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양한 모습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발리에 오면 새벽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거나 서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커튼을 치고 조금 어두컴컴하게 지낸다.
그렇게 어둠이 없으면 삶이 너무 불타버리는 곳이 여기 발리다. 반짝거리는 것이 많아 스스로 어둠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낮시간도 내 방안은 어두운 명상공간이 되어버리는데, 자연스레 이 생각 저 생각을 관찰하게 된다.
샤워를 하고 나와 약간 어두운 방 안에서 바디크림을 바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문안을 갔을 때, 아빠는 15일째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있던 중이었다.
일을 쉬고 있는 동생이 아빠를 돌보긴 했지만 거동할 수 없고 말을 하기 힘들었던 시기라서 아빠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섬망 증상이 오셔서 많이 지쳐 보였다. 내가 도착해서 아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데 아빠 얼굴이 희미하게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작은 아빠가 도착하자 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옅은 표정의 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빠는 우리가 와서 믿음직스러웠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은 동생은 귀여워하고 나한테는 참 힘든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게 참 서러웠는데,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타이틀을 쥐고 살았는데, 문득 ‘믿음’이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싶어 눈물이 주르륵 난 것이다. 순식간에 이 모든 이야기가 지나가며. 그리고 나는 ‘믿음’을 바탕으로 굉장한 자유와 호기심을 가지고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하려고 했는데 안되었던 일들도, 잘하려 했는데 어긋난 관계도 모두 사랑 안에서 멈추고 이별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다.
신의 손길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를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 그가 그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들이 이루어내는 하나의 조화 같은 느낌이었다.
과하면 사라지게 하고 부족하면 채워지게 하는 자연의 이치 같기도 했다.
사랑은 모든 마음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수용하는 관계 안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은 내 안에서.
그리고 또 정말 많은 사랑의 표현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어찌 되었든 사랑을 표현하고 궁금해하는 마음만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물과도 같아서, 계속 흐르는 이 삶의 흐름이 좀 편안해졌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가장 정성스럽고 사려 깊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