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에 한 장 쓰고 갑니다

스케치 노트

by 우즈

노트에 적는다.

여행 짐을 싸기 시작할 때의 나의 루틴이다. 며칠 뒤 갈 여행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빈 종이에 적기부터 한다. 이때가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하루짜리 일정인지 이틀 이상의 여행인지, 캠핑인지에 따라 짐 싸는 법은 달라지지만, 노트부터 꺼내는 루틴은 변함이 없다. 일단 노트에, 밖을 나가 있을 동안의 요일을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날의 큰 일정을 가볍게 메모하며 일어날 법한 일을 떠올려보는 일로 상상이 시작된다. 이미 여행이 시작된 셈이다.


막상 집 밖을 나서면 현실적 문제들이 가로막을 때가 있어 짜증이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다. 체력이 점점 방전되는 것도 한 몫한다. 이동하는 순간마다 예측 못한 현타를 맞으면 뇌가 얼음장이 되어 기분을 사그라들게 만듦으로써, 다채로운 상상을 순식간에 방해한다. 그러니 설렘은 미리 느껴야 한다. 여행가방 안에, 내 상상의 시나리오를 그 속에서 이미 넣어 간다고 보면 된다. 가서 입을 만한 옷을 챙기며 그 날의 내 모습을 그리고, 가서 읽을 책을 고르는 동안 방문할 그 장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가서 있을 틈새시간을 미리 예측해서, 그 틈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해보기도 하면 재미가 무궁무진해진다.


상상과 별개로, 주로 담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일단 그날 입고 가는 옷을 상의 하의로 적어두고 다음날 입을 옷을 계획한다. 옷과 속옷이 제일 먼저다. 기타 필요한 물품을 챙긴다. 화장품, 수건, 세면도구, 안경, 슬리퍼 남들도 챙기는 그런 것들을 챙긴다. 읽을 책과 필통을 챙긴다. 지갑과 립밤이 들어간 개인가방은 따로 준비한다. 챙기다 보면 꼭 더 넣게 되는 것들이 있다. 결국 안 쓰고 돌아올 확률이 많은 것들이지만, 안 챙길 수 없다. 짐 가방에 여백이 남으면 꼭 구석에 넣어두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맥심커피라든지, 헤어롤이라든지, 체온계 같은 것들이다. 비상시를 대비한 타이레놀, 충전기, 모자 등도 구겨 넣는다.


요즘 들어 추가로 더 하는 일이 있다면, 책과 관련된 장소를 꼭 한 번 미리 찾아보고 가 본다는 것이다. 어딜 가든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는 습관은 이미 익숙해졌다. 캠핑을 가더라도 내 책 한 권, 아이 책 한 권은 꼭 챙겨가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떠난 그 장소에서 책을 한 권 이상 사 오는 것이 반복되었고, 다녀오면 캐리어에 새롭게 산 책을 꺼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 책을 볼 때마다 책을 샀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데, 낯선 서점의 한 코너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저자와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이끌려 사게 되는 경험은 퍽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짐을 일찍부터 꾸린다.

여행 가기 이틀 전, 또는 대략 일주일 전부터 계획할 때도 있다. 그때 시작된 나만의 상상 행이 찐으로 재밌기 때문이다.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은 내 맘대로 동선을 짰다가 또 수정하면 되므로. 실패할수록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이한 경험을 맛본다. 이렇게 몇 번 설렘을 느끼고 나면, 실제로 가서는 어떤 식으로 여행되든지 상관없다. 기대와 같았다면 같은 대로 보다 더 깊은 원을 험하게 되고, 기대와 달랐다면 다른 대로 색다름을 느껴 흥미진진하다. 러나 저러나 어떤 여행이 되든, 쓸 거리를 주워서 오는 거다. 리 보면 인생은, 오늘도 내일도 매일 여행을 떠나는 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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