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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21. 2024

원룸 생명체  

자취방에 불어닥친 코로나19

뜨거운 방랑은 코로나의 습격으로 시작됐다. 오래 일하고 싶었던 회사가(이것은 아주 의미가 크다) 코로나로 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급기야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회사 근처에서 처음 독립을 시작한 만큼 직장상실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취생은 그러한 좌절감이 스스로를 망치게 두어서는 안 될 책임이 있었다.


나와 집,

이 불변의 세트메뉴를 끝까지 지켜내야 했다.


더 바짝 마스크를 고쳐 쓰고 100원이라도 벌어낼 심산으로 인구 938만을 자랑하는 위험천만 서울 사회에 온몸을 내던진다. 그렇게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됐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무너졌을 때, 홀로 총알을 피해 꽤 긴 시간을 꿋꿋이 버텨냈다. 슈퍼항체의 쾌재를 부르며 승리를 거의 확신했다. 허나 뒤늦은 공습은 힘없는 자취생에게 예고 없이 그리고 자비 없이 달려들었다.


기다란 면봉이 나도 느껴본 적 없는 콧구멍 저 깊은 곳까지 침투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매끈했던 목구멍은 뾰족한 가시들로 가득 차 아밀라아제를 부드럽게 넘겨내지 못하고 따끔한 고통을 하루 20000번쯤 선사했다. 7일간 ‘아’ 정도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처방받은 코로나 약에 대한 반응도 뚜렷하지 않아 이러다 말을 못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들이 머리를 휘감았다.


여느 때와 같이 혼자 누워 있는 집 안이었지만 그 공기는 어디라도 크게 무너진, 텁텁한 먼지로 가득 찬 구조현장 같았다. 혼자 이 재난을 견뎌내기에 자취 초보의 정신 상태는 그렇게 강인해 보이지 않았다.


의지할 곳은 오직 여기, 매캐한 원룸뿐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들, 흐트러진 침구, 개수대 가득 쌓인 먹다만 그릇들, 곰팡이 핀 화장실, 책상 가득 둔 약봉지, 하루종일 마신 차와 잘 시키지도 않는 배달 음식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치울 기력은 없고 살고자 하는 의지만 남은 처참한 현장이었다.  


그 일 년 같은 10일 동안 나는 병에 대한 무기력함과 그럼에도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를 집안 구석구석 살포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 방구석에서 고독사를 했다면 청소 업체에서는 '이 친구 살려고 노력을 많이 했구나' 했을 거다.


너저분했던 6평 남짓 구조현장에 마침내 햇빛이 들어왔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곳에서의 삶을 이어 나갔다. 인간의 컨디션에 따라 함께 오락가락 장단 맞춰주는 이 코딱지만 한

원룸도 어쩔 땐


나와 같은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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