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우산 한 번 안 썼다

연결, 건너감

by 우즈


우산이 문제다.

2박 3일 일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야 한다. 여기에 지갑과 핸드폰, 기차에서 읽을 내 책, 아이 책이 들어간 가방도 있다. 우산까지 들 수는 있지만, 우산으로 인해 번거로운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삼단 우산이든 긴 우산이든 접었다가 폈다가 할 때마다 떨어지는 물방울 하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기차를 타는 일이란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물에 젖는 기분이다. 역에서 우산 씌우는 비닐을 사용한다 치더라도 그걸 또 들고 다니다가 비닐을 벗겨서 사용하기 직전의 난감함이란. 왜 비닐을 바로 버리는 곳은 내 눈에 잘 띄지 않을까. 여러모로 우산이 없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이 선다. 우산 없이 가볼까. 우리 집에서 친정까지 우산 한 번 안 펼치는 게 가능할까.


비가 많이 왔다.

네이버 날씨로 강수량이 21.3mm. 가 밖에서 움직이는 시간은 14시 30분에서 18시 사이다. 우리 동네의 15시 강수량은 21.3mm이고, 친정의 17시 강수량은 10mm였다.



동선을 그려본다.

우리 집 아파트 주차장에서 기차역까지 자차로 타고 간다. 기차역에 내릴 때 비가 최대한 안 맞도록 에스컬레이터에 가까운 쪽으로 내린다. 기차 타고 두 시간가량 가서 기차역에서 내린다. 기차역에서 지하철을 타러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간다. 적지 역에 도착하면 지하철에서 건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3층에 있는 교보문고 주차장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픽업 나온 친정엄마를 만난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한 대로 촘촘히 연결된 에스컬레이터 덕에 잘 도착했다. 때려 박는 폭우에 우산 한 번 안 쓰고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처음과 마지막에 자차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중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잘 연결된 에스컬레이터 덕에 우산 한 번 안 펴고 먼 거리를 넘어왔다. 세상이 이렇게 군데군데 잘 연결되어 있었다. 커넥트. 연결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공간과 공간의 연결이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의 건너감이다. 자기가 주로 등장하는 배경을 바꾸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그 공간에서의 분위기처럼 변한다고 했다. 이동하는 순간마다 시시각각으로 그곳에 맞는 내 행동을 의식하게 된다.


처음 우리 차 안에서 나는 편안하고 유쾌하며 깨방정을 는 개그우먼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은 제시간에 기차에 탈 수 있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는 흡사 코레일 승무원이다. 기차에 타서는 교양 있게 책 읽는 애 엄마가 됐다. 기차에 내려서는 최단 거리로 빠르게 동선을 찾는 여행 가이드가 된다. 지하철 안에서는 사람들을 기웃거리는 관찰자가 되었다. 목적지인 주차장에서 친정 엄마를 만날 때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된다. 하루동안 움직이면서 나는 대여섯 번의 역할을 오가는 배우가 된 셈이다. 그렇지만 그런 다중 인격의 나 역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고작 '우리 집에서 친정까지 우산 없이 기차 타고 이동했다'는 한 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한 줄의 연결 속에는 공간이 넘나드는 여정이 한 편의 글로 얼마든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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