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브림 May 27. 2024

오래된 헬스장의 비밀

이사를 하고 알아봐야 할 것들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건 헬스장이었다. 다행히 햇살방 옆엔 헬스장들이 많이 있어서 선택권이란 게 있었는데, 7번 방 근처(도보 10분)에는 헬스장이 단 한 곳뿐이었고 그마저도 시설이 아주 오래된 곳이었다.


낡은 건물 지하 2층으로 내려가 시설을 한 번 살펴봤다. 장점이라면 아주 넓다는 것, 내부 조명이 어두운 것, 폼롤러 존에 두툼한 매트가 깔려 있는 것, 기구 간 간격이 넓다는 것,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단점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장점 존재에 감사하며 일단 3개월권을 먼저 등록해서 다녀보기로 했다.  


올드한 헬스장 방문 첫날, 어쩐지 탈의실 입구부터가 범상치 않다. 옛날 여관 같은 갈색튀튀한 몰딩과 문, 안쪽 락커도 검붉은 색과 흰색의 다소 강렬한 교차조합이었다. 찜질방에 왔다는 자기 암시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탈의실 밖을 나설 수 있었다. 헬스 기구들을 잘은 모르지만 낡은 의자 시트나 그다지 번쩍이지 않는 철제 느낌이 딱 봐도 보통이 아닌 연식을 보여줬다.


제일 당황스러운 건 러닝머신에 오르고 나서였다. 각도를 조절할 수 없다니! 항상 각도를 13 이상으로 높여두고 걸으며 적은 시간 많은 땀을 내는 최고 효율을 누렸는데 이 노랗고 오래된 러닝머신에는 버젓이 [Incline 기울다] 버튼이 있었지만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긍정적이게도 유산소 대신 맨몸 근력 운동에 용케 집중해 본다.


공간 적응력의 끝을 달렸다.


찜질방 바이브에 러닝머신도 없다친 이 운동장에서 나는 내게 맞는 무게의 덤벨을 찾아다니고 스텝박스의 높이를 조절하고 스쿼트의 알맞은 깊이를 찾아 섬세한 허벅지 근육에 집중했다.


나의 허용 가능한 움직임을 연구하는 이 시간은

언제나 힘들고 오기 싫고 참 소중하고 그렇다.


그 외에도 엇차 엿차 어기엿차 와 같은 이상한 기합소리가 난무하는 고인물 아저씨들의 기가 막힌 출석률, 에어컨의 기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냉방상태, 세월아 네월아 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화장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 같은 정수기의 상태 등을 견뎌내며 마치 히말라야에 오르는 듯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3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겉으로 대충 봐서는 모를 일들이 많다.      


집 말고도 내가 머물 다른 공간을 유심히 살피고 알아보는 일, 그렇게 택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점들에 맞서 싸워보는 경험, 나와 맞지 않는 구석을 찾아내고 더 나은 선택지를 꾸역꾸역 찾아보는 것, 그런 것들에서도 나를 배웠다.


허벅지가 탄탄해진 자취생은

조금 더 멀리 있는

최신식의 헬스장을 찾아 떠났다.



이전 11화 도착했다 내 노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