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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30. 2022

현재를 충분히 사랑해야 떠날 수 있다.

늘 발리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2년 반을 보낸 시간 동안 늘 발리를 생각했다. 그리워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아주 많이 그리워했다. 그리고 늘 주시했다. 마음 한 점에 발리를 두었다. 아직도 발리를 잊지 못한다고 지겨워하는 이도 있었다. 참으로 다행인 건 코로나로 걱정이되 돌아오라며 비행기 티켓까지 보내준 엄마는 날이 갈수록 “그래, 언젠가 다시 꼭가, 가서 살아”라고 했다. 엄마는 지독 시리 밉다가도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다. 엄마는 물리적으로 가까이하면 마음으로 멀어지고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마음이 가까워지는 존재다. 우리는 그렇게 늘 줄다리기를 한다. 멀어질수록 사랑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발리를 갈 수 있었다. 코로나로 준비해야 하는 서류야 마음만 먹으면 뚝딱인데 이상하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게 눈에 들어오는 건 그날그날 만나는 회원님들이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더 몸이 잘 움직이고, 이렇게 하면 시원하실까라는 고민도 재미있었고, 눈에 띄게 달라지고 하루하루 내게 애정을 품어가는 회원님들을 보면서 부산도 이리 좋을 수 있구나. 나와 회원님이 만나는 공간에서 나는 에너지를 받았다. 그래서 더 망설여졌다. 이리 좋은데 어딜 가나.


해운대에서 ‘해운대 바다 요가_물의 시간’도 오픈했다. 나와 같은 홀로 여행자들이 자연에서 온 몸으로 뒹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셨다.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어떤 흐름을 가진 사람인지 얘기도 나누고 차도 나눠마셨다. 잘되고 있었지만 마음 깊숙이 검은 모래를 밟고 싶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좋던 날이었지만 마음에서 그렇게 검은 모래, 바투 볼롱의 파도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다시 갈 것이라는 것.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조금 투덜거렸다. 빨리 가고 싶다고. 하지만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요가 수업 회원님이 불만을 얘기하셨다. 본인 무릎이 안 좋은데 아쉬탕가 홀딩이 너무 기다며 “예전 선생님은 안 그랬는데!!”라는 무례한 말을 던지셨다. 원래 센터에서 요주의 인물이기도 하셨고 홀딩을 두는 데는 더 안정적으로 기반을 다지 시라는 의도를 두었기에 흔들리지 않을 법한 일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화가 났다. 내가 이렇게 성심성의껏 했는데 비교 같은 말을 던지는 회원님이 있는 곳에서 수업하다간 나 여기까지 밖에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줌마들이 있는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수업하기 싫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3일을 보내고 나는 수업 후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한 달은 쉬고 오자. 그리고 제주도를 가든 발리에 자리를 잡든 일단 떠나자. 지금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떠나자.


이 글을 쓰는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부산을 사랑하고자 정말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수업을 열면, 그런 공간을 찾으면 부산을 좋아하겠지 하고선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빈 느낌. 부산이 싫은 게 아니라, 나는 부산을 충분히 사랑했지만 발리를 더 사랑했을 뿐이었다. 가야 했다.  그리고 난 발리에서 글을 마무리 짓고 있다. 발리에 휴가 온 지 4일 만에 첫 한인 요가원에 취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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