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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Dec 16. 2022

산책하러 산으로 갑니다

등산이라 말하긴 그렇고 그냥 산에서 하는 산책

     


헬스장은 시간을 너무 뺏긴다.

오전 프로그램에 맞춰 갔다 오면 오전이 다 간다. 시간을 좀 더 일찍 내가 정하고 싶은데, 우리 동네 요가를 가보려 해도 오전 10시 시작이면 그 시간은 애매하다. 애 없는 오전에 운동 말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싶으니까.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던 중에, 이웃 아줌마가 등산을 같이 가줬다. 올라가는 데만 40분. 좀 쉬고 내려오면 거의 두 시간이 걸려, 그날 오후는 아무것도 못했다. 등산에 에너지를 다 쓰니, 이것도 아니다 싶었다. 저질 체력인 나에게 맞는 코스가 필요했다.



시간과 코스를 줄여야 했다.        

소요 시간을 정한다.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우리 집에서 산 초입까지 10분, 무리하지 말고 일단 10분만 올라간다. 등산이 10분, 내려오는데 10분, 다시 동네를 지나 우리 집까지 10분이다.  10+10+10+10=40분

딱이다. 이걸 넘어가면 하루가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집에 와서 씻고 머리 말리는 데도 에너지가 드니까. 오전에 너무 힘을 빼버리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오후에 집중을 못한다. 힘 빼지 말고 적당히. 운동시간을 잡을 때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잡는 이유는, 내 체력은 좀 누워줘야 기력이 회복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로를 미리 짜 본다. 누가 뭐래도 내가 걷고 싶은 코스로. 길이 평탄해도 이상하게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있고, 경사지지만 그 길 앞을 지나가고 싶은 곳이 있다. 그쪽으로 택한다. 걸어가면 몇 분 정도 소요되는지 파악하고, 지도로도 보는 것과 실제 걸어본 느낌을 비교해서, 최적의 동선을 지도를 보며 궁리한다. 그게 먼저다.            





나간다.

복장은 단순하게, 늘 입는 바지와 겉옷을 정해둬야 한다. 안 그러면 그걸 고르는 2~3분의 시간 동안 나가지 말아야 할 기가 막힌 이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면서,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시간을 정해둬야 루틴이 될 것 같아, 아침으로 정했다. 새벽에 가봤더니 마주치는 사람이 반갑지 않고 무섭고,  7시는 아이 등교 준비랑 겹친다. 며칠 동안 시간대별로 고루 다녀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 8시 30분 아이 등교하자마자가 딱이었다. 아이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더 좋다. 시간을 정했더니, 매일 같은 시간 마주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너도 왔냐, 나도 왔다. 서로 의지가 되는 느낌이다.       




소소한 행복이 있다.

정작 내가 산의 오르막을 오르는 시간은 딱 10분인데, 이때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헉헉대며 오른다. 흙을 밟으며 내딛으면 평소 안 쓰는 다리의 뒷부분이 기분 좋게 당겨진다. 고요한 나무 사이로 허공에서 숲 냄새가 난다. 피톤치드, 한 번 저장하면 2주가 간다고 했던가. 근거가 있든 없든 그렇게 믿는 쪽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오르막 등산의 매력이다.     



      



마무리는 계단이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14층까지 걸어 올라온다. 땀 난 몸을 씻고 나면 오늘도 나는 해낸 것이고, 다른 잡생각이 안 든다. 운동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김연아가 대답한 말이 인상 깊다.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지. 그래, 이제 나도 매일 할 수 있겠다고, 열흘쯤 됐을 때 오만함이 생겼었다. 더 어렵게, 힘든 코스로 만들어볼까.       



    

그런데 고비가 왔다.

12월 1일. 겨울이 되니 달라지는 게 있는데, 바로 일출시간이 늦어진다는 점이다. 6시에 나가면 깜깜하고 아주 춥다. 얼굴 손이 시릴 정도의 영하 기온이다. 이렇게 추운데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괜찮던 몸을 오히려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오후로 변경할까. 어차피 모든 일은 반복과 변주이므로, 어떻게 바꿔볼까 또 궁리에 들어간다. 근데 나 이 루틴 지속 가능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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