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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23. 2024

사실 제 집입니다

휴먼다큐 <자취 4년차의 집 구하기>

집주인 할아버지는 전화로 한참을 미안하다고 하셨다. 바뀐 정부의 정책과 이런저런 이유들로 지금 살고 있는 월세를 전세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힘들 때 월세도 깎아줄 정도로 잘해주신 할아버지가 이렇게 거듭 사과의 말로 매 호수마다 전화를 돌리시는 건 아닌지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4년 전이었다. 여기 햇살방에서 첫 독립을 시작한 게. 항상 잘 정돈된 분리수거함, 매일 빌라 구석구석을 살피면서도 세입자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시던 사모님, 좁은 원룸에도 햇살이 기가 막히게 잘 들어오던 그곳은 나의 작은 낙원이었다. 그래 4년이면 오래 살았지. 때마침 집에서 좀 멀리서 일을 하고 있어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사 가겠습니다."

"그래요. 미안해요. 한 달 정도 시간을 줄 테니

충분히 둘러보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세요."




하지만 나는 간과했다.

4년 만에 무섭게 올라버린 서울의 월세를


적당한 매물을 찾고 전화를 해서 부동산 A에 찾아가 차를 타고 방 1을 보고, 다시 차를 타고 방 2를 보고, 그러다 지쳐 “감사했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럼 또 뵙겠습니다.”를 얼추 세 번 정도 반복했다. 대체로 방의 상태는 햇살방보다 훨씬 열악했고 월세는 십오만 원 정도가 더 비쌌다. 누우면 끝나는 방의 크기 혹은 앉으면 무릎이 문에 닿을 것 같은 화장실도 있었다. 만만치 않았다. 서울 월세.


"웬만하면 어플로 집 알아보지 마세요"


부동산 B 차를 타고 또 다른 지겨운 반복을 이어가던 길에 직원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허위 매물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집 잘 구하는 법 영상을 백날 봐도 이렇게 현장에서 듣는 말이 귀에 더 쐐기를 박는다. 귀찮다는 이유로 보기 쉽게 정리된 어플을 사용했는데 생각을 좀 바꿔봐야겠다 싶었다.  


어느 날 아침, 직원의 말을 듣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아주 괜찮은 매물을 발견했다. 예산을 조금 초과하는 금액이었지만 하루도 살고 싶지 않았던 다른 원룸에 비해 아주 깔끔하고 쾌적해 보였다. 입이 바짝 마르는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었다.


여기구나.


나는 바로 부동산에 연락했다. 어떤 남자가 벌써?라는 느낌으로 전화를 받았다. 바로 다음날 집을 보기로 약속했고 운 좋게도 나는 첫 번째였다. 그렇게 사막 같은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사실 (책상을 짚으며) 제 집입니다.”


뜻밖의 집밍아웃이었다. 아, 하고 중개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당근마켓 직원들도 당근하지 않겠나 싶어 상황을 이해했다. 이거 재밌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근처에 더 좋은 매물이 있어 이사를 가려고 집을 내놨는데 이렇게 바로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사실 그곳은 올린 지 하루 만에 방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고 요즘 전세사기 때문에 월세 수요가 높아져서 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난생처음 찾아간 중개인의 집은 2년 차 신축 건물에 주변으로 둘러봤던 다른 원룸들보다 평수도 넓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전체 호수 중에서도 그 방이 가장 넓었다) 방은 큰 7자 모양의 구조였는데 문을 열자마자 집안이 모두 보였던 햇살방과 달리 코너를 꺾어야 일자로 깊숙한 방이 보였기에 구조적으로도 훌륭했다.


햇살방만큼 해가 잘 들지는 않았지만 창문은 3개나 있었고 큼직한 화장실에도 작은 창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무엇보다 세탁기가 싱크대와 분리되어 작은 방으로 따로 있는 게 가장 맘에 들었다. 더 이상 덜덜 거리는 세탁기 탈수 소리를 피해 칼질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컨디션과 구조에, 감당 가능한 예산 오버, 여길 계약하는 것이 옳았다. 안 그럼 내 뒤로 달려들 월세 추종자들에게 빼앗기거나 누우면 끝나는 방들 중 하나로 들어가기 십상이었다.


"계약할게요. “




첫 이사를 엄마가 함께 해줬다면 두 번째 이사는 집주인 할아버지와 사모님께서 함께 해주셨다. 그저 이삿짐센터의 직원이 물건을 옮길 때마다 엘리베이터 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지켜주시고 물 한 병 음료수 한 병 건네주신 게 전부였지만 그게 그렇게 감사했다.


현관에서 이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내게 갑자기 사모님이 작은 봉투를 건네시면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갑자기 우셨고 나도 따라 울었다. 사모님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OO 씨 결혼식까지 내가 꼭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헤어져서 너무 아쉬워요.

그곳에서도 잘 살아요."


봉투엔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있었다.

한동안 목이 좀 메었다.


어두운 현실에 지쳐있을 때 자기 집이라던 그를 만났고,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는 나를 딸처럼 대해준 이들을 만났다.


혼자 산다는 건 그저 마냥 혼자가 되는

차가운 경험이 아니라

나의 인간 체험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꽤 따뜻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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