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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26. 2022

발리로 나를 이끈 플러팅.

마음이 얘기하면 현실로 나타난다.

나 스스로 엄마이자 아이가 되기를 결심한 후 서울에서 은하라는 아이를 잘 돌보려하며 지냈다. 그러다 온몸으로 아이처럼 놀기위해 발리로 오기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요가 강사로써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을 때 툭툭 수업이 나왔을 정도가 되면 나는 자신감 있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워크숍도 듣고 수련도 했다. 너무 열심히 운동하고 쉬지 않으니 살이 쪘다. 좀 쉬어가야겠다 싶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어 발리로 갔다.


1년 동안 참았던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1년 전에 만났던 발리 서핑 강사 ‘아욕’에게 다시 강습을 듣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서핑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없을 만큼 힘이 빠져서 숙소로 돌아와 눕거나 두근대는 가슴을 가지고 명상을 했다. 몸에는 힘이 빠져있지만 끊임없이 길이 나는 발리의 긴 파도를 타고나면 너무 재미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기 시작하면 자주 눈물이 났다. 발리에서는 더 자주 눈물이 났다. 손끝 발끝까지 느껴지는 따뜻한 빛과 바람들이 손끝과 발끝 온몸의 틈 사이까지 다다랐다. 몸의 감각들이 따뜻함으로 깨워지면 감사함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쾌락도 아닌 몰입도 아닌 이 따뜻함으로부터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어린아이였을 때 한 여름 선풍기 밑에서 긴긴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노란 시간이 떠올랐다. 배터리 충전 표시에 빨간색으로 채워졌던 부분이 점점 차올라 초록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3일 정도 반복했다. 발리이지만 혼자라서 서핑하고 명상하고 낮잠 자고 수영하고 가까운 곳에서 밥을 먹고 선셋을 보고 잠들었다. 별일이 없었다. 좋았다.


3일 정도 지나니 이제 사람이 만나고 싶어졌다. 애어 비엔비에서 발리 현지 음식 만들기를 신청했다. 일본인과 발리인의 피가 섞인 60대 할머니가 운영하는 애어 비엔비 체험이었다. 3~4가지 음식을 함께 만들고 나누어먹었다. 잘 못하는 영어지만 모두들 천천히 말해주고 귀 기울여주었다. 휴가이니 다들 마음이 한가로웠던 게다. 한가로우면 우리는 이렇게 좋다. 집밥 같은 밥과 편안한 친구들과 함께하니 참 좋았다.


애어 비엔비 체험을 돌아와 짱구 데우스 사거리에 오토바이를 데고 쇼핑을 했다. 그 당시 조개목걸이는 너무 예뻐 보였다. 고르고 골라 발목에 하나를 찼다. 이제는 조개목걸이를 한 친구를 보면 발리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구나 한다. 귀엽게 본다. 발리에는 또 다른 키치 한 주얼리들이 참 많다. 쇼핑을 하고 돌아와 주차장에서 오토바이를 낑낑대면서 빼고 있는데 뒤에서 “하이”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도 무거운데 말도 시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빨리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 같아 땅만 보고 더 재빨리 오토바이를 빼기 시작했다. “Where are you from?”이라는 말이 들렸을 땐 긴장이 풀렸다. 의무가 아닌 관계의 말이었다. 고개를 들려보니 광대가 예쁜 외국 남자애가 아주 예쁘게 웃고 있었다. 그 남자애는 내 에코백을 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한국말까지 하니 마음이 스르르 풀렸고 서로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1만 인플루언서라니 오히려 안심이 갔다. 헬스 코칭을 하고 지내는 사람이었고 글이나 말하는 것이 깔끔해 정신이 맑은 사람이라는게 느껴졌다. 저녁에 바로 디엠이 왔다. 밥 먹자고. 그 애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말이 통했다. 한국 여행 경험도 있고 태국에서 오랫동안 노매드로 지낸 경험이 있는 이 친구는 아시아 여자사람의 영어 속도를 이해하는데 능해 보였다. 마음에 들었다. 남은 4일 동안 우리는 두 번 더 만났다. 마지막 날에는 방 안에서 같이 drake 노래를 틀고 춤을 췄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똑같이 좋아하고 함께 춤출 수 있는 친구. ‘애런’이 참 좋았다.


애런은 우리가 2번째 만난 날 저녁에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 너는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성취하고 싶어” “If you die tomorrow, what do you want to acheive?”. 발리에서 나는 꿈을 꾸듯 느슨해져 있는 상태라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 나는 누군가에게 차를 내어주면서 미소 짓고 싶어.” 내가 acheive의 뜻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죽기 전에 무언가 부여잡고 싶지 않았고 그냥 죽기 전 내 모습이 이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애런은 “그건 마음에 관한 이야기고, 네가 성취하고 싶은 건?” “없어” “오케이” “너는?” 애런이 대답했다.”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마인드도 몸도 건강하게 돕고 싶어”


애런은 나와 같은 89년생이다. 영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지하철에서 아빠를 도와 핫도그를 팔며 어린 시절을 지냈지만 태국에서 온라인으로 돈을 버는 법을 잘 아는 어른과 함께 일하며 돈도 많이 벌어보았고 헬스 코칭으로 노매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돈도 명예도 이미 다 가진 애런은 마인드 코칭이 하고 싶다고 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실생활에서 소소하게 남을 잘 돕는 편이지만 어떠한 방편을 통해 남을 도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조금 놀랬다. 저게 진심인지 자아실현이라는 대유행의 한 흐름인지 나는 모르겠었다. 하지만 애런은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을 자주 궁금해주었다. 지금 마음이 어때, 기분이 어때, 무얼 하고 싶어? ,


짧은 일주일간의 발리 휴가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자꾸 발리가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애런이 자주 생각이 났다. 1년 전 꼭 발리를 오랫동안 경험하겠다 결심했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인 것 같았다. 비록 플러팅이였지만 발리로 가야하는 것은 지금이란 신호같았다. 애런이 있는 발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하고, 행여나 내가 잘못되면 도와줄 사람도 생긴 겸이니. 나는 정확히 세 달 뒤 발리로 다시 떠났다. 애런이 아니었으면 나는 발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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