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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an 04. 2023

분위기가 사람 잡는다

간단히 씻고 향초를 켜면




분위기가 중요하다.


아이 어린이집을 정할 때 원장 선생님의 분위기를 유심히 보는 편이었다. 그녀는 흰색 리넨 블라우스와 베이지색 세미 정장 바지를 입고 플랫슈즈를 신었다. 마주 앉은 내게 어린이집 프로그램 책자를 건네주며 미소를 띤다. 재촉하지는 않았다. 잠깐 다른 선생님이 상담 중에 죄송하다는 듯이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다정한 눈빛으로 동료를 대했고 말투에서 권위적인 느낌이 나지 않았다. 동료와 응답하는 짧은 대화에서 업무적으로만 영혼 없이 대하는 직장의 분위기아니란 게 느껴졌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선생님의 책상 한편에 아이들이 그려준 선생님 그림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따뜻한 선생님인 걸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 계속 관찰하면서도 점점 나는 그 선생님에게 마음이 갔다.


대화를 마치고 홀로 어린이집 교실을 둘러보는 중에 저 멀리서 정수기 아주머니가 체크를 마친 후 인사하며 돌아가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서서 다정한 눈빛과 함께 다급히 음료수를 건네며 잠깐 마주 보고 몇 마디를 나누는 원장 선생님 모습과 표정이 보인다. 그런 찰나의 모습이 내겐 중요하다. 의도치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보고 싶어서 직접 방문을 간 것이었고 그런 사소한 부분에서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여기 일단 합격. 그 사람의 말투, 억양, 제스처, 태도 등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추측하게 된다. 사람의 분위기는 이렇게 중요하다.


마트를 결정할 때도 분위기가 중요하다. 우리 집 근처에는 마트가 두 군데지만 내가 잘 가는 곳은 한쪽으로 정해져 있다. A마트는 과일이나 채소가 늘 불합격이다. 싱싱하지 않다. 양파를 사 와서 보면 물러져 있을 때가 있고 귤을 사 와도 맛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계산하시는 아주머니가 자주 통화 중이시다. 내가 물건을 계산하려 내려놓아도 하던 전화를 멈추지 않으시고 어깨에 걸친 채로 받으신다. 일을 하지 않으시는 건 아니다. '종량제 봉투 주세요'라고 내가 나직이 말하는 소리를 놓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지만 여긴 정 없다. 꼬깔콘이나 우유가 마침 떨어져 다급할 때만 이용하는 편이다.  


B마트는 쌈장을 사려고 그 쪽 코너로 가보면 쌓인 개수가 브랜드 별로 대여섯 개를 넘어가지 않는다. 거의 모든 물건이 소량으로 보기 좋게 관리되고 있다. 유통기한을 매번 확인하는 안주인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계산하시는 아주머니는 일단 얼굴에 표정이 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날이면 굳이 한 마디 건네신다. 오늘은 장난감도 사고 좋겠네. 그것에 별 대화 없이 겸연쩍게 아이와 내가 웃으며 나오는 게 다지만 여긴 정겹다. 마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자리 나 장면에서 느껴지는 기분은 내게 큰 소비 기준이 된다.


분위기를 이렇게 중요시하는 탓에 사십의 나이가 오기 전에 우리 집에서 '책상분위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초등 입학을 앞둔 딸아이의 책상을 마련하면서였다. 아이 방을 만들면서 이 나이에도 내 책상은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추구하는 공간분위기가 있었기에 인생을 아주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나만의 책상에 앉으면 이런 분위기를 잡는다.      

바쁜 아침 시간이 지나고 애도 남편도 다 간 텅 빈 나의 집.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싶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시간. 아껴야 한다. 간단히 씻고 향초에 불을 붙이고 은은한 조명을 켜서 내 책상에 앉는다. 커피도 함께. 포스트잇과 다이어리부터 펼치고 오늘의 간단한 할 일, 사실 미뤄둘 일을 적는다. 리스트를 다 적으면 쿨하게 옆으로 쓱 밀며 '그건 됐고 오후에 하고' 오늘 쓸 글감을 앞에 두고 생각한다 '어떻게 적을까'.


마침 십분 전에 켜둔 향초에서 은은한 향이 퍼지고 있다. 그러면 나는 좀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우아한 무드라니. 글을 안 쓰고 있어도 내가 날 쓰다듬어주고 싶을 판이다. 이것으로 힐링이 된다. 유튜브의 베이지멜로우,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이보다 만족스러운 순간은 없다. 오늘도 분위기가 나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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