어 먹은 뒤, 아주 가득 속을 채워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서 모양을 잡아두었다가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혹은 말랑한 모닝빵이 집에 있으면 동생과 바로 빵을 반으로 갈라서 사라다빵을 해 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쁘고 맛 좋은 샐러드가 많아져서인지 점차 '사라다'는 볼 기회가 흔치 않더라고요. 그렇게 저도 꽤 오랜시간 '사라다'의 존재를 잊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같이 살았던 한국인 언니가 하루 '감자사라다' 가 먹고 싶어서 만들었다며 저에게도 도시락통 한 통을 건네주더라고요.
촉촉하면서 각종 재료가 잘 어우러지는 그 맛에 반해 저도 며칠 뒤 제 손으로 처음 만들어 보았는데…. 이게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처음 알게 되었죠. 엄마는 뚝딱뚝딱하셨는데, 저는 뭐 하나 참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나, 양파를 얼음물에 담그는 것을 깜빡했더니 제 첫 감자사라다 덕에 온종일 입에서 양파 냄새가 나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학교에서 있던 기억은 지금도 웃게 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예요.
그렇게 몇 년 동안, 제가 먹고 싶어서 만드는 감자 사라다를 만들 때는 어쩜 그렇게 양 조절을 실패하는지 혹은 자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인지 매번 혼자 먹을 양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종종 만나는 한국인 언니들, 학교 친구들, 단골 미장원에 가져다주기도 했고 이제 저희 집에서는 고랑이의 새참과 끼니 사이의 메뉴 중 하나가 되었어요.
감자 사라다
감자와 계란은 잘 쪄서, 껍질을 잘 벗겨준 뒤 식혀줍니다. 버무리면서 식감이 뭉개지기도 하고, 저는 씹히는 맛이 좋아서 좀 큰 덩이로 썰어서 감자와 계란을 준비해줍니다. 통조림 옥수수는 한번 물로 헹궈서 물기를 빼주고, 집에 색이 예쁜 파프리카나 피망이 남아있으면 작은 네모 모양으로 썰어줍니다. 저는 집에 남은 데친 깍지 콩이 있어서 넣어주었어요. 뭔가 주황빛이 있으면 더 예쁠 것 같아서, 당근을 잘게 다져서 넣어봅니다. 그리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서 마요네즈로 잘 버무려주면 완성이예요. 참, 여기에 설탕 반 큰술을 넣으면 감칠맛이 확 살아난답니다.
폭신폭신하게 준비된 모닝빵을 반으로 잘라 아주 살짝만 티스푼으로 속을 긁어줍니다. 이렇게 하면 더 샐러드 속을 양껏 넣을 수도 있고, 랩으로 싸거나 옮길 때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거든요. 요즘 봤던 한국드라마에서 '오늘 진짜 스트레스받네. 매운 음식 먹으러 가자.'라는 대사가 마음에 쏘옥 든다며, 고랑이는 특별히 내일 일터로 가져갈 본인 샌드위치에는 매운 핫소스를 추가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저는 반나절 정도 냉장고에 두었다가 우유랑 함께 먹으면 이 빵이 더 맛있더라고요. 날이 좋아서 집 청소를 마치고, 이불을 탁탁 털어 햇볕에 잘 말려두고, 사라다 빵을 한입 가득 베어 뭅니다. 사라다의 수분을 머금은 모닝빵이 촉촉하니 속 재료 씹는 맛도 재미있고 맛있더라고요.
왜인지 꼭 우유를 함께 이 빵을 먹으면 남동생과 식탁에 앉아서 서로 큰 조각을 먹겠다며 싸우던 생각도, 남동생 친구네 부모님이 하시던 빵집에서 유난히 맛있게 먹은 옥수수 식빵도, 건포도가 싫어서 몰래몰래 골라내던 옛날 사라다가 생각나서 하루는 과일을 잔뜩 넣어 옛날 사라다를 한번 해 먹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일 사라다 한 그릇 크게 해서 큼직한 유리그릇을 채워 인심 좋게 한 그릇씩 옆집 아랫집 뒷집 나누던 정이 문득 그리워져요. 예쁘장한 샐러드도 좋지만, 나누는 정이 그리워지는 날에는 사라다를 양껏 만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