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1학년 엄마 성적표 : 미흡 1

소리치고 화를 냄

by 우즈


나는 정말 누구에게도 화를 안 내는 사람이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좀 그런 편이다. '그럴 수도 있지'하며 대부분의 일을 이해해 보려는 쪽으로 노력하는 편이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굳이 먼저 찾으려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우리 아이한테 크게 화를 낸 적이 딱 한 번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5월이었다. 당시 클래스팅에 담임 선생님께서 오늘 한 일을 매일 올려주셨다. 갓 입학한 1학년 아이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아이 입으로는 다 듣기 어려운 시기인 것을 감안하여 담임 선생님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날 배운 내용을 올려주셨다. 1학년이 처음이고 궁금한 것이 많은 나 같은 학부모에게 너무도 감사하고 귀중한 정보였다. 아이랑 그날에 대한 일을 복기하며 대화해 볼 때도 요긴하게 이용됐다.


오늘은 '1인 1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아이가 맡은 역할은 '달력에 오늘 날짜 표시하기'다. 교실 뒤 게시판에 달력이 있고 거기에 매일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덧붙이는 클래스팅 첨부 사진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역할을 오늘 바로 하고 스티커를 붙인 명렬이 있는데 우리 아이는 스티커를 안 붙였다.


초등학교라는 곳에 잘 적응하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던 시절이라 정말 크고 작은 욕심들을 내려 둔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했는데 우리 아이는 '안 한'상태가 나를 몹시 자극했다.


나라면 바로 했을 텐데. 그래 우리 아이는 내가 아니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내 조급한 마음을 들키지 말고 이따가 찬찬히 물어봐야지. 마음은 좀 타들어갔지만 이것도 교육이다 생각하고 하루이틀 먼저 하고 뒤에 하는 것이 중요한가 뭐. 하며 애써 합리화를 하고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넌지시 묻고 교실에서 선생님과 뭘 했는지 모른 척 물어보고 아이에게 스스로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궁금했던 걸 물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클래스팅에 올려주신 사진


왜 안 했어?
오늘 날짜를 몰랐어.


아. 역시 아이는 내가 아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데서 이유를 댔다. 듣고 보니 이해가 바로 갔다. 달력이 익숙하지 않았구나. 아무리 담임 선생님이 칠판 한 모서리에 오늘 날짜를 매일 기록해 주셔도 주의 깊게 안 봤으면 모를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응, 그럴 수 있지 싶어서 달력을 가져와서 말했다.


이거 봐봐.
오늘이 18일이니까
내일은 19일이야.
내일은 공휴일이라 학교 안 가고
목요일은 20일
모레 학교 가면 20 숫자에 동그라미 하자.
응.


다다음 날 물었다.


동그라미 했어?
아니.
왜?
뭘로 동그라미 해야 할지 몰라서.


또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였다. 그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1학년 아이는 제멋대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벌겋게 혹은 시퍼렇게 동그라미 색칠을 했다가 혹여나 선생님께 혼이 날까 봐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될 지도 미리 확인받고 행동에 옮기고 싶었구나. 정말 부처의 마음으로 여기까지 이해를 했고 인내했다. 내 머릿속에 딴 아이들은 벌써 스티커가 두 개씩인데 우리 아이 이름 옆의 텅 빈 공란이 떠올라 마음이 급해지고 속이 답답하고 화가 끓지만 참고 애써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집에 마커를 찾아들어 보여주면서.


이걸로 할래?
아니.
내일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할래.
그래. 그럼 내일은 꼭 꼭 하기다.


이건 학교라는 공간에서 다 함께 정한 규칙이다. 다 같이 하기로 했는데 너만 자꾸 안 하면 안 된다. 이런 사소한 약속 배우려고 학교 다니는 거다란 말도 진심으로 덧붙였다. 좋은 말로. 부드럽게. 이때까지는 진심으로 그렇게까진 화가 안 났었다. 아니 참을 만했다. 평소 나처럼.


다음 날, 나는 동그라미 했냐고 묻는 것도 잊고 있을 만큼 '오늘은 했겠지' 싶었다. 하교 후 집에 와 식탁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마침 생각이 나서 물었다.


아 맞다.
오늘은 했지?
아니.


아. 이때 솟아오른 내 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 큰 어른에게 이렇게 소리쳤어도 놀랬을 만큼 작은 아이에게 소리쳤다.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치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며칠 동안 나와 한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깬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어떻게 엄마랑 삼일 동안 약속을 했는데 안 할 수 있냐고 아이를 나무랐다.


역할을 하지 않는데 선생님께서는 별말씀 없으셨냐 했더니 아이는 더블비얀코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울면서 말했다. 사실은 오늘 아침에 가니까 선생님이 "oo아, 오늘은 날짜에 동그라미 해볼까." 하셨단다. 하. 가슴이 쿵 무너졌다. 아니 그럼 엄마도 말하고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안 했다는 말인가. 이유가 뭘까 들어는 보자 싶었다. 더 크게 화 낼 준비를 하면서.


근데 왜 안 했는데.
가방 내려놓고 뭘로 동그라미 할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복도에 딴 애들하고 얘기하고 있어서 못 물어보고 그다음에는 애들이랑 논다고 까먹었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오늘까지 아이를 좋게 좋게 말로만 약속을 받는 것은 아이의 부모로서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화를 내서라도 아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부모의 의무를 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오늘 일을 쉽게 넘겼다가는 학교 규칙을 가볍게 여기는 모난 아이로 클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내 목소리를 더 크고 무섭고 노여워하는 말투를 하게 하는 데 힘을 실어줬다.


오늘이 금요일이고 이렇게 주말을 보낼 수 없었다. 지금 당장 학교에 가서 동그라미 하고 오라고 아이를 보챘더니 아이가 더 크게 울면서 '선생님이 왜 왔냐고 하면 어떡해'라고 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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