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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30. 2022

욕망을 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모두의 바람은 귀하다.

나는 나의 요구, 욕구, 욕망이 늘 부끄러웠다.


9살 때 동생이 엄마에게 혼나면서 체육대회에서 받아 온 선물들을 압수당했는데 그러면서 엄마는 ‘은하 네가 가져라’라고 홧김에 말했다. 나는 정말 그때도 눈치가 없어서 ‘오예!’하고 외쳤다. 엄마는 더 화가 나서 ‘동생이 혼나는데 기분이 좋냐? 욕심도 많다’ 그랬다.나는 그때부터 욕심나는 모든 것들을 숨겼다. 더 욕심이 많아졌다. 욕심이 나면 놀래서 뒷걸음쳤다가 다 가져버리는 괴물 같은 힘도 생겨버렸다.


아쉬탕가 수련이 끝나면 탈의실에서 수련생들은 오늘 아사나가 잘 되었느니 말았느니 수다를 나누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시끄러웠다. 왜 저렇게 욕심내나 그랬다.

그게 재미인 줄 몰랐다.


핸드 스탠드를 연습하다가 발가락으로 착지해서 인대가 늘어났다. 어떤 선생님은 욕심부리다 다쳤다고 위로를 전해주었다. 표정은 위로였는데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평소에 내가 열심히 하는 요가원 청소, 데스크 업무를 뭐든지 열심히 하는 자기 할머니 같다며 싫어하던 선생님이 내게 그랬다. 나는 내가 싫어졌다. 뭐든 열심히 하는 내가 싫어졌다. 나는 이 선생님에게 조차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그게 욕심인지도 모르고 나의 부상이 욕심인가 의심해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몸을 잘 몰랐던 내 무지의 탓, 그냥 일어난 일 같았다. 그 일 이후로 요가 아사나에 관해 궁금하거나 도전해보고픈 마음을 욕심이라 치부하며 눌러 놓았다.

남자 친구를 좋아하니까 집착이 일어났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그런 내가 스스로 질려서 코로나 핑계로 발리에서 도망 나왔다. 남자 친구가 진짜 좋았을 뿐인데.

하타요가가 좋아서 선생님이랑 수련을 시작했는데, 좋아서 잘하고 싶은 마음, 시간을 투자했으니까 아사나를 얻고 싶은 마음, 또 무리에 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그 마음이 부끄러워서 수련 가면 수련만 하고 나온다.


나는 깨끗하고 순수하지 못하니까 욕구나 요구나 욕망이 떠오르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관념이 있다.


그런데 그냥 좀 관대하게 보면, 좋아하면 당연히 집착이 생긴다. 목표가 생기면 당연히 결과를 바란다.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과하게 시간과 돈을 쏟으면 바라게 된다.그걸 단순하게 욕망이라 치부하고 더럽다고 닦아내려고 했다. 내게 너무 미안하다.


문득 수련 전 명상시간을 갖고 앉아있다가 내가 바라는 것 ‘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그 중심에 서 있는 내가 바람을 느끼 듯 나도 누군가에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보낼 수 있는 거다. 기분 좋은 바람인지 나쁜 바람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나의 것도 남의 것도. 내가 원하는 욕망을 내가 내보낼 수 있는 ‘바람’으로 부르기로 하니마음이 편해졌다. 심지어 바람을 가진 내가 귀여워 보였다. 할 수 있다면 바람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아기가 무얼 요구할 때, 강아지가 밥을 탐낼 때 떠오르는 귀여운 감정.


모두의 바람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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