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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16. 2024

이동의 미학

6평 원룸에서 살아남기

좁은 원룸에서도 일 년에 두어 번은 대대적으로 가구를 이동했다. 가구랄 것도 크게 없다는 게 좀 슬프지만 그렇게라도 변화를 주지 않으면 쉽게 답답함을 느꼈다. 고작 몇 발짝 안짝으로 옮기는 건데도 그게 그렇게 새롭다.


독립을 준비하면서 내게 가장 필요한 가구는 침대와 책상이었다. 원룸에 그런 옵션이 없었고, 사실 그 외의 가구를 들이는 일은 다소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6평짜리 원룸에 글을 읽고 쓸 책상과 편히 잘 수 있는 침대면 됐다고, 그마저도 본가에서 쓰던 매트리스와 인터넷으로 구입한 저렴한 조립식 책상으로 나와의 합리적 합의를 보고 들어왔다.


문제는 긴 직사각형 구조의 방에 어떻게 테트리스를 해보느냐였다. 제일 안쪽에 창문이 있으니 그쪽으로 매트리스를 두고 싶었다. 이번엔 방향이 애매하다. 가로로 두면 꽉 차서 창문을 열려면 침대를 밟고 올라가야 했다. 그렇다면 세로로 둔다. 다음엔 책상. 침대 앞에 두자니 너무 답답하고, 안쪽에 넣자니 행거를 둘 자리가 마땅치 않다. 결국 답답함을 택하고 책상을 침대 앞에 두어 안쪽에 행거 둘 자리를 마련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나름 확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변화는 빠르게 찾아왔다. 어떤 날엔 책상으로 가려진 시야의 답답함을 견딜 수 없었고, 어떤 날엔 창문 뭐 몇 번이나 연다고 매트리스를 가로로 스르륵 밀어 봤다. 이렇게도 자보고, 저렇게도 앉아보고, 이렇게도 두고, 저렇게도 두었던, 참으로 방정맞은 날들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게 물건을 옮겨보는 일은 생각보다 멋진 일이었다. 갈대처럼 움직이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적이고도 아주 중요한 이벤트였다. 때론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생각도 변했고, 수용하지 못할 것만 같던 것들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언제나 변화 중이었고 

매일이 방정맞은 이곳은 '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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