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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22. 2024

괜찮음의 의심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4년 정도 앉았던 의자가 있었다. 회색빛에 그다지 부드럽지도 까슬거리지도 않은 패브릭 의자였다. 좁디좁은 원룸의 인테리어를 나름 고려해서 골랐던 가장 합리적인 제품이었다. 하루 만에 배송 와주는 것도 감사한데 몇 개의 나사만 박으면 의자가 하나 뚝딱 완성되니 자취생에게는 참 감동적인 제품이 아닐 수 없었다.


새 의자에 사뿐 엉덩이를 앉혀봤다. 너무 푹신한 의자는 별로인데 의자가 살짝 단단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3만 원도 하지 않는 의자와 4년을 함께 했다. 괜찮다는 착각으로.


불편한 것의 이유를 찾는데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다. 245의 운동화를 신다가 양말을 벗으면 발견되는 벌겋게 부어오른 새끼발가락을 10년간 바라보면서도 아픈 게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한동안은 그 괜찮은 의자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었는데 어쩐지 서서히 골반과 허리가 불편해오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운동화에 발을 욱여넣듯 내 몸을 의자에 맞추기 시작했다. "이럼 좀 괜찮네."


불편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불편한 것에 나를 맞추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의자가 잘 맞는 건지 신발이 잘 맞는 건지 나에게 묻지 않았다.


자아를 잃은 무조건적인 복종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했다.


어쩌면 자취라는 건 이렇게 의자를 몇 개 신발을 몇 켤레 갈아치우면서 "네가 원하는 건 도대체 뭐야?" 하고 스스로에게 끈질기게 질문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또 그 중간중간 몰려오는 이 정도면 괜찮네의 늪에서 허우적 대다 몸이 어디 하나 상해서야 이거 당장 바꿔야지 하며 없던 실행력을 무한정 발휘한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괜찮은 건 없다." 


배우 차승원 씨가 이런 얘기를 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내뱉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괜찮다"는 말이 좋고 싫음의 선택을 보류하는 갈팡질팡 무책임한 말이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나는 불편한 걸 알면서도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보류하고 스스로를 제일 뒷전으로 미루며 괜찮다는 말로 변명하며 살았을까.


치열한 자문자답의 시간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으른 자취생은 이제 255 사이즈에 발볼이 좀 더 넓은 운동화를 굳이 찾아 신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의자를 검색하는 데 애를 쓴다.


분명 애를 쓴 만큼 나와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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