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의 처방전
같은 날에 어떤 시와 어떤 노래와 어떤 사람이 찾아와 주는 일은, 흔치 않아서 더 경이롭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주로 월요일 새벽에 많이 꾸는 것 같긴 하다. 새벽 4시, 5시, 6시, 7시까지 알람을 고쳐가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전쟁이 시작된, 익숙한 동네를 마구 달리며 도망다니는 꿈이었는데 꿈속에서 어찌나 숨 한 번 차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지던지 최대 공포감에 최대 심폐력으로 정리되는 꿈이랄까. 꿈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파워긍정왕답게 이렇게 해몽해주었다.
"그것 참 좋은 꿈이다. 숨이 차지 않았다는 것,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숨은 차지 않았지만 악몽은 악몽. 전장 같은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일어나는 맛이 결코 개운하지 않았다.
악몽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개운치 않은 월요일 아침 출근길, 그날의 첫 번째 시 한 편이 나를 찾아왔다. 제 발로.
지하철에서 매주 세 권의 책을 추천하는 뉴스레터 《북플래터》139호로부터 온 시였다.
<한밤중> - 아몬도 타다시, 샤론 도 제공
"한밤중에 자꾸 잠이 깨는 건
정말 성가신 일이야."
한 노인이 투덜거렸다.
다른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데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지. 안 그런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 류시화,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북플래터》139호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vSWV7B6Ne9FCXJ8EX3BH2gQmidw-00g)
아직 살아 있기에 악몽도 꿨다는 걸 확인했지만 낄낄거릴 기분은 아니었다. 오늘은 또 누가, 무엇이, 언제, 어떻게 내 하루를 괴롭힐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얼굴 빛은 -아무도, 아무것도, 아직, 어떻게,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카페인부터 충전하자며 터덜터덜 회사 앞 단골 카페에 들렀다. 나처럼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또래의 여성이 이제 돌이 갓 지났을 것 같은 아기를 안고 키오스크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한 팔로 안은 아이가 밑으로 쳐진다 싶으면 다시 '잇차!'하고 여러 번 고쳐 안으며 주문을 끝낸 엄마는 테이크아웃을 기다리는 소파에 -박상영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5만 명쯤 앉았다 일어난 것 같은'- 털썩 앉아 창밖을 응시했다.
뒤이어 주문을 마친 나도 똑같이 맞은편 다른 소파에 털썩 앉아 휴대폰을 보는데 문득 작고도 반짝이는 시선이 느껴졌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내 휴대폰을 -지금 생각해보니 뒷면에 붙은 곰돌이 그립톡을 보고 있던 것 같다- 보더니 갑자기 '꺄아아아르르르' 웃으며 카페 음악에 맞춰 '말하는 선인장 인형'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고요하고도 멍하다 못해 나른해지려던 카페는 아기의 움직임을 감지한 엄마와, 아기의 춤을 실시간으로 직관한 사람들이 동시에 '빵' 터뜨린 웃음과 함께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됐다. 실제로 그 순간, 그곳의 조도가 조금 높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기는 사람들의 반응에 더 크게 웃더니 더 큰 선인장춤을 추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기의 움직임에 맞춰 함께 들썩였다. 분명 내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 같은 노래가 세상 신나는 노래로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본 노래라 바로 검색을 해봤는데 노래 검색 결과를 보자마자 조금 더 경이로와졌다.
"Healer"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며...
주말이 지나고 꼭 월요일 자정을 넘기면 꾸게 되는 깊은 밤의 악몽이나, 월요일 아침마다 쓸데없이 이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100가지 이유' 같은 생각들 사이로, 단순하고 가벼운 농담 같은 시 한 편, 무거운 생각들을 털어버리게 하는 신나는 노래 한 곡, 그리고 그 순간의 그저 빛이자 '힐러'였던 아기의 웃음과 선인장 인형 춤의 조합을 가능하다면 아주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