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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28. 2024

커스터마이징

정확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가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고급스러운 음식도 아닌데 괜스레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 처음 서브웨이를 갔던 건 그 샌드위치를 좋아하던 친구를 따라서였다. 그때 서브웨이의 제품 커스터마이징 방식은 참으로 놀라웠지만 음식에 크게 호불호가 없었던 나에겐 꾀나 어려운 시스템이었다.  


빵의 종류부터 치즈, 야채, 심지어 소스까지 그 많은 선택지를 고르는 일에 실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직원들 앞에서 빨리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초초함이 더해져 더욱 진땀 나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친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내가 렌치라는 소스를 좋아했던가 갸웃거리며 겨우 주문을 마쳤다. 휴.


반면 취향 한 번 확실한 친구는 자기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다. 올리브오일에 굳이 소금을 또 굳이 후추까지 냅다 뿌려달라 했다. 싫어하는 건 과감히 빼버리는 추가적 서비스도 당당히 요구했다. 어린시절의 나는 그 모습이 좀 멋있어 보였다.


"난 요즘 진짜 착한 사람은 정확한 사람 같아요."

드라마 <멜로가 체질> 대사가 생각났다.


진짜 남을 위해서는 남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내가 정확해져야 했다.

 



집에서의 커스터마이징은 7번 방에서 시작됐다.

그 첫 번째 타깃은 책상이었다.


기본 규격의 저렴한 조립식 책상은 조립이 간편하고 가벼우면서도 나름 오래 쓴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신체 구조에 맞출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앉은키가 좀 큰 나에겐 기본 규격 책상의 높이는 너무 낮았다. 노트북은 선반에 올려도 낮게 느껴져 두툼한 서랍장 위에 두고 사용했고 목과 어깨 결림은 언제나 한 몸이었다.


노트북을 오래 사용하면서

이 책상 자체의 높이를 올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역시 불편해야 움직인다. 그러나 야심찬 다짐을 가로막은 첫 번째 문제는 올리고 싶은 높이가 기존의 ‘책상 높이 조절기’ 에 비해 턱없이 높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뭔가를 받쳐야 하는 책상다리가 너무 얇은 철제 프레임이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전전하다

자취생의 유토피아, 다이소에 방문했다.


몇 바퀴를 돌다가 고심 끝에 발견한 건 세탁기나 냉장고 모서리를 받치는 딱딱한 받침대였는데 그걸 다리 너비만큼 잘라서 여러 개를 붙여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가져와서 바로 재단에 들어갔다. 단단한 듯했지만 칼로 금방 잘렸다. 자른 받침대 조각들을 양면테이프로 붙여 낑낑대며 책상을 들어 6개의 다리아래 착! 도킹에 성공했다.  


겨우 5센티 정도 올렸을 뿐인데도 앉은 자세가 훨씬 편했다. 진작 이렇게 할걸. 그렇게 사용한 지 두 달쯤 지나 5센티 받고 5센티 더 가 본다. 완벽하다.


내가 정확해지고 샌드위치는 더 맛있어졌고

글을 쓰는 게 한결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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