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내 글은 아주 작은 모티프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지는그때그때 내가 쥐고 읽는 것에 따라 전개가 달라진다. 읽어내는 모든 문장들이 부드럽게 흡수될 때가 있고 어떤 한 페이지가 유난히 거슬리는 날이 있다.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좋아 집중이 잘 될 때는 쓴 글들의 목록을 쭉 살피며두툼한 다이어리에 포스트잇으로 아이디어를 추가한다. 이 노트를 펼쳐두고 티비를 보면서도 소파 팔걸이에 놓인 노트에 계속 메모를 한다. 광고 속 위트 있는 표현들이나 토크쇼에서 웃긴 에피소드의 대화들, 누군가를 인터뷰 하면서 말하는 얘기나 본 것들을.
그게 실제로 쓰는 글에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는 나도 모르지만, 이런 과정을 즐긴다. 매순간 둥둥 흘러가는 에피소드를 낚아채는 일이 재미있다. 한번 글에 넣어보고 잘 맞으면 넣는 거고, 아니면 다시 빼버린다. 쓰는 스타일이 그렇게 때문에 그날 내가 겪고 생각한 내용이 바로 글에 녹아들어간다. 커피숍에 있으면 커피숍이라는 장소가 글에 들어올 수 밖에 없다. 지금 경험하는 것들이 계속 들어가서 이야기와 엮인다. 정말 묘한 일은 좋다고 생각해서 받아 적은 문장이 막상 내 글에 넣으려고 하면 흐름과 안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른 오전에 글을 써두는 편이다. 전날 메모해둔 종이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오늘은 진짜 쓰기 싫은 마음만 120%여도 그냥 앉아 꾸역꾸역 타이핑을 한다. 한글 문서로 A4 반장 정도다. 매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한 시간 정도 타이핑을 한다. 좋다고 생각한 문장을 타이핑 할 때가 많다. 축구선수가 공을 차기 전에매일 비슷한 근육 운동을 하듯타이핑도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대로 타이핑하다가도 내용이 조금씩 추가된다. 내가 적어두었던 메모들이 있으니까 그 내용을 녹여보면서 자연스럽게 내용이 바뀐다. 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온 것들을 글에 넣어보는 거다. 흐름이 이어지도록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빠지도록 친절하게, 마치 노래 가사처럼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을 목표로.
도움이 안 될거라 싶어 메모하거나 체크해두지 않고 읽었던 문장들이 갑자기 생각나 쓰는 글의 방향을 잡기도 한다. 그래서 내 글은 대부분 제목과 첫 모티프가 먼저 있고, 그 외의 것들은 계속 바뀐다. 글 쓰는 스타일이 지금은 그렇다.
이 책과 저 책을 넘나들면서 이질적인 것끼리 붙여보면서 그 의미가 새로워지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 된다. 갑자기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글의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꽤 있다.
처음에는 글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어떤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할지 개괄적인 구성을 어설프게라도 해서 써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쓰는 스타일이 점점 이렇게 바뀐다.
내가 ‘그려내는’ 이야기보다 ‘그려지는’ 이야기가 훨씬 더 좋고 그게 쓰는 사람에게도 좋은 것 같다. 쓰는 사람은 자기 생각만 갖고 있으면 안되고 주변에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는데, 그걸 계속 연습하는 중이다.
내가 이야기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뒀다.실제 우리 현실도 내가 통제한 일보다 손쓸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때가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야기를 할 때, 타인 앞에서는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기보다 어느정도 접어두는 게 옳다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