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 Oct 30. 2022

우리의 플러팅 넘어, 고해.

고백해 그리고 위로해.

발리로 나를 이끈 플러팅 남 애런과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며 데이트를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변을 거닐고 집에 돌아와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며 바다를 걸으며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 영어가 늘었다. 헬스 코치인 애런은 마인드셋에서 관심이 많았다. 너무 많은 운동을 하지 않고 핏한 몸을 유지하는 법, 깨끗한 정신으로 원하는 것에 생산적으로 다가가는 것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다. 킨스트 레치와 같은 관절 움직임을 바다에서 연습하며 놀기도 했고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단백질을 섭취해서 더 빠르게 핏 해지는 법을 늘 얘기하는 덕분에 여기서 소고기를 엄청 먹고 나는 근육을 많이 키웠다. 채식이 맞지 않던 나는 애런의 이론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단백질을 먹고 탄수화물과 야채를 줄일수록 핏 해졌다. 혼자 비즈니스를 운영한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나보다 더 자주 명상했으며, 일찍 일어나고 늘 같은 시간에 앉아 일을 하고, 데이트를 늘 며칠 전에 잡고,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늘 마음의 소리르 들으라 했다.  너무 열정적인 탓에 정신적인 측면이 덜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애런은 분명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20살 때 온라인으로 돈을 버는 법을 배워야겠다 생각해서 형편이 좋지 않은 부모님께 돈을 빌려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 워크숍을 듣고 그 워크숍에서 시키는 대로 부를 잘 축적한 사람이니까.


나는 이러다가 애런이랑 결혼하면 어쩌지 싶을 정도로 좋았다. 내 생애 외국인 남편은 생각도 안 했는데, 파혼도 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런데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다. 태국에 두고 온 여자 친구가 있는 걸 발견했다. 인스타에서 애런과 그 여자애 사진이 갑자기 딱 뜬 거다. 우리가 자주자주 만나다 본격적인 연애를 앞둔 느낌에서 그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애런은 태국을 다녀온다 했고 그 여자애 인스타를 통해 나는 둘이 아직도 만나고 있는 걸 봐버렸다.


태국에서 돌아온 애런과 바다 산책을 갔다. 애런한테 물었다. “너는 왜 나한테 여자 친구 하자고 안 해?” 그러니 있는 대로 얘기해주었다. 태국에 여자 친구가 있었고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너무 의지해서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자기는 섹스 중독자인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말했다. 사실 나는 “파혼한 적이 있어. 늘 버림받을 까 봐 걱정돼”라고.


그 일 뒤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이렇게 좋아하는 남자에게 말하고 나니 마법에 풀린 사람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건 외국에서 별거 아니라는 듯 대하던 애런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마음에 대해 얘기하고 각자의 그늘에 대해 얘기하려고 만난 사람들 같았다.


‘1 사람당 1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온다’는 나의 신념에 비추면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 되려고 만난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엔 바다에서 오랜만에 한국인 서퍼를 만났다. 서핑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다시 만난 이 남자애는 긴장한 얼굴로 서성이다 우물쭈물 번호를 물어봤다. 그다음 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만났다. 공룡 상인 얼굴이 딱 마음에 들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마 화가 가득해 보였다. 조심해야지 그랬다. 밥을 먹고 스케이트 타는 것 구경을 갔다.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는 보더들을 보면서 우리는 연애하고 있냐고 서로 물었다. 그 친구는 자기는 연애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있다 했다. 아내의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나도 파혼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응원과 위로 반가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플러팅으로 다가와 치유로 끝난 관계들. 고맙고 응원한다.

이전 15화 발리에 온 두 가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