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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26. 2022

떠남을 응원해준 손길들

다들 길을 내어주었다.

발리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후 일을 그만두는 것은 누구나 그렇듯 어려운 일이었다. 요가 강사는 여러 곳에 수업을 나가기 때문에 그만둔다고 여러 번 말해야 했다. 나는 3곳에 수업을 나가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곳은 정말 정말 애정 하는 원장님이 계신 곳이었고 한 달 반 뒤에는 함께 양양 요가 리트릿도 준비하고 있어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


원장님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내가 보낸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보셨다. 신기하게도 그만두어 내게 자리를 넘겨주는 선생님이 부산에서 내 첫 요가 원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요가원도 정말 독특하고 너무 예뻐서 탐나던 자리였다. 긴장한 내게 첫 질문은 “은하 선생님 장점이 뭐예요?”라고 물으셨다. “ 관찰이요” 툭 답이 나왔고 원장님은 활짝 웃으셨다. 답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합격할 것 같았다. 원장님은 그렇게 늘 합격 같은 웃음을 지어주셨다.


원장님 남편은 호주 분이셨는데 난 금발의 외국인을 그렇게 가까이 본 게 정말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 이후 처음이었다. 갑자기 외국인이 궁금해졌다. 남편 분이 잘생겨서 더 그럴 수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파혼했으니 한국 남자는 더 이상 안돼’라는 생각도 있었어서 인지 새로운 길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발리든 호주든 그쪽으로 가야겠단 생각이 한번 더 들었던 순간이다.


두 분은 틈틈이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밥을 자주 사주시며 질문을 참 잘하셨다. 서울에서 일하기 바빠서 서핑을 가지 않지만 얘기 나올 때마다 흥분하는 내게 “서핑은 그래서 언제라는데요?”라고 하지 않고 “은하 선생님은 왜 서핑을 좋아해요?” 물으셨다. 서핑을 얘기하면 아무도 왜 좋아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거 물에 떠있는 거 아니냐, 내 친구도 하더라, 나도 해야 하는데..’와 같은 자기 기준의 답변만 있었다. 내 마음을 자주 궁금해하시는 두 분이 참 좋았다. 나는 “서핑을 하고 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게 정말 전부였다. 하지만 내겐 가장 소중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두 분이었기에 더 말하기 어려웠다. 어려우니 더 멍청하게 말했다. 우물쭈물거리다 던져버렸다. “원장님, 저 지금 발리 가야 해요.”


원장님은 며칠 동안 얘기를 안 하시고 인사만 하시다 이내 곧 웃으며 나를 잘 보내주셨다. 다음 선생님을 구하기까지 한 달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드렸지만 함께 하기로 한 리트릿 전에 그만두게 되어 손해를 끼쳐드린 셈이다. 다른 원장님이면 이 바닥에서 매몰시켜버린다며 으름장을 놓거나 앞에서 가시 돋친 말을 툭툭 했을 텐데 원장님 부부는 웃으며 그 자리에 계셨다.


나는 인천예술회관역에서 남영역으로 돌아오는 10시경의 지하철 안에서 계속 울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계속 울었다. 미안함도 있었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선할까 싶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내가 속상해서 청승맞게 울었다.  분이 여전히 최선을 다해 나를 응원해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분이 들고선 주체할  없이 울었다.


다른 요가원 원장님들도 아쉬워하시며 외국에 별거 없다 하면서도 맛있는 것을 먹이며 배웅해주셨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서울로 대학 가는 것도 염려하던 엄마는 그냥 가라 했다. 엄마의 남자 친구는 화가인데 “세상의 중심은 은하라는 문구를 새긴 그림을 주셨다.


마음을 한번 먹으니 모두 배웅의 손길을 흔들어주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없으니 모두가 길을 내어주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모두가 길을 내어주니 가야 함을 느꼈다.  혼자만의 힘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감히 말할 수가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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