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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Dec 24. 2022

아이디어 팡팡 터지는 항아리를 주세요

백만 개의 글감을 찾는 일



노트북을 켜는데 마음이 거슬린다.

어떤 메모를 하기 위해 잠시 멈췄다. 문득 전등도, 테이블도, 노트북도, 펜도 어제와 같은 공간을 보면서 허무에 사로잡혔다. 테이블 가장자리에 커피를 닦아낸 휴지가 뭉쳐 있는 걸 보면서 창문으로 비쳐드는 밝은 기운에도 무심했다. 빈 노트북 화면이 고단한 사람처럼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에 대해서 내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제에 대해 모호한 생각만 들었다. 어떤 문장을 떠올리고는 스스로 그런 생각은 촌스럽다고 불쑥 말하기도 한다. 나는 뇌가 반짝반짝 닦을 수 있는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정비하는 장면을, 머릿속을 청소하고, 나머지 부분을 닦아내는 장면을 막연하게 그려보았다.      



어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봤던 채널이 스친다.

영화 평론가가 어떤 영화를 보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영화에는 매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다. 원작과 비교하여 각색이 그에 못 미쳐서 메시지 전달이 아쉽는 거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몹시 불안해지는 거다. 순간적으로 영화 평론가의 말을 내 글에다가 비춰봤기 때문이다. 뭔가를 써내는 요즘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 반복된다.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 나에게 간절한 것은 '백만 개의 글감이요'라고 말하고 싶다. 앉아서 쓰는 순간을 즐기기도 하지만, 쓰지 않는 시간 동안 무엇에 대해 쓸지 할 말을 찾지 못할까 봐 그 시간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아이디어 팡팡 터지는 다채로운 내용으로 무한 생산하는 항아리를 갖고 싶다. 늘 하는 얘기에서 벗어나고, ‘내’ 얘기를 떠나 포커스를 다른 곳에 두고 싶다는 갈증이 차오른다.                



김상근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 할머니가 말한다.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말하면서 눈덩이를 굴려보렴. 그러면 고민이 다 사라질 거야.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적으면서 글을 써보렴. 그러면 고민이 해결될 거야.       



그래, 고민을 적어보자.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어떤 글감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는 능력은 결국 많이 듣고 읽으면 되는 것인가. 내 이야기를 실컷 하다가 소재가 고갈되면 어쩌나. 작가들은 어떻게 두꺼운 한 권의 분량을 만들어내는가. 쓸 거리를 자꾸만 생각하다 보니 이것저것 연결이 돼서 떠오르긴 하는데 계속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잘 쓰고 싶다는 고민에서 계속 쓰고 싶다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정말 주저리주저리 써놓고 보니, 이 고민의 문장들을 하나씩 펼쳐보면 쓸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더지 할머니의 조언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마주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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